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10년이면 강산도 바뀌는데 비정규직 공약은?
기호운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부장)
이 글은 7개 학술·사회단체(민변·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교수노조·학술단체협의회·산업노동학회·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비정규직 정책 질의서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편집자>
총선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약속과 달리 지난 21대 총선에 이어 거대 양당 비례위성정당이 다시 등장했다. 이번에도 정책선거는 사라지고 어김없이 진흙탕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노동 의제는 찾아보기 어렵고, 여러 거대 세력이 등장해 상대 세력을 내리깎고 자기 세력을 확대하는 데 전력을 쏟아내고 있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결국 피해는 대다수 시민에게 전가될 것으로 보인다.
3가지 세력: 친노동, 반노동, 그리고 중간 어딘가?
혼란한 상황, 주요 정당들은 노동정책을 정책공약집 수준에서 간단히 발표하는 등 관심도도 떨어져 있다. 그나마 공개된 자료와 학술단체협의회,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등 7개 학술·사회단체가 비정규직 정책질의로 공개한 내용으로 주요 정당의 입장을 보면, 비정규직 문제에 관해서는 크게 3가지 세력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친노동 세력. 비정규직 정책질의에 모두 동의하고 비정규직 문제 심각성에 공감하면서 구체적 해결 방안과 강한 의지를 보인 녹색정의당이다. 무엇보다도 해결 방안에 대한 구체적 내용과 정당의 명확한 입장이 있다는 점에서 가장 노동친화적이다.
두 번째는 반노동 세력. 비정규직 정책질의에 답변하지 않고, 비정규직 문제 심각성보다 기업 규제 완화와 개발에 초점을 둔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이다. 국민의힘은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불법으로 규제하는 공약(조직화된 택배노조를 불법·폭력집단으로 규정, 화물운송 자격 취소할 수 있는 제도 마련 등)을, 개혁신당은 최저임금 차등적용과 52시간 예외 사례 현실적 반영과 같은 반노동 공약을 발표했다. 두 정당은 모두 기업친화적으로 반노동 정서 측면에서 녹색정의당과는 반대에 있다.
세 번째는 중간 어딘가로 비정규직 문제 심각성에 공감하지만, 명확한 입장이 없는 정당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비정규직 문제를 이해하고 공약으로 해결을 계속 약속하지만, 이행 의지에 대한 의심이 커지고 있다. 새로운미래와 조국혁신당도 문제는 이해하지만, 명확한 해결 방안에 대한 로드맵은 미흡했다.
흥미로운 점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열쇠가 세 번째 세력에게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어떤 정체성을 가지느냐에 따라 친노동일 수도, 반노동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한 것처럼 반노동정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들은 21대 국회에서는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거나 직접고용 원칙을 수립하는 노동친화적 입법을 하기도 했다. 물론 21대 국회에서도 비정규직 주요 과제가 법 개정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반복되는 입법과제, 22대 국회 선택은?
학술·사회단체 정책질의 내용 중 △상시·지속 업무 직접고용 원칙 수립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명문화 △고용형태 따른 차별금지 조항 마련 등 3가지는 2012년 19대 총선부터 이어졌다. △국민 생명·안전 관련 업무 직접고용 원칙 수립은 20대 대선 때 추가됐다. 앞의 3개 질의에 대해서는 국민의힘 계열 정당을 제외하고는 더불어민주당 계열과 진보정당은 꾸준히 찬성 의견을 표하며 취지에 동의하고 입법을 통해 비정규직을 보호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미 10년 이상 반복되지만 이행이 되지 않을 뿐이다. 21대 국회에서도 관련해 근로기준법과 고용정책 기본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그뿐이었다.
이런 가운데 심각한 비정규직 문제해결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코로나19 시기를 빼면 비정규직 증가 속도는 줄어들고 있다. 이는 비정규직이 경험하는 고용불안정과 차별 문제에 대한 시민 인식이 높아지고, 비정규직 오·남용을 막아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최근 사법부의 불법 파견 판결이나 행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반영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국회는 사회적 흐름에 역행하며 고용 원칙 수립을 통한 비정규직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21대 총선에서 거대 정당으로 자리매김했던 민주당이 유리한 위치에 있었음에도 공약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같은 배신의 정치가 10여 년째 반복되면서 정당의 정책에 대한 신뢰는 추락하고 있다.
비정형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어디로?
이번 질의에서 의견이 다르게 나타난 부분은 특수고용과 플랫폼을 포함하는 비정형 노동에 대한 영역이다. 비정형 노동은 파편화된 특성이 있고, 실체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보니 그 규모도 추산방식에 따라 오차범위가 넓다. 무엇보다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노동자라면 당연히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안전망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문제가 심각하다. 통제받으면서 일하지만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형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은 앞으로 우리 사회가 해결할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이번 질의에서 친노동도, 반노동도 아닌 중간 어딘가의 입장을 가진 세 번째 세력은 플랫폼노동 질의 취지에는 공감하고 공약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방안은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마련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미 지난해 상반기 플랫폼 노동자의 최저임금 적용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있었다. 플랫폼노동 영역에서는 노조가 국회보다 먼저 투쟁과 교섭 등을 통해 자기 문제를 해결해 왔다. 이런 흐름에도 세 번째 세력이 사회적 공론화를 거쳐야 한다는 전제를 달면, 22대 국회에서도 플랫폼 노동자를 포함하는 비정형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사회안전망 안으로 포섭은 요원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 역시 문제 해결의 열쇠가 세 번째 세력의 손에 달려 있다는 점은 흥미로우면서도 암울하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안 터지는 방법, 연대가 답
이번 총선 과정을 보면서 2022년 JTBC에서 방영한 ‘재벌집 막내아들’ 중 한 대사가 생각났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고래 싸움에서 새우가 어부지리로 이기는 법은 새우 몸집을 키우는 거죠.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지지 않을 만큼.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시간은 새우 편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지금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득권 세력 싸움 속에서 비정규 노동자를 포함한 대다수 시민은 상황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받으며, 새우 등이 터질 것 같은 위기를 경험한다. 고래 싸움에서 비정규 노동자가 이기기 위해서는 몸집을 키워야 한다. 비정규직이 모여 연대하는 게 고래를 이기는 방법이다.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 답은 연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