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 보호구 지급 의무만? 대법원 “착용 여부도 감독해야”
25층 추락사 건물 도색공, 안전대·안전모 미착용 … 법원 “안전조치 주의의무 위반” 집행유예 선고
사용자가 보호구 지급 의무뿐만 아니라 ‘착용’에 대한 관리·감독 의무까지 져야 한다고 대법원이 판결했다. 보호구 지급 의무만 부과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사업주가 정당한 사유 없이 책임을 피하게 된다는 취지다.
건물보수업체 책임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기소
30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건물보수업체 S사 상무이사 A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
S사 소속 노동자 B씨는 2020년 11월17일 오전 8시께 간이의자에 밧줄을 매단 달비계를 타고 경기도 고양시의 한 아파트 외벽 도색작업을 하던 중 25층 높이에서 중심을 잃고 추락해 숨졌다. 안전모와 안전대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조사됐다.
이에 안전보건 총괄책임자인 상무이사 A씨는 안전조치 주의의무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A씨가 안전모와 안전대를 착용하고 도색작업을 하는지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았다고 보고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적용했다. S사 법인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에 따르면 사업주는 높이 2미터 이상에서 근로자가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작업을 하는 경우 안전모와 안전대를 지급해 항상 착용하도록 정하고 있다. 또 달비계를 설치하는 경우 근로자의 추락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달비계에 안전대와 구명줄을 설치해야 한다.
1심은 A씨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법인은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A씨는 사고 당일 오전 피해자에게 지급한 안전모와 안전대 등 보호구를 착용하도록 지시했을뿐 보호구 착용 여부를 따로 확인하지 않은 채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며 “비록 피해자에게 A씨의 착용 지시에 응하지 않아 스스로 안전모를 벗고 안전대를 풀고 작업하는 등 자기안전의무를 현저히 위반한 과실이 있기는 하나 A씨가 안전조치 주의의무를 다했다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도 B씨에게 일정 부분 과실이 있다고 보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는 무죄를 선고했다. 안전보건규칙 규정이 ‘보호구 지급 의무’ 외에 ‘착용 감독 의무’까지 정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징역형 집행유예 확정 “산재 위험 방치”
하지만 항소심은 1심 판단이 잘못됐다며 A씨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안전보건규칙 32조1항은) ‘보호구 지급 등 의무’ 외에 근로자가 보호구를 착용하는 것까지를 관리·감독할 주의의무를 부과하는 규정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법률 조항을 보호구 착용 여부에 대한 관리·감독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은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 사업주에게 일정한 의무를 부과하려는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 증진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그것이 실제로 준수되고 있는지 실질적으로 관리·감독할 의무가 있는 사업주에게 정당한 사유 없이 책임을 면하게 해 주는 것이어서 전혀 타당하지 않은 법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A씨가 노동자들이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B씨 동료들은 구명줄에 안전대를 연결하면 줄이 꼬여 불편해 감독자 몰래 안전대와 구명줄을 체결하지 않고 작업한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재판부는 “A씨는 더더욱 주의를 기울여 설치 여부를 확인하고 현장 안전관리책임자를 별도로 지정해 관리하게 했어야 한다”며 “작업시작 전 안전교육을 하면서 형식적으로 설치를 지시했을 뿐 2시간이 지나는 동안 이를 준수하는지 확인하고 감독하는 등 행위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A씨는 상고했지만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