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에 없어도 고용승계의 묵시적 성립을 인정한 판정

하은성 공인노무사(샛별 노무사사무소)

2024-04-24     하은성
▲ 하은성 공인노무사(샛별 노무사사무소)

사건 개요

우리나라 미군기지는 전국 16곳에 달한다. 주한미군 계약청은 공개경쟁 입찰로 미군기지 사병식당의 위탁운영계약 업체를 선정한다. 최저가 입찰이지만 평가기준에 ‘비현실적으로 낮은 가격을 제안하는 경우 제안 거부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낙찰업체는 한 달 남짓한 도입·준비기간 동안 자신이 입찰시 제출한 계획서에 따른 필요한 인원을 고용해 인력 구성을 완료할 의무를 가진다. 계약 기간은 최대 5년으로 3~4개의 용역업체가 돌아가며 선정되는 편이다.

갑진개발은 종전 용역업체 지배인 의견에 따라 기존 노동자 48명 중 43명은 채용하고, 나머지 5명은 채용에서 제외했다. 고용승계에서 배제된 5명 중 이 사건 근로자만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해 초심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고용승계기대권을 인정했다. 갑진개발이 이 사건 근로자의 고용을 승계하지 않은 것은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며 부당해고를 인정하는 판정을 한 것이다.

판정 요지

먼저 노동위원회는 (용역업체 변경시) 고용이 승계되리라는 기대권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중노위는 ①종전 용역업체 역시 도입·준비기간에 기존 노동자 58명 중 50명을 채용(고용)했고, 신규 용역업체인 갑진개발 역시 기존 노동자 48명 중 43명을 채용한 점과 ②군산 미군기지 노동자 고용보험 조회내역 및 진술서 등에 의할 때 10여년 동안 용역업체가 변경돼도 계속해서 근무한 노동자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는 점 등을 근거로 주한미군 사병 식당의 원활한 사업 수행을 위해 이전 수탁업체의 노동자를 계속 고용해 인적 요소를 승계하는 노동 관행이 성립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중노위는 초심의 판단 근거에서 더 나아가 고용승계기대권의 인정 근거를 추가로 제시했다. ①갑진개발이 미군 계약청에 제출한 입찰 제안서에 “현재 군산 미군식당에서 근무 중인 모든 인원에 대해 면접할 것이고 당사의 이익과 정책에 부합하는 인원을 채용하기로 한다”고 명시해 기존의 노동자들을 우선 채용하겠다는 취지의 의사를 표시하고 있는 점 ②갑진개발은 2023년 7월19일경 최종적으로 위탁업체로 선정됐고, 업무개시일은 2023년 8월23일로서 한 달 남짓한 준비기간 동안 약 50명에 가까운 인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기존 노동자를 승계채용하지 않고 신규인력을 채용하는 것을 사실상 어렵다고 보이는 점 ③주한미군 계약청도 승계채용이 아니라면 인력확보에 대해 신뢰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이는 점 ④갑진개발이 제출한 입찰 제안서는 그 내용이나 입찰공고 취지에 비추어 구속력 있는 계약의 내용을 구성한다고 봐야 하는 점 등에 비춰보면 갑진개발이 종전 용역업체 소속 근로자를 승계한다는 것을 전제로 입찰에 참가한 것이고, 미군 계약청과 고용승계를 원칙으로 하는 위탁계약을 체결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중노위는 갑진개발이 재심에서 고용승계 배제의 합리성을 주장하며 새롭게 제출한 이 사건 근로자의 경위서, 동료 노동자·관리자의 진술서 등의 증거능력을 배척했다. 판단 근거는 ①갑진개발이 주장하는 고용승계 거절사유는 이 사건 근로자의 주장과 배치되고 사후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여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려운 점 ②이 사건 근로자의 고용승계를 거절할 합리적인 사유가 있다고 믿을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보이지도 않는 점 ③갑진개발이 이 사건 근로자에게 채용을 거절하는 사유, 즉 승계거절 사유도 통지한 바 없는 점 등이다. 이에 이 사건 근로자의 고용을 승계하지 않은 것은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며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판정 의의

이번 중노위 판정에서 고용승계기대권과 관련해 주목할 것은 원청과 용역업체 사이 명시적 계약이 없더라도 고용승계를 원칙으로 하는 위탁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한 점이다.

중노위는 재심에서 새롭게 발견된 자료 및 주장을 바탕으로 원청인 주한미군 계약청과 신규 용역업체 사이에 고용승계를 원칙으로 하는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보인다며 고용승계에 관한 명문의 계약이 존재하거나 명백한 노동관행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고용승계 기대권이 성립될 수 있다는 사용자의 주장을 배척했다. 즉, 계약서에 고용승계에 대한 명시적 조항이 없더라도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노동관행 성립을 넘어 고용승계를 원칙으로 하는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관행에 근거한 고용승계기대권 인정은 위수탁 계약이 오래되지 않은 사업장은 인정되기 어렵고, 위탁 업무의 범위 및 내용이 변경되는 경우 노동관행을 인정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고용승계 계약이 묵시적으로 성립될 가능성을 열어준 판정이다.

이 사건 근로자의 대리인은 입찰공고는 청약의 유인이고, 입찰 제안서는 청약에 해당하며, 낙찰선고가 있는 경우 별도의 배제 사유 또는 제안서의 내용을 배제하는 새로운 계약이 없으면 입찰 제안서가 계약의 내용이 된다고 주장했다. 중노위는 이에 대해 “이 사건 사용자가 제출한 입찰 제안서는 그 내용이나 입찰공고 취지에 비춰 구속력 있는 계약의 내용을 구성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사용자가 입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기존 인력을 승계하겠다는 취지의 의사를 제안서에 기재했을 경우 도급인이 이를 고려해 낙찰했다면 계약 상대방인 도급인의 신뢰를 보호해야 하고, 이에 따라 고용승계를 원칙으로 하는 위탁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점을 정확하게 판단했다.

다만 묵시적 영업양도 계약의 성립 여부는 판단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이 사건 사업장은 미군기지의 특성상 위탁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시설, 취사장비, 취사도구 등 물적 자산은 모두 미군의 소유로 새롭게 낙찰된 용역업체는 종전 용역업체가 사용한 미군의 자산을 그대로 사용해야만 한다. 인적 자산도 종전 용역업체 소속 노동자 48명 중 43명이 단절 없이 동일한 업무를 담당하며 신규 용역업체인 이 사건 사용자 소속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특히 관리직인 지배인과 팀장은 한 명도 빠짐없이 그대로 채용돼 계속해 직책을 유지하고 있다. 갑진개발이 종전 용역업체의 인적·물적 조직의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일체로서 이전받았다고 봄이 상당한데, 중노위는 묵시적 영업양도 주장에도 불구하고 판단하지 않고 고용승계기대권 법리를 통해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한편 초심 지노위에서는 이 사건 근로자가 작성한 사직서의 효력이 문제가 됐다. 종전 용역업체는 사직서를 이 사건 근로자를 포함한 근로자 전원에게 일괄적으로 받았다. 이에 대해 “사직서를 받은 것은 퇴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차후에 시비가 없기 위해서 받았다. 확실하게 합의해 퇴사 절차를 종료하기 위해 사직서를 받았을 뿐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았으므로 이 사건 근로자는 합의에 따라 퇴직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판정문에 설시되지는 않았으나 초심 지노위는 이 사건 근로자가 사직서를 작성했기 때문에 해고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용자의 주장을 배척했다.

중노위 역시 사직서 작성과 관계없이 고용승계기대권을 인정하며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용역업체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사용자가 사직서를 강요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형식적인 사직서 작성 사실이 고용승계기대권의 성립과 해고의 존부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판정한 것은 바람직하다. 이처럼 노동위원회는 철저한 조사와 심리를 통해 사직서 작성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의도를 갖고 작성이 강요된 것은 아닌지, 원청과 용역업체 사이에 고용승계 조항이 계약서에 명시적으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고용승계를 원칙으로 하는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고용승계에서 배제된 노동자가 신규 용역업체에 명시적인 채용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더라도 채용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던 사정을 고려해 이 사건 근로관계 종료의 원인을 해고로 판단할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것이 조사권을 바탕으로 실체적 진실을 발견해 구제명령권을 행사해야 하는 노동위원회의 의무이자 존재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