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 중 한국와이퍼, 노조 합의 없는 해고 안 돼”

법원 단체협약위반금지가처분 신청 인용 … “청산 과정 중 단협 존속, 준수해야”

2023-02-01     강예슬 기자
▲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

청산 절차를 진행 중인 한국와이퍼가 노조와 합의 없이 조합원들을 해고해서는 안 된다는 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청산 과정에서 해고에 대한 노조 합의권을 인정한 법원의 첫 판단으로 의미가 적지 않다.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10민사부(재판장 남천규 판사)는 지난 30일 금속노조가 한국와이퍼를 상대로 제기한 단체협약위반금지가처분 신청에서 “한국와이퍼는 단체협약상 절차에 따른 금속노조와 합의 없이 채권자 소속 조합원들을 해고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 단 해고 기간 하루당 5천만원을 지급하라는 노조의 간접강제 신청은 기각했다.

“해고 금지 협약, 상법 위반 아냐”

한국와이퍼는 노조에 지난해 7월7일 그해 12월까지만 회사를 운영하고 올해 1월8일부로 청산한다는 계획을 일방 통보했다. 한국와이퍼 노사가 2021년 “회사는 청산·매각·공장 이전·구조조정의 경우 반드시 노동조합과 합의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고용안정 협약서는 종잇장이 됐다. 노조는 즉시 단체협약위반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안산지원은 지난해 11월24일 “청산 절차를 금지해 달라”는 노조의 요구는 기각했지만, 12월1일 노조가 추가로 제기한 “해고를 금지해 달라”는 요구는 받아들였다.

안산지원은 “노조와 사전 합의 없는 해고 금지는 그 자체로 청산 절차 진행을 불가능하게 한다거나 상법의 강행규정을 반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회사가 청산 절차에 돌입했다고 해도 그 법인격은 청산의 목적 범위 내에서 존속하므로 단체협약도 청산기간 중 존속하며 협약 당사자는 이를 준수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앞서 노조가 제기했던 가처분의 경우 자산 처분·양도의 금지, 잔여재산의 매각·환가의 전면금지 등을 요구하고 있어 상법이 규정하는 강행규정(청산에 관한 법적 규정)을 위반해 단협의 효력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노조는 선행 가처분신청 결정에 즉시항고해 고등법원에서 회사와 법리를 다투고 있다.

‘청산시 노조와 합의’ 조항에
“해고와 기타 근로조건 등 포함”

안산지원은 ‘청산의 경우 반드시 노조와 합의해야 한다’는 단협 문구에 대해 “(회사가) 노동조합과 의견을 성실하게 교환해 노사 간 의견 합치를 봐 청산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는 뜻에서 합의를 규정한 것”이라며 “합의의 대상인 ‘청산’은 청산에 관한 절차 내지 청산에 관한 사항을 모두 포함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청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해고 및 기타 근로조건이나 근로자지위 변동에 관한 상황이 모두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해석의 근거로 한국와이퍼 노사가 고용안정 협약을 체결하게 된 경위와 협약서의 목적이 고려됐다. 노조는 2021년 회사의 1차 청산시도를 인지했고 고용안정협약 체결을 시도했다. 협약서에 “사업의 전부를 양도·매각할 경우 모든 직원 또는 해당 직원의 고용승계 조항을 포함하고, 노조와 근로조건 관련 사항에 대한 합의해야 한다”는 내용이 주요하게 담긴 이유다.

가처분 인용시 회사는 파산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법원은 “(파산은) 협약서에 따른 사실상 결과일 뿐 그러한 사정만으로 이 사건 협약서의 구속력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안산지원은 “본안 소송 이전에 채권자 소속 조합원들이 해고되고 채무자의 청산이 종결되면 채권자의 청산 과정 해고에 대한 사전합의권 또는 합의 없는 채권자 소속 조합원들의 해고 절차를 중지할 권리의 침해 구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한국와이퍼 사측은 2월18일자 해고예고를 통보한 상태다.

장석우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경영상 정리해고나 공장 이전, 기업 분할 매각 등에 대한 노조의 합의권을 인정한 판결이나 가처분 결정은 있었는데 청산 절차에 대한 (노조) 합의권을 인정한 판단은 처음”이라며 “너무 당연한 판결인데 늦게 나왔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