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서 ‘남’ 주지 못하는 학자들

우상범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2023-01-17     우상범
▲ 우상범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장면1 : 금강산의 댐

초등학교로 변한 국민학교에 다닐 때 얘기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국가를 위해 모금이 있으니 각자 성금을 가져오라고 했다. 넉넉지 않았던 집안 사정에도 불구하고 애국하는 마음으로 부모님을 졸라 얼마간의 성금을 냈다. 정확한 액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많지 않았다. 당시 모든 초중고 학생들은 물론 일반 시민도 성금에 동참했다. 심지어 정부는 기업 규모에 따라 성금 액수를 정해 강제 모금도 서슴지 않았다. 반공이 온 나라를 휩쓸던 시기여서 성금을 내지 않으며 ‘애국자’가 아닌 ‘빨갱이’로 낙인 찍힐 판이었다. 성금은 북한의 ‘금강산 댐’에 맞서 우리나라를 구할 ‘평화의 댐’을 만드는 데 사용됐다. 훗날 이 ‘평화의 댐’ 건설은 국민 대사기극으로 드러났다. 요즘 말로 ‘뻥’이었다. 1986년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국민과 대학생들의 시국선언과 농성이 많아지자 시선을 돌리기 위해 전두환 심복이던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장세동과 이학봉이 짜낸 ‘가짜 시나리오’였다. 정부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방해하려고 북한이 ‘금강산 댐’을 만들고 있으며, 만약 200억 톤의 물을 방류하면 대부분의 서울이 잠기고 63빌딩도 절반이 물속으로 가라앉는다고 설명했다. 연일 TV, 신문 등에서 물에 잠긴 서울을 보여주며 불안에 떨게 했다. 나중에 금강산 댐 저수량은 최대 200억 톤이 아니라 26억 톤 정도로 판명됐다. 정권의 나팔수던 언론은 물론 대학교수까지 나서서 정권 유지를 위한 ‘안보 팔이 장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대표적으로 서울대학교 토목공학과 S교수가 있다. 그는 보고서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서울 물바다를 끊임없이 주장했다. 그런 공로를 인정받았는지 나중에 그는 서울대 총장은 물론 기타 화려한 경력을 쌓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리더로 이름을 날렸지만 ‘금강산 댐’ 사기 사건에 적극 가담한 것에 대해서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과거에도 현재에서도….

#장면2 : 한반도 대운하와 4대강 살리기

2008년 대선에서 선출된 새 대통령은 과거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 사장을 역임해서 그런지 대선 공약으로 ‘한반도 대운하’를 제시했다. 물 부족 국가인 우리나라의 안정적인 물 수급과 물류비용 절감을 위해 대운하가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대운하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거세자 ‘대운하’ 대신 하천 정비를 위한 ‘4대강 살리기’로 이름을 살짝 바꿔 사업을 계속 추진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에 총 22조원 공사비가 투입됐고, 이 과정에 자연 훼손은 물론 불법적 투기 세력이 판을 쳤다. 하지만 정부는 4대강 사업으로 홍수와 가뭄을 방지하고 국가의 격을 높였다고 ‘셀프 칭찬’에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4대강 사업으로 강들은 죽어갔다. 매년 여름마다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진동했다. 4대강인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일부는 더 이상 물고기가 살 수 없는 죽은 강이 되었다. 당시에도 대학교수가 주도해 정부의 ‘한반도 대운하’와 ‘4대강 사업’ 찬양과 홍보했다. 환경운동연합과 운하반대전국교수모임은 2013년 4대강 사업 추진에 기여하고 진실을 왜곡한 인사를 S급(10명), A급(167명), B급(105명)으로 선정해 발표했다. 대표적으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P교수다. 그는 4대강 사업으로 녹조가 생기면 배의 스크루를 돌려 물에 산소를 공급하면 해결된다고 말해서 일명 ‘스크루 박’으로 불렸다. 그는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환경단체를 ‘친북좌파’라고 매도하기도 했다. 이런 공을 인정받아 나중에 국립환경과학원장이 된다. 4대강 사업에 이론적 기반과 정당성을 제공한 대학교수는 5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공로로 13명은 훈장과 포장을 받았고 수많은 참여 교수가 대통령과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이들은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장면3 : 노동시간과 임금체계

2022년 대통령 선거는 초박빙이었다. 0.7%가 대통령을 결정지었다. 새 대통령은 검사 출신답게 줄곧 ‘법치주의’를 내세우고 ‘공정과 상식’을 외쳤다. 물론 대통령 가족과 측근은 예외였다. 대통령은 대 놓고 노조와 노동자에 반감을 보였다. 후보 시절 주 120시간의 노동시간을 언급하며 노동자는 사용자가 시키는 대로 하고 주는 대로 받는 기계로 취급했다. 결국, 공정과 미래 발전을 위해 노동시간과 임금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제 정부는 노동자들과 노조의 저항을 의식해 정부 입장을 대변해줄 대역을 찾기 시작했다. 미리 짜 놓은 각본을 충실히 따를 배우로서 교수만 한 전문가 집단이 없기 때문이었을 터다. 곧바로 12명의 법학·경영학·경제학 등 다양한 전공의 교수를 임명해 ‘미래노동시장 연구회’를 만들었고 이들은 정부 정책에 충실한 보고서를 권고문이란 이름으로 내놓았다. 권고문에서 이들은 현재 주 단위 노동시간을 월, 분기, 반기, 년으로 변경하고 호봉제는 직무급제로 개편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권고문을 작성하면서 양대 노총과 논의하거나 간담회를 개최하지 않았다. 현재 노동계와 학계는 장시간 노동을 야기하고 임금체계보다 대기업-중소기업 임금격차 해소가 더 시급한 문제라고 우려한다. 정부는 권고문을 근거로 개혁이란 미명 아래 ‘노동개악’을 추진하고 있다. 의리를 중시하는 검사 출신 대통령은 언제가 12명의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교수들에게 확실한 보상을 할 것이다. 아마도 이들 교수는 미래에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려는 ‘교수’는 배워서 ‘남’ 주는 일을 해야 하는 지식인이다. 여기서 ‘남’은 소외된 자, 가난한 자, 연약한 자일 것이다. 교수들이 이들의 권리·보호에 앞장설 때 우리 사회에서 존중받는 진정한 지식인이 되지 않을까. 전태일 열사는 1970년 열악한 노동환경을 지적하고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려줄 지식인이 없었다고 한탄했다. 자기 영달을 위해 지식을 팔고 나중에 사과 한마디 않는 지식인이 우리 사회에서 없어지길 바란다. 배워서 ‘남’ 주기보다는 모름지기 ‘자기 욕심’ 채우는 그런 교수들 말이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wadrgo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