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속도에 맞춰 살아가야 할까

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2023-01-19     배병길
▲ 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우리는 달리는 자본의 등에 올라탄 지 오래다. 그동안 누군가는 자본을 멈추려 하고, 누군가는 자본의 속도를 늦추려 한다. 그러나 자본은 갈수록 더 매서운 속도로 달리고 있다. 대다수는 자본을 찬양하든, 비판하든, 저주하든 여전히 달리는 자본의 등에 올라타 있다. 속세를 떠난 구도자나 자연에서 자급자족하며 사는 자연인이 아닌 이상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력은 이미 시장에 넘어 갔다”고 말했다. 정치 권력의 정점에 선 자의 자조적이면서도 솔직한 발언이었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흐른 지금, 자본 권력의 파이는 더 커졌다. 행정부·입법부·사법부·언론 등 자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우리가 권리로 정치권력을 선출하는 건지, 자본이 돈으로 정치권력을 사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한 편의 쇼 비즈니스로 전락 중인 선거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푸코가 말했듯, 권력은 대중을 통제하려 들기 마련이다. 과거에는 잔혹한 형벌과 같은 요란스러운 방식을 썼다면 현재로 올수록 교묘해졌다. 통제는 학교·관공서·일터 등 일상에서 미시적으로 이뤄진다. 대중은 통제받는지도 모른 채 통제받고 있다. 특히 플랫폼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콘텐츠를 멍하니 보면서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편향된다. 과거 검색한 제품이 계속해 추천 광고로 뜨기도 한다. 자본이 우리의 일상과 크고 작은 선택을 기록하고 관리하고 유도하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행하는 노동 역시 통제 수단 중 하나다. 어느 나라를 가든 대다수 노동자는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한다. 주말에는 쉰다. 통용되는 복장을 갖추고 정해진 규칙과 관습, 예의와 절차를 따른다. 그리고 체계적으로 구조화된 일을 한다. 조직의 비전과 목표, 역사를 끊임없이 되뇌는 건 물론이다. 또한 노동자는 일터에서 보고 듣거나 경험하는 관심과 배려·협력·연대뿐만 아니라 생존 경쟁, 차별과 멸시, 폭력 등을 알게 모르게 내면화한다.

자본이 직조한 세상에 던져진 우리는 자연스레 자본의 속도에 발맞춰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자본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더 빠르게 회전할수록 더 빠르게 증식하기 때문이다. 질주하는 자본의 속도에 발맞춰 사는 건 쉽지 않다. 평범한 사람의 일생은 학업·취업·노동·은퇴 순으로 빈틈없이 짜여 있는데, 어느 단계에서 한 번만 미끄러져도 저만치 뒤처지기 마련이다. 과로나 번아웃으로 힘들어 하는 이를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유와 소통, 연대를 이야기하기에 자본의 속도는 너무나도 빠르다. 자본이 주술을 외듯 ‘자유’만 외쳐대는 이유다.

심지어 자본을 견제해야 할 노동마저 자본의 속도에 발맞추기도 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자본은 가속 페달을 밟았다. 금융시장이 개방됐고, 구조조정이 단행됐으며, 비정규직이 양산됐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노동은 눈앞의 밥그릇을 지키기에 급급해 전체 노동 계급적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길 게을리했다. 자본의 경쟁 논리를 기꺼이 따랐고, 여기저기 울타리를 치며 노동자끼리 편을 나눴다. 그렇게 20여년이 지난 지금, 전체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율은 40%를 넘나들고 비정규직 노조조직률은 3%가 채 안 된다.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 임금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가량을 가져간다. 물론 자본의 탐욕과 정치의 실패가 극심한 불평등의 가장 큰 원인이겠으나, 노동 역시 반성할 지점이 만만치 않다.

나도 모르게 끈적끈적하게 들러붙은 자본의 습성을 계속해 떨쳐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관성대로 살다 보면 결국 자본의 길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어쩌면 조금 한가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눈앞의 위기가 산더미다. 돌파하기만으로도 벅차다. 그럼에도 더는 가벼이 여길 수 없다. 자본의 속도에 발맞추기만 해서는 자본이 짜 놓은 판 위에서 아웅다웅할 뿐이다.

자본의 속도에서 벗어나는 건 강대강으로 부딪치는 투쟁만큼이나 힘들 것이다. 적이 명확하지 않고, 당장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며, 필요하다면 스스로에게 메스를 겨누기도 해야 한다. 그래도 서서히 침몰하는 배를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결국은 침몰하고 말 테니.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ilecdw@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