[서울시 버스준공영제 20년] 서비스질 향상했지만, 사업주 배불리는 ‘세금 수도꼭지’ 전락

세금으로 수백억 이윤 남기는 버스산업 …“사모펀드 군침 당연해, 공영제로 전환해야”

2024-05-27     강석영 기자
▲ 정기훈 기자

자동차노련 서울시버스노조가 지난 3월28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과의 임금교섭이 결렬됐기 때문이다. 노사는 최종적으로 임금인상률 4.8%에 합의했다. 그 사이 서울 시내버스는 11시간가량 멈춰 섰다.

노조 파업이 끝나고 사측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번엔 조용했다.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이 ‘착한’ 사용자라서가 아니다. 그들은 손해 본 것이 없다. 오히려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 노동자 임금이 인상되면 사용자 이윤도 커지는 구조다. 어떻게 가능할까. 노사 모두 이익을 보니 좋은 걸까. 답은 올해 20주년을 맞은 서울 시내버스 준공영제 문제와 맞닿아 있다.

노조 파업해도 손해 보지 않는 버스업체들
지원금 빼돌리려는 민간 vs 막으려는 공공

서울시 준공영제부터 보자. 버스산업의 3대 요소는 노선, 인프라(차·차고지), 인력이다. 노선권 소유에 따라 공영제와 민영제가 갈린다. 버스회사 적자를 세금으로 메꿔야 하는 사정은 세계적인 추세다. 하지만 민간사업자의 노선권을 재산권으로 인정한 채 재정을 투입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사실상 민영제를 세금으로 유지하는 셈이다.

1990년대부터 쇠퇴하던 버스산업은 2000년대 초 2기 지하철 계획(5~8호선 개통)과 함께 몰락했다. 운송수입은 물론 부동산으로도 버틸 수 없게 됐다. 이에 서울시는 서울버스운송사업조합과 협약을 맺고 2004년 전국 최초로 준공영제를 도입했다. 당시 면허를 받은 노선에 사업자의 영업권을 보장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준공영제 문제는 표준운송원가에서 시작된다. 표준운송원가는 시내버스 1대당 1일 운송비용을 표준화한 것으로, 재정지원금 규모의 기준이 된다. 서울시는 운송수입에서 표준운송원가를 뺀 운송적자와 아울러 적정 이윤을 재정으로 지원한다. 이를 위해 운송수입금을 지자체와 민간이 공동 관리하는데, 이를 ‘수익금공동관리형 준공영제’라고 부른다.

20년째 준공영제를 따라다니는 꼬리표는 재정누수다. 버스업체가 실제 지출한 비용이 아니라 사전에 정해진 표준운송원가를 기준으로 재정을 지원하는 방식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표준운송원가는 가동비와 보유비로 구성된다. 가동비는 운전직 인건비·연료비·타이어비로, 실비로 처리된다. 반면 정비직·사무관리직·임원 인건비, 정비비 등 보유비는 표준금액으로 지급된다. 실비를 아껴 남은 돈은 회사 이윤이 될 수 있다.

사업자는 이윤을 늘리려면 보유비를 이용하면 된다. 정비직·사무직 인건비가 대표적이다.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1종 면허자를 정비직으로 고용해 운전직 인건비로 주고 정비직 업무를 시키는 게 현실이다. 정비직 인건비가 사업주 주머니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원이 지난해 12월 서울시가 지급한 표준운송원가와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의 실지출 비용 차이를 분석한 결과, 정비직·사무관리직 인건비에 대한 서울시 지급액과 회사 실지급 차액은 최근 4년간(2019~2022년) 연평균 271억원 수준이다. 누적 1천억원이 전용된 것으로 추계된다. 2021년 감사원 감사에서 정비비·차량보험료 등에 대한 전용도 지적됐다.

처음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다. 서울시가 재정으로 버스기사 임금을 보전해 주기 때문에 사업주는 임금인상으로 잃는 게 없다. 운행이 중단돼도 적자가 발생하면 서울시가 지원하기 때문에 손해 볼 게 없다. 오히려 운전직 인건비 상승으로 관련 종사자인 정비직·사무관리직 임금이 올라 사업주로선 이윤을 늘릴 가능성이 커진다.

업체 적자를 지원하는 정산방식도 재정누수를 쉽게 만든다. 적자노선 운영에 따른 손해뿐만 아니라 대출 이자나 차고지 구매 비용 등도 모두 재정 지원 대상이다. 게다가 서울버스운송사업조합(수입금공동관리협의회)의 재정지원 요청에 따라 서울시가 재정을 지원하면, 사업조합이 개별 업체에 분배하는 과정을 거쳐 검증이 더 어렵다.

“준공영제 20년은 재정지원금을 빼돌리려는 민간과 이를 막으려는 공공의 싸움의 역사”라고 김채만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평가했다.
 

 

특정 기업에 영구적 특혜?

버스운송사업자들은 매년 수천억원대 적자에도 600억~7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운송적자가 2~3배 증가했지만 그만큼 재정지원금도 폭증하면서 오히려 당기순이익이 늘었다. 이는 배당금액과 미처분이익잉여금 증가로 이어졌다. 서울시 버스업체의 배당성향 평균은 2017~2021년 평균 56.98%로, 같은 기간 코스피 상장사보다 20% 높았다.

특정 기업에 영구적 특혜를 준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무위험 민자사업’과 같다고 지적했다. “이용수요에 상관없이 운영수입을 보장하는 AP방식과 비슷하다. 코로나19 당시 재정지원 규모가 2배 이상 증폭한 게 대표적이다.” 심지어 2004년 협약은 기한이 없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영원한 수의계약”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보통 공개입찰로 사업자를 선정하지 않나. 준공영제는 수 페이지 협약만으로 기한 없는 수의계약을 맺은 셈이다.”

준공영제 20주년 즈음 사모펀드 진입이 가장 큰 문제가 된 건 시사점이 크다. 사모펀드는 2019년 무렵부터 버스회사를 인수하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차파트너스는 수익금공동관리형 준공영제를 도입한 서울·인천 등에서 업체 20여곳과 버스 2천여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영수 선임연구위원은 “서울시가 망하지 않는 한 수익성과 확장성·안정성이 모두 보장되는 버스산업에 사모펀드가 진입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짚었다.

사모펀드의 최종 목표는 엑시트(자금 회수)다. 단기수익 실현을 위해 자산을 모두 매각하고 회사를 빈껍데기로 남겨 둘 수 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재정지원금이 사모펀드 수익에 중요한 원천이 되는 현실”이라며 “비용절감으로 인해 안전이 약화하고 시민 불편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 사모펀드 ‘바지사장’ 출신이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이 됐다”며 “사모펀드가 버스 정책까지 영향을 미치겠다는 의도”라고 짚었다.

서울시는 재정누수가 아니라 경영 효율화로 보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전문가들이 정한 표준운송원가를 기준으로 한다. 회사가 원가보다 적은 돈을 썼다면 경영 효율화로 인한 결과”고 말했다. 아울러 평가를 통한 차등 이윤 지급으로 버스업체들을 통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버스업체 사이에서도 기본적으로 보장되는 이윤보다 평가에 따른 이윤의 비중이 높아졌다며 불만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실상 서울시 평가가 미치는 영향은 미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서울시가 보장하는 적정이윤은 운송수입금의 3%대며, 이 중 평가를 통해 차등지급하는 성과이윤은 절반 가량”이라며 “재정 유용에 대한 평가는 1천점 중 10점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사업주들이 경영평가에서 점수가 깎이면 서비스평가 점수를 높게 받아 만회하려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유재호 서울버스노조 부처장은 “전체 평가 중 버스노동자들과 관련된 부분이 70%가량”이라며 “개별 노동자에게 징계를 주는 등 압박해 서비스평가 점수를 높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준공영제 도입 뒤 서비스질은 개선
업체 난립, 민간업자 노선권으로 공공교통 발전은 한계

서울시 준공영제 도입으로 버스업체들의 경영이 안정화하면서 서비스 질도 상향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한편으론 준공영제가 공공교통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먼저 버스업체는 규모의 경제화가 어렵다. 김상철 정책위원장은 “적자노선 비용을 흑자노선 비용으로 충당해야 하기 때문에 공공교통은 기본적으로 규모의 경제화가 필요하다. 해외에선 권역별로 교통수단을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며 “하지만 한국은 서울에만 60여개 업체가 난립하고 있다. 서울시 재정으로 부실기업을 지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통시스템이 비효율적으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준공영제 도입 이후 대대적인 노선개편은 없었다. 원칙적으론 서울시가 사업개선명령으로 버스업체에 노선 조정을 요구할 수 있지만, 현실에선 민간사업자의 노선권을 인정한 협약에 가로막히기 일쑤다. 이에 버스와 지하철이 같은 노선을 지나며 경쟁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준공영제 체제에선 공공교통 확대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민간사업자에게 지급되는 재정은 비용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 위원장은 “민간에 재정이 투입되는 상황에서 서울시는 비용 절감 압력에 시달린다”며 “기후위기 시대 공공교통 인프라를 확대해야 하는데 준공영제 구조에선 비용을 늘리자는 주장으로 왜곡된다”고 말했다.

지역서 심화된 재정누수

서울시 준공영제 모델은 전국으로 확산했다. 부산·대전·대구·광주·인천 5개 광역시와 제주도 등이 먼저 도입했고, 전국 시·군도 표준운송원가를 기준으로 재정을 지원하는 형태를 활용하고 있다.

단위가 작은 지자체일수록 준공영제 문제는 심화됐다. 2021년 준공영제를 도입한 창원시의 경우 최근 시내버스 회사인 제일교통 실소유주가 수억원의 임금을 체불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퇴직금 미적립금은 12억여원, 4대 보험료 미지급금은 4억여원, 연료비 체납금은 9억여원에 달한다. 창원시가 제일교통에 지급한 한 해 재정지원금 60억원에 포함돼 있던 비용들이다.

김성진 공공운수노조 제일교통지회장은 “도대체 재정지원금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준공영제 취지와 전혀 맞지 않다”고 분노했다. “제일교통에 정비직이 적어도 4~5명은 돼야 하는데 2명이서 일하고 있다. 정비가 제대로 안 돼 버스 운행 중 타이어가 빠지기도 했다. 타이어 교체도 안 돼 닳다 닳다 철심이 나와 있다. 시에 실비 정산해야 한다고 했지만 반응이 없다.”

목포시는 준공영제 한계를 느끼고 공영제로 전환했다. 목포시 버스산업을 독점하며 횡포를 부리던 태원여객·유진운수는 준공영제 아래서도 가스비 미납 등을 이유로 한겨울 석달가량 버스 운행을 멈췄다. 공론화위원회를 거쳐 준공영제를 선택했던 시민들은 재차 공론화위를 통해 공영제로 돌아섰다. 목포시가 버스 운영을 해태한 사업주에게 많은 돈을 주고 노선권을 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준공영제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못 해 공영제를 선택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경기도는 서울시 문제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노선입찰제 준공영제 도입에 나섰다. 버스노선 면허 및 운영권을 도가 소유하고, 민간사업자는 경쟁입찰을 통해 일정 기간 운영권을 위임받는 방식이다. 관건은 노선권 확보였다. 코로나19로 광역버스가 경영난을 겪는 틈을 타 노선권을 사들일 수 있었다.

반면에 시내버스는 서울시 모델을 따라가고 있다. 노선권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민영제 아래 타수도권과 버스기사 임금격차 심화로 인력 유출이 계속됐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결국 수익공동관리형 준공영제 도입을 약속했다. 김채만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선입찰제 성과이윤을 1% 더 줘 수익공동관리형에서 넘어올 유인책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공영제 목소리 커진다

공공이 노선권을 소유한 공영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모아지고 있다. 이영수 선임연구위원은 “민영제 시절 공영제에 3조~4조원이 든다며 준공영제가 도입됐다”며 “하지만 준공영제 도입 이후 서울시는 재정지원금으로 누적 7조원을 썼다. 준공영제에서 돈이 더 많이 들었다”고 꼬집었다. 차상우 민주버스본부 기획국장은 “버스업체들의 방만경영을 세금으로 지탱하고 있다”며 “버스사업자들이 앉아서 돈 버는 구조를 끊어 내야 한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비용은 더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간사업자의 노선권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가 남아 있다. 20년 동안 공적 자금으로 적자 노선을 유지한 만큼, 민간사업자의 노선권을 인정했던 법원 판단이 달라져야 한다고 김 선임연구위원은 강조했다.

당장 공영제로 전환할 수 없다면 서울시가 적자노선 일부라도 매입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김상철 정책위원장은 “서울교통공사 내 버스운영본부를 만들어 적자노선을 관리해야 한다”며 “실제 화성시가 화성도시공사 버스본부를 만들고 사업면허를 받아 운행까지 딱 6개월 걸렸다. 크게 어렵지 않고 비용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당시 공영제 전환 방식으로 서울시가 지주회사를 설립해 서울시가 51%, 민간이 49% 지분을 가지는 방식도 거론됐다.

현 제도에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버스 평가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경영평가와 서비스평가가 혼재돼 있는데, 이 둘을 분리해 경영평가에서 재정을 유용한 업체에 확실한 페널티를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선별로 표준운송원가를 바꾸자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 위원장은 “노선별 운송비용을 기준으로 하면 보조금 투명성을 높일 뿐 아니라 노선 분석도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아울러 중앙정부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채만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은 주마다 받는 판매세 일부를 대중교통 운영비로 쓴다. 유럽은 기업에 교통세를 받는다”며 “한국도 휘발유 등에서 걷는 교통에너지환경세를 도로·철도 건설이 아닌 버스 운영비에 써야 한다. 장기적 계획 없이 GTX 등 인기영합적 철도 건설에만 열을 올려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서울시는 이르면 오는 7월 준공영제 개선 방향을 발표할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준공영제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확보할지, 타 운송 수단과 수송 분담 체계를 어떻게 분담할지 등 전반적인 면에서 보완할 지점을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