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화탄소 누출에도 일하다 숨져, 법원 “회사가 7천만원 배상”
경비업체, 화재경보에도 작업 지시 … “시공업체·경비업체 모두 위법”
화재경보기가 울리는데도 경비업체의 지시로 작업하던 현장에서 이산화탄소 중독으로 목숨을 잃은 아파트 관리소장의 유족에게 회사와 책임자들이 약 7천만원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법원이 판결했다.
8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민사15부(재판장 정완 판사)는 산재로 숨진 아파트 관리소장 A(사망 당시 70세)씨의 아내와 자녀들이 경비용역업체와 관리자,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환풍설치 시공업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최근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원·피고 모두 1심에 불복해 지난 1월 항소했다.
사고현장 내려왔다 이산화탄소 흡입 사망
사건은 아파트 경비용역업체에 소속돼 서울 광진구 한 아파트의 관리소장으로 일하던 A씨가 2018년 8월10일 지하 전기실 내부의 악취제거를 위해 환풍설비 설치를 설비시공업체 현장관리 책임자인 B씨에게 부탁하면서 시작됐다. B씨는 업체의 다른 직원 C씨에게 벽을 뚫는 작업을 지시했다.
그런데 C씨가 작업하던 중 화재경보기가 올렸다. 하지만 경비업체의 기계·전기실 관리자인 D씨가 전기실의 탄소배출장치에 물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조치한 후 C씨에게 계속 작업하라고 지시한 것이 사고 원인이 됐다.
천공작업으로 인해 벽면 내부의 전기배선이 손상되면서 탄소배출장치가 오작동해 이산화탄소가 순식간에 퍼졌다. 사고를 감지한 A씨는 전기실로 내려왔다가 이산화탄소에 중독됐다. 즉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저산소성 뇌병증’을 진단받고 3년 넘게 투병하던 중 지난해 3월 숨졌다.
이후 B씨와 D씨는 업무상과실치상으로 기소돼 2020년 5월 항소심에서 각각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다만 천공작업을 했던 C씨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이와 별개로 유족들은 2021년 11월 민사소송을 냈다.
법원 “무리한 작업지시, 주의의무 위반 ”
법원은 시공업체 관리자 B씨와 경비업체 관리자 D씨의 불법행위를 인정했다. 더불어 법인들도 사용자책임의 주체로서 공동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전기실 벽면에는 화재감지기 조절장치·탄산배출장치와 연결된 전기배선이 있어 위험요소가 없음을 확인한 다음 안전하게 작업이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며 “화재경보가 울렸을 경우 모든 작업을 중단하고 경보가 울린 원인을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B씨는 전기배선 지식이 전혀 없는데도 전기배선 위치에 대한 고려 없이 C씨에게 타공 위치를 알려 주고 작업하게 했다”며 “D씨는 아파트 기계·전기실 관리자인데도 작업 현장을 벗어나 있다가 화재경보기가 울렸음에도 원인 파악 없이 계속 작업을 지시했다”고 꼬집었다. 공동의 과실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시공업체측은 A씨가 B씨를 개인적으로 고용했고, A씨가 안전조치 없이 현장에 출입했다가 사고를 당했다며 망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재판부는 “시공업체 관리자의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의 과실이 사고 발생의 주요 원인”이라며 “망인이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 사고 발생에 기여했더라도 시공업체측의 책임을 부인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다만 입주자대표회의는 경비시설업체에 계약을 맡겼을 뿐 A씨의 근로를 제공받았다고 할 수 없다며 책임 의무가 없다고 봤다.
유족을 대리한 김용준·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경비업체 현장관리자와 시공업체 책임자의 공동 과실로 인해 사고가 발생한 점에서 불법행위의 성립을 인정하고, 나아가 소속 회사들도 공동의 사용자책임을 인정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