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걸린 삼성전자 하청노동자] 이상한 냄새 참으며 일하던 어느날, ‘걸을 수 없었다’
수현(21·가명)씨는 자립심이 강한 아들이었다. 부모님이 주는 용돈은 사양하기 일쑤였고, 힘들거나 아파도 내색 한 번 안 했다. 부모님은 그런 수현씨의 모습이 대견했다. 2022년 특성화고 졸업 후 부산 집을 떠나 경북 구미에 있는 한 회사에서 일하기로 결정했을 때도 내심 걱정은 됐지만, 아들의 선택을 믿고 지지했다. 수현씨가 일하는 케이엠텍은 삼성전자 휴대전화 갤럭시 제트플립 시리즈를 조립하는 1차 하청업체로, 규모도 꽤 커서 믿음이 갔다. 케이엠텍은 일과 대학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 고숙련 일학습병행제도(P-TECH·피텍제도) 운영기업으로 수현씨에게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평일엔 일하고, 주말엔 학교에 나가 공부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힘들다며 그만두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학위를 따기 위해 꾹 참고 견뎠다. 2023년 9월 대학 졸업 3개월을 남겨 두고, 수현씨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진단받았다. 수현씨는 일하는 중 느꼈던 어지럼증, 휴대전화 조립 중 나던 원인 모를 냄새 등이 백혈병 발병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회사는 무급휴직 끝에 수현씨를 해고했고, 학교는 출석 미달로 졸업이 불가능하다며 자퇴를 종용했다.
지난 2년여간 수현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달 29일 오후 <매일노동뉴스>가 부산 동구에서 수현씨를 만났다. 수현씨는 지난해 9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진단받고, 올해 3월 골수이식을 받았다. 수술 경과를 지켜보며 집에서 요양 중이다.
인력 부족했던 케이엠텍, 실습생 면접 없이 출근 지시
수현씨가 케이엠텍을 처음 알게 된 건 2021년 10월이다. 특성화고 3학년생으로 졸업을 4~5개월 앞둔 때다. 졸업을 하려면 3개월간 현장실습을 할 곳이 필요했다.
당초 경남 창원 ㄱ전자를 가고 싶었지만, 수현씨가 원하는 입사시기와 맞지 않았다. 선생님은 같은달 15일 케이엠텍을 추천했다. 회사는 당장 일손이 부족한지 면접도 따로 보지 않고, 사흘 뒤 회사로 오라고 했다.
“선생님한테 이야기를 듣고 3일 뒤인 10월18일 기숙사로 바로 갔어요. 19일부터 일했고요.”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 일하다 다치거나 숨지는 사고 잇따라 발생하자 현장실습제도는 조금씩 개선됐지만, 실습생은 현장에서 여전히 값싼 노동력 취급을 받았다. 수현씨가 한 일은 휴대전화 부품 조립작업으로, 그의 전공 전자통신과와 큰 상관은 없었다.
“교육기간 같은 것은 없었고, 그냥 가자마자 대충 어떻게 하면 되는지 모션(동작)을 보여줬어요. 그 뒤부터 제가 실수하거나, 할 줄 몰라서 ‘어버버’하면 혼났고요.”
첫 일주일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 동안 다른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풀타임으로 일했다. 하지만 월급은 50만원 남짓 받았다. 현장실습생을 사용하는 기업은 현장실습을 통해 전공과 연계한 실무교육을 한다는 이유로 근로계약서가 아닌, 현장실습 표준협약서를 체결했고 실습수당으로 최저임금의 40% 수준만 지급하면 됐기 때문이다.
수현씨는 특성화고 졸업 2개월을 앞둔 2022년 1월 케이엠텍에 정식 입사했다. 일하며 돈도 벌고, 학위도 딸 수 있는 고숙련 일학습병행제도 시행 사업장이란 점이 가장 끌렸다. 고숙련 일학습병행 제도는 기업이 청년을 먼저 채용해 NCS기반 현장 훈련을 실시하고, 학교·공동훈련센터에서 보완적 이론 교육을 진행해 숙련 형성과 전문학사 학위 취득을 동시에 가능하게 한 제도다. 주중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작업장에서 나는 냄새로 어지러운데
안전보호구는 사비로 구입한 KF94 마스크뿐
열악한 노동환경, 인권침해나 다름없는 관리·감독이 이어졌다. 문제제기를 해도 바뀌는 건 없었다. 수현씨가 할 수 있는 것은 참는 것이었다.
“휴대폰 안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부품을 조립하는 일을 맡았어요. 만지면 분말 같은 가루가 나왔어요. 폰 한 개를 조립할 때마다 에어건을 하는데, 이상한 악취가 나서 관리자에게 이야기한 적도 있어요. 그냥 마스크 잘 끼고 하라는 말 말고 별다른 조치는 없었어요.”
수현씨는 구역질을 하며, 숨을 골랐다. 그는 “하루에 휴대폰 2천~3천개를 조립하면 에어건을 계속 쓰는데, 그 냄새를 맡으면 어지러웠다”며 “그런데 회사는 골무와 장갑만 주고 마스크도 지급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회사도 위험성을 아예 몰랐던 것 같지는 않다. 마스크가 없는 경우, 회사 출입을 금했다. “마스크 안 끼고 출근하면 회사 앞에서 못 들어가게 막아요. 근처 어디서 마스크 사오라고 하고요. 오로지 KF94 끼면서 일했어요.”
수상한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회사 부장은 일하는 직원 몸과 작업대에 이름 모를 액체를 분사하고 다녔다. “청소 시간이 따로 있는데, 청소 시간에는 가만히 있다가 꼭 일하면 소독한답시고 어떤 액체를 제 팔, 다리, 목까지 계속 뿌렸어요. 뭐냐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일에 집중하라는 말이었어요.”
문제는 이뿐 아니다. 식사는 부실했고, 보안을 이유로 개인 휴대전화 검사 등 사생활 침해도 일어났다. 수현씨는 “소시지를 2주 동안 재탕해 파리가 막 꼬인 반찬을 받은 적 있었다”며 “급식 메뉴는 일주일 내내 같았다”고 증언했다. 점심과 저녁은 동일했고, 2~3일 만에 메뉴가 달라지면 ‘준수한 수준’이었다. 학생 혹은 직원 영양을 고려해 매일 식단을 짜는 학교·회사와 달랐다. 하지만 회사 보안을 이유로 카메라에 붙인 스티커를 평일에는 떼지 못하게 했고, 노동자들은 이런 사실을 기록하거나 외부에 알리기 어려웠다.
스티커가 떼어진 것이 발견되면, 관리자는 해당 직원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카카오톡·문자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기록을 살폈다. 기숙사 통금시간도 엄격했다. 통금시간이 지나 배달음식이 도착하면, 음식은 버려졌다.
일하다 쓰러진 친구는 퇴사
회사는 사람보다 언제나 일이 먼저였고, 교육보다도 일을 우선했다. 2022년 여름 함께 일하던 수현씨의 친구는 두통을 호소했지만, 회사는 일을 빼주지 않았다.
“완전 쓰러질 것 같지 않으면 회사가 계속 일하라고…. 친구는 두통약 먹고 계속 일했어요. 회사에 있는 동안 관리자한테 아프다고 이야기하면 오히려 혼나고요. 친구가 일하다 쓰러졌고,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한 사람도 일하다 쓰러졌어요.”
관리자가 쓰러진 노동자를 업고 나가는 순간에도, 직원들은 일을 멈출 수 없었다. 현장실습생 시절부터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기 직전까지, 수현씨가 케이엠텍에서 일한 2년 동안 동료 두 명이 일하던 현장에서 쓰러진 것을 본 셈이다. 친구는 결국 일을 그만 뒀다.
학교 수업은 일에 밀리기 일쑤였고, 현장에서 별도의 교육은 없었다. “주말 아침에 스쿨버스 기다리는데, 버스가 안 오는 거예요. 그럼 회사에 연락을 해요. 그때 이제 ‘너희 오늘 일 해야 하니, 대학교 가면 안 된다’고 말해 줘요. 그럼 다시 기숙사 들어가서 옷 갈아입고 출근 준비하고요.” 이런 일은 한 두번이 아니라, 일이 많을 때 반복됐다.
노동부 설명에 따르면 고숙련 일학습병행제도의 경우 기업이 기업현장(훈련) 교사를 두고, 별도의 훈련 장소와 재료 등을 구비해 둬야 한다. 하지만 수현씨는 기업현장교사의 존재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수현씨는 “교사는 없었다. 그냥 단순히 가만히 서서 똑같은 작업을 무한 반복하니, 있을 필요도 없었다”며 “실습 첫날, 둘째날 어떻게 일하는지 보여준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백혈병 걸리자 회사는 무급휴직 끝 해고
몸에 이상을 느낀 건 지난해 9월15일 금요일 밤 10시경이다. 심한 어지럼증에 걷기도 힘들었다. 토요일 학교에 갔지만 전신에 근육통이 심해 수업도 듣지 못했다. 주말 이틀 내내 앓았지만 몸은 나아지지 않았고, 같은달 18일 새벽 3시께 극심한 발목 통증으로 잠에서 깼다. 걸을 수도 없는 상태가 돼서야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힘든 일에 내색 않던 수현씨의 전화에 놀라, 부모님은 회사로 달려왔다. 병원 세 군데를 돌아다닌 끝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수현씨가 수행하던 업무가 백혈병 발병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본다. 정체불명의 과일 향과 기름 냄새, 같은 공간에서 이뤄진 접착제가 발라진 휴대전화 뒷면을 붙이는 고온의 압축 작업으로 인해 유해물질에 노출됐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수현씨는 사람이 부족할 때 해당 작업에 투입됐고, 해당 공정은 수현씨 바로 인근에서 이뤄졌다.
업무상질병이 의심되는 상황인데 회사는 무급휴직 끝에 수현씨를 해고했다. 학교는 출석률 미달을 이유로 자퇴를 강요, 사실상 퇴학처리한 상태다. 회사가 수현씨를 해고한 사실은 2월1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 가입자격이 지역가입자로 전환된다고 밝히면서 알게 됐다. 수현씨는 최근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한 상태다.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짬뽕”
수현씨는 요즘 일과시간의 절반은 자는 데 할애한다. 구역질이 심해 음식을 먹기 힘들다. 오전 아침 겸 점심으로 죽이나 스프를 먹고, 약기운에 잠을 청한다. 무언가를 보기도, 듣기도 힘들다.
수현씨의 부모님은 왜 진작 자식의 고통을 알지 못했을까 자책했다. 수현씨 아버지는 “처음에 일이 힘들다고 할 때, 밥이 엉망이라고 할 때 그냥 투정인 줄 알았다”며 “몇백 명이 일하는 회사인데 그럴 줄 몰랐다. 지금은 그렇게 말한 게 많이 미안하다”고 말했다.
백혈병이 나으면, 수현씨는 “돈 벌어 놀러 다니거나,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묻자 “좋아하는 음식을 하나 뽑긴 어렵다”던 그는 고민 끝에 짬뽕을 골랐다. 그리고 빼곡히 적은 맛집 리스트와 음식 목록을 보여줬다.
어머니의 바람은 소박하다. “수현이가 빨리 건강해져서 가족여행을 가고 싶어요. (수현이가) 구미로 일하러 가기 시작하면서 한동안 못 갔거든요. 가까운 데라도 가면 좋겠어요.”
수현씨네 가족은 망가진 일상을 더 늦기 전에 되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