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방송사 단체교섭 ‘물꼬’ 텄다

지역 MBC 10여곳 노사 사실상 첫 교섭 … ‘노동자성 인정’ 판결 2년 만, 업계 파장 주목

2024-05-02     어고은 기자
▲ 언론노조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지부장 염정열)가 3일부터 지역 MBC 10여곳과 단체교섭을 시작한다. 지부가 한 곳의 지역MBC사와 단체협약을 체결한 전례는 있지만 공통요구안을 내걸고 동시에 여러 지역사와 교섭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동위원회·법원에서 ‘무늬만 프리랜서’인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을 잇따라 인정했는데도 그간 작가들과 방송사와의 교섭은 성사되지 못했다.

결방료 지급기준 제정, 표준계약서 마련 공통요구

방송작가지부는 2일 오전 서울 중구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일 춘천MBC를 시작으로 상견례를 하고 원고료 인상을 비롯한 단체협상을 이어 나간다고 밝혔다. 지부는 서울 본사 제외 지역 16개 계열사 중 12곳과 교섭 일정을 확정하거나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대구·경남·광주 MBC의 경우 교섭 요구에 대한 확답을 받지 못한 상태다.

지부는 지역MBC 10여곳에 공통요구안을 제시하되 임금(원고료) 인상률 등은 지역 상황에 따라 각사별로 협상할 계획이다. MBC는 서울 본사와 지역 16개 계열사가 별도 법인이어서 정규직으로 구성된 언론노조 MBC본부도 본사와의 공통교섭 이후 지역사별로 보충교섭을 진행한다.

지부 공통요구안에는 원고료 인상률, 결방료 지급기준 제정, 표준계약서 마련 등이 포함됐다. 올림픽 등 방송사 사정으로 기존 방송이 특별편성으로 대체되면서 프로그램이 결방되면 대부분의 작가들은 실제로 일을 해 놓고 임금을 받지 못한다. 통상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난 뒤에 편당 임금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노동 무임금’ 문제를 막기 위해 결방료 지급 범위 명문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결방료 지급 범위를 구체적으로 △송출 전 3일 이내 결방될시 기존 원고료 100% 지급 △송출 전 7일 이내 결방될 시 원고료 70% △송출 전 14일 이내 결방될 시 50%로 정할 것을 요구한다. 무분별한 방송 삭제 및 축소를 막기 위해 원래 정해진 방송 횟수에서 삭제 및 편성 축소가 25%를 초과할 경우 원고료의 50%를 지급하라는 내용도 담겼다. 원고료 인상률은 2023년 언론노조 임단투 방침에 따라 10.3%를 요구한다.

전대식 수석부위원장은 “같은 MBC이지만 지역사별로 처우가 다르기 때문에 27개 조항으로 구성된 표준계약서 마련도 요구할 것”이라며 “(교섭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 위임한 교섭권을 회수해서 언론노조 상급단체 차원에서 직접 교섭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 비정규 노동자 노동환경 개선 시작점”

이번 교섭은 방송작가지부의 첫 단체교섭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17년 방송작가지부 설립 이후 KBS·MBC를 상대로 교섭을 수차례 요구했지만 방송사측은 응하지 않았다. 2018년 지부-대구MBC 사장과의 합의를 통해 원고료 지급 기준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그런데 이후엔 사측 교섭대상이 ‘국장급’으로 축소돼 원고료 교섭 의미가 많이 사라졌다는 게 지부의 설명이다. 2019년 언론노조 산별교섭을 통해 방송작가 불공정 관행 개선을 위한 공영방송 3사 방송작가특별협의체가 구성됐지만 흐지부지됐다. 2022년 7월 법원에서 MBC 방송작가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첫 판결이 나온 뒤 작가들과 방송사간 교섭이 성사될지 기대감이 커졌지만 교섭테이블은 마련되지 않았다.

염정열 지부장은 “이제야 단체교섭의 첫 물꼬를 트게 됐다”며 “이번 MBC와의 교섭은 작가뿐만 아니라 모든 미디어업계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중요한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KBS를 비롯한 다른 방송사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지난해 7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언론노조가 KBS를 상대로 낸 교섭요구 노동조합 확정 공고 시정신청 사건에서 KBS측에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 박민 사장 취임 이후 구조조정 등 이야기가 나오면서 올해 정규직 노조 교섭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지부와의 교섭도 현실화하지 않고 있다는 게 노조 설명이다.

윤창현 위원장은 “향후 MBC뿐만 아니라 KBS·SBS, 지역민방, 그리고 수많은 프리랜서들이 노동자로서 권리 박탈당하고 있는 OTT를 포함한 여러 콘텐츠 제작현장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이 교섭을 통해서 권리를 되찾고 행사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