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도 울고 갈 공정거래위의 ‘문워크’
호영진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유명한 댄스 기법인 문워크(Moonwalk)를 모두 아실 것이다. 댄서가 앞으로 스텝을 딛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뒤로 움직이는 동작인데, 전설적인 팝 가수 마이클 잭슨이 1983년 공연에서 선보이며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문워크가 세상에 알려진 지 어언 40년, 최근 절륜한 문워크를 선보이며 마이클 잭슨의 위상을 위협하는 자가 나타났으니, 바로 ‘공정거래위원회’다.
지난해 12월2일, 여느 때와 다름없던 출근길에 낯선 광경을 목도했다. 한 무리의 낯선 사람들이 노조 건물 진입을 시도하며 노동조합과 대치하고 있었다. 공문을 들이밀며 “화물연대본부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겠다”던 그들은 공정거래위 직원이었다.
처음엔 늘 있던 현 정부의 노조탄압 정도로 생각했다. 위헌성 문제 때문에 2003년 도입된 이래 한 차례도 발동한 적 없었던 화물노동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까지 강행한 화끈한 정부가 아니던가.
사무실에 들어와 공정거래위원회를 검색해 봤다.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경쟁을 도모하는 기관,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각종 규제·정책·조사·심판 등 업무를 수행한다는 소개 글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자의 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는 기관이 왜 화물노동자들과 화물연대본부를 조사하겠다는 것인가. 노동자, 노동조합으로 인정하기는커녕 화물노동자의 노동자성 자체를 부정하고 사업자로 보겠다는 것인가.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올해 1월18일, 화물연대본부를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알리면서 화물노동자는 “사업자”이고 이들이 결성한 화물연대본부 역시 “사업자 단체”이므로 자신들의 조사 대상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고발결정서에서는 화물연대본부를 “사업자 단체”로 규정한 근거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판례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저변을 점차 확대해 가고 있다. 2018년 학습지교사 판결에서 대법원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근로자성 판단기준을 확립했고, 이후 대법원과 각급 법원에서 화물노동자의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이 잇따라 나온 것이다. 심지어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인 택배기사들에 대해서는 노조법상 근로자성 인정을 넘어 원청의 교섭 의무까지도 인정하고 있다.
판례만이 아니다. 지난해 4월에 발효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에 따르더라도 특수고용 노동자인 화물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는 폭넓게 보장돼야 한다.
이러한 판례의 흐름과 ILO 기본협약 비준 사실이 무색하게도, 고발결정서 속 공정거래위는 화물연대본부 소속 화물노동자들의 사업자성을 입증할 만한 변변한 근거 하나 없이 화물노동자와 화물연대를 “사업자”와 “사업자 단체”로 선포하고 검찰 고발까지 강행하며 화려하게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수장인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의 행보는 한층 더 돋보였다. 공정거래위 전원회의 주재를 맡으며 공정거래위 심판 기능을 담당하는 위원장이 화물연대 총파업에 대한 공정거래법 적용 여부를 검토해 보라는 지시를 내려 공정거래위가 스스로 밝힌 “조사·심판 기능의 엄격한 분리”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했다.(어떤 기자는 이를 두고 ‘판결을 내려야 할 판사가 기소까지 한 상황’이라며 참으로 적절하게 표현했다.) 그러더니 지난해 12월2일에는 이례적으로 직접 브리핑까지 열어 엄정 대응 운운했다.
그 행보는 이달 7일 공정거래위 대정부 질의 석상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입차주인 화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2021년 대법원 판례의 입장과 노동조합 또는 사업자 단체 해당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단체의 활동에 대해 공정거래법과 같은 소위 ‘경쟁법’의 적용을 원칙적으로 배제하는 세계적 추세에도 불구하고, 화물연대본부를 사업자 단체로 볼 실질적 근거도 없이 조사·고발하는 것이 타당하냐”고 질의했다. 이런 지적에 한기정 위원장은 “화물기사는 사업자 등록을 하고 직접 또는 위탁을 받아 화물운송사업을 하는 사업자”라는 형식 논리에 충실한 답변만을 반복했다. 판례와 세계적 흐름마저 거스르는 우직한 뒷걸음질을 보여준 것이다. (시간이 되면 대정부 질문 영상을 찾아보기 바란다. 고구마 100개를 한 번에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화물연대본부의 화물노동자들이 안전운임제 일몰폐지와 전면확대를 주장하며 총파업으로 나아간 사실 자체가 이들이 무늬만 개인사업자이지, 그 실질은 노동자임을 말해 준다. 안전운임제야말로 지입제와 다단계 위탁구조하에서 상시적인 과로·과속·과적 운전에 내몰리는 화물노동자들의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한기정 위원장의 답변처럼 이들이 정녕 화주·운송사 등과 동등한 계약관계에서 자유롭게 일하는 ‘개인사업자’였다면 안전운임제를 유지하기 위해 거액의 손해배상 위협에도 운전대를 놓고 거리로 나왔겠는가. 건강을 망쳐 가며 한 달 넘게 곡기를 끊었겠는가.
최근 공공운수노조는 공정거래위의 화물연대본부 검찰 고발 조치가 ILO 기본협약에 위반한다는 취지의 추가 진정을 제기했다. ILO의 조사 결과가 나오더라도 공정거래위가 지금의 문워크를 멈출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화물노동자의 현실과 실질을 외면하고 오로지 형식 논리에 매몰된 공정거래위의 ‘불통 문워크’는 보기엔 그럴듯할지언정 결코 마이클 잭슨과 같은 대중의 사랑과 지지를 받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