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술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박은하 공인노무사(노무사사무소 지담 대표)
키오스크는 무인으로 운영되는 주문 기계로, 소비자 스스로 주문·결제를 할 수 있도록 도입됐다. 처음에는 패스트푸드점 위주로 조금씩 생기는 것 같더니 이제는 일반 음식점, 대형 마트, 편의점 등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곳에서 볼 수 있게 됐다. 키오스크의 빠른 도입에는 코로나19도 한몫했다. 표면적으로는 비대면 주문의 필요성을 이유로, 인건비 절감을 숨겨진 진짜 이유로 키오스크는 슬금슬금 늘어났다. 이제는 키오스크가 없는 매장이 어색할 지경이다.
그런데 서울 종로3가 맥도날드에는 키오스크가 없다. ‘왜 없지?’ 생각하며 카운터 앞에 늘어진 줄 뒤에 따라 선다. 아무리 살펴봐도 정말로 없다. 보통은 있어야 할 대기 번호도, 은행 창구를 떠올리게 하는 대기 번호 알림 모니터도 없다. 카운터 직원은 음식이 나오면 소리 높여 고객을 찾는다.
“행운버거 세트 주문하신 고객님!” 주문하신 “고객님”이 나타나지 않으면 여러 번 외쳐야 한다. 매장의 1층과 2층을 오가면서 보니 왜 키오스크가 없는지 짐작이 간다. 종로3가 맥도날드의 주 이용객은 노인들이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어르신을 위한 디지털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키오스크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의 목표는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해 모바일이나 인터넷·전자기기 사용이 어려운 소외계층의 역량 강화를 지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교육도 종로3가 맥도날드매장에 키오스크를 둘 수 있을 만큼은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단지 불충분한 교육만이 문제일까?
키오스크는 언뜻 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기술이다. 그러나 노인들은 키오스크 주문을 무척 어려워한다. 키오스크를 이용해 내가 원하는 메뉴를 주문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문해력(말 그대로 읽을 줄 아는 것은 기본이고, 수많은 선택지, 많은 팝업창, 기기마다 제각각인 버튼의 벽을 넘을 수 있는)이 필요하며, 더딘 이용으로 민폐를 끼칠까 우려하는 마음도 키오스크 주문 자체를 꺼리게 되는 원인이다. 또 키오스크는 성인·비장애인의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설치된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 키가 작은 어린이들은 키오스크 화면을 보기도 어렵고 입력 버튼까지 손이 닿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은행 또한 무인 운영으로 대체되는 대표적인 사업장이다. 인터넷 뱅킹이 확산하면서 은행 창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인터넷 뱅킹이라는 기술은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나 쉽게 스스로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터넷 뱅킹을 한 번이라도 사용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처음으로 인터넷 뱅킹을 시작하기 위해 거쳐야 할 절차들은 너무도 많다. 공인인증서 발급과 로그인 절차를 거치며 짜증이 나지 않았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스마트폰의 매끄러운 화면을 잘 조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불편 없는 시야, 섬세한 손가락, 그리고 인터넷 사용 법칙들까지 이미 숙지한 상태여야 한다.
그런데 모바일뱅킹 등 비대면 방식을 이용하는 소비자가 늘어났음을 이유로 시중은행들은 점포를 통폐합 하는 방식으로 영업점을 줄이고 있다. 은행의 신규채용도 대규모 공채 형식이 아닌 디지털 관련 인력으로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은행을 직접 방문해 창구의 직원을 통해서야 업무를 볼 수 있는 사람이나 계층은 여전히 존재한다. 단지 모바일뱅킹이 이들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취급할 뿐이다.
업무의 디지털화를 이유로 직원이 감축된 은행의 모습은 어떠한가. 실제 은행창구를 방문해 업무를 봐야 하는 경우 그 불편함이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노동시간 중 짬을 내 은행을 방문하려 해도 일터 주변에는 영업점이 없고, 겨우 방문해도 창구에는 은행원이 적어 대기시간이 한정 없이 길다. 게다가 최근에는 오후 3시30분이면 업무를 종료하는 은행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은행원들의 이기심 때문이 아니다. 창구업무는 셔터 내린 후가 진짜 업무시간이라고 할 정도로 창구마감 후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다. 진짜 문제는 업무량은 여전히 많은데, 처리할 노동자만 감소했다는 점이다.
“가치중립적으로 발전하는 기술”이란 허상이다. 키오스크의 도입 목적은 무엇일까? 누가 무엇을 얻었고, 누가 무엇을 잃었는가? 그것은 우연한 결과가 아니라 선택의 결과다. 키오스크는 실제 도소매업의 서비스 노동자를 대체했다. 인터넷뱅킹은 은행창구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대체했다. 실제로 판매직종은 자동화 확률이 높은 직업군으로, 2020년 이후 취업자수가 대폭 감소했다. 기계로 대체된 노동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21세기에 기계로 대체될 수 없는 직업이라는 것이 존재할 것인가? 이러한 대체는 이윤이나 숫자로 봤을 때에는 일견 합리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업이 떠안아야 할 사회적 비용을 특정 계층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기술은 표준으로 칭해지는 집단 외의 집단을 소외시킨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비장애인·비청소년·비노년층으로 한정된다. 장애인·청소년·노인 등 연령과 신체적 제약에 의한 전통적 의미의 소외계층에 더해, 이제는 기술 발달로 인한 소외계층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기술의 속도로 갈 수 없다(김초엽 작가의 책 제목에서 빌려 왔다). 우리는 사람이고, 사람에겐 사람이 필요한 일이 있다. 어떤 사람만을 위한 기술은 어떤 사람들을 희생시킨다. 우리는 절대 기술의 속도로 갈 수 없다. 기술의 발전과 대체되는 노동자 사이에 어떤 식으로 균형을 잡아야 할 것인지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유용해 보이는 기술 뒤에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누가 있을지, 이로 인해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비용을 부담하게 되는지 항상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