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폭 몰이’ 첫 판결 유죄, ‘본질’ 외면한 법원

부울경 건설노조 간부, 징역 1년4개월에 집유 2년 … 대대적 경찰 단속에 ‘희생양’

2023-07-06     홍준표 기자
▲ 업무방해와 공동공갈 혐의 등으로 구속돼 재판받았던 김용기 건설노조 부울경건설지부 타설분회장(가운데 왼쪽)과 박상훈 부산건설기계지부 펌프카지회장(가운데 오른쪽)이 5일 오전 창원지법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된 뒤 조합원들과 환영인사를 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정부의 ‘건폭 몰이’ 이후 사법부의 첫 판단은 ‘유죄’로 기록됐다. 법원은 업무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건설노조 간부 2명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조합원 채용 요구’와 ‘노조 전임비 요구’ 전부 유죄로 인정됐다. 1천명이 넘는 건설노동자를 옥죈 경찰 수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앞으로도 검·경 수사로 범죄자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지는 건설노동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사법부는 건설현장에 만연한 불법 하도급 관행은 외면한 정부와 사용자에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

검찰 ‘가해자’ 낙인에 구속 114일 만 석방

창원지법 형사4단독(강희경 부장판사)은 5일 오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력행위처벌법)상 공동공갈 등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김용기 건설노조 부울경건설지부 타설분회장과 박상훈 부산건설기계지부 펌프카지회장에게 각각 징역 1년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와 함께 사회봉사 160시간도 명령했다. 검찰은 지난 6월14일 이들에게 각각 징역 3년을 구형한 바 있다. 김 분회장과 박 지회장은 구속된 지 114일 만에 석방됐다.

법원 판단은 ‘형법 법리’에 집중됐다. 공소사실이 대부분 인정됐다. 검찰은 부산·울산·경남 지역 건설노동자를 ‘타깃’으로 삼았다. 100명이 넘는 건설노동자들이 경찰에 불려 갔고 구속기소하는 패턴이 이어졌다. 김 분회장과 박 지회장에게 씌운 혐의도 그중 하나다. 함께 활동한 석현수 부울경건설지부장도 함께 기소됐다.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은 기각됐다.

건설사를 ‘피해자’로, 건설노동자를 ‘가해자’로 인식하는 검찰 시각이 명확히 드러났다. 창원지검은 부산·울산·경남 지역 건설노조 간부 3명이 지난해 7월께 건설노조를 탈퇴한 펌프카 기사가 운영하는 업체와 계약을 해지하도록 건설사에 압박했다고 판단했다. 같은해 7월18일 조합원 100여명과 집회를 열어 6개의 아파트 공사업무를 방해했다는 주장도 펼쳤다.

적용 죄목은 다양했다. 법률에 보장된 ‘노조 전임비’ 요구도 공소장 목록에 올랐다. 검찰은 노조간부들이 일하지도 않은 조합원을 노조 전임자로 지정해 전임비를 달라고 건설사에 요구하고 거부하면 공사를 중단할 수 있다는 취지로 협박했다고 판단했다. 적용된 혐의만 △건설노조 탈퇴 사업자 배제 요구 △6개 건설현장에 대한 업무방해 △노조 전임비·복지비 요구 △교섭 결렬 이후 장비 투입 금지 등 6개에 이른다.

법원 혐의 대부분 인정, 간부 “이제 두려움 생겨”

사법부 결론도 검찰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노조간부들은 “협약 내용에 따라 건설사측에 노조 전임비와 복지비 지급을 요구한 것일 뿐 공갈의 범의가 없다. 협박이나 위력을 행사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대부분 혐의를 인정했다. 강 부장판사는 “김 분회장은 다른 간부들과의 협력을 통해 공사를 중단시킬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며 “사측은 민주노총에서 탈퇴한 업자 A씨가 운영하는 펌프카를 현장에서 배제시키라는 취지의 협박을 받아 약 일주일 정도 공사가 중단됐다”고 지적했다.

이를 전제로 강 부장판사는 “(A씨를) 공사현장에서 배제시키기 위해 제3자인 건설사 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죄질이 좋지 않다”고 강조했다. ‘노조 전임비’ 요구도 “궁극적으로 노조활동이나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행동은 수단이나 방법에 있어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범위를 넘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형사공탁과 피해자와 일부 합의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갈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섰던 김 분회장과 박 지회장은 선고 직후 석방됐다. 조합원들과 포옹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수십명의 조합원들에게 꽃다발을 받은 김 분회장은 “조금 더 당당히 살고 싶다는 이유로 했던 노조활동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더 당당해져야 하는데 솔직히 이제 두려움도 생긴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고개 들고 살면 안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며 울먹였다. 박 지회장도 “구속될 때는 구렁텅이에 빠지는 느낌이었다”며 “앞으로 조합원들이 연대할 때 힘은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5일 오전 부울경 건설노조 간부 2명이 창원지법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되자 환영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즉각 항소 방침 “단협 따른 전임비 요구가 유죄?”

노조는 즉각 항소할 방침이다. 서일경 노조 법규부장은 “단체협약에 따라 (전임비를) 요청한 것인데 현장을 세우겠다고 한 대목을 재판부는 (수단이) 사회통념상 용인되는 범위를 넘었다고 판결한 것”이라며 “항소를 통해 다퉈서 노조의 일반적 활동 방식 등을 소명하겠다”고 말했다.

노조간부들을 변호한 조애진 변호사(법무법인 시대로)는 “수사기관은 건설사의 주장만으로 노조간부에게 공갈의 죄를 물었고, 증인으로 출석한 건설사 현장소장이 폭력이나 위해가 없었음을 인정했는데도 법원은 수단의 적정성을 따져 죄를 인정했다”며 “수사기관의 무차별적 기소에 법원이 제동을 걸어 주길 바랐는데 예상 밖의 결과라 매우 아쉽다”고 비판했다.

이재·홍준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