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더 이상 국회 앞 농성하는 일이 없길
김주연 변호사(서비스연맹 법률원)
입사 첫해인 올해 법률원과 함께한 여러 활동 중에서 지난 7월23일 ‘대우조선 하천노동자 희망버스’를 타고 거제도에 다녀온 것이 유달리 기억에 남는다. 주말 일정에, 왕복 10시간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살짝 망설이기도 했지만, 당시 옥쇄투쟁을 진행하고 있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님이 나온 기사 사진을 본 순간 희망버스에 꼭 타야겠다는 생각만이 남았다. 좁은 철구조물 속에 몸을 간신히 구겨 넣은 부지회장님이 손에 쥔 피켓에 적힌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는 지금 다시 떠올려도 울컥하게 된다.
희망버스가 거제로 출발했던 날은 지회와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회사협의회 사이에 임금협상이 타결된 다음날이었다. 지회는 51일 동안 이어 온 파업을 철회했고, 희망버스 본대회는 힘겨운 투쟁을 마무리하고 돌아온 지회 조합원들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조합원들과 시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춤추고 노래하는 흥겨운 자리로 구성됐다. 환하게 웃으면서 공연을 하는 조합원들을 보며 먼 길을 달려와 이들에게 ‘수고했다’는 응원의 박수를 보낼 수 있어 참으로 보람된 하루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희망버스가 서울로 돌아온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지회를 다시 뉴스에서 보게 됐다. 사내협력회사협의회가 파업에 참가했던 조합원에 대한 고용승계를 이행하지 않아 지회장님이 국회 앞에서 조합원 고용보장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에 들어간 것이다. 지난 7월 노사가 이미 합의한 사항을 두고도 “그 약속을 지켜 달라”며 다시 단식농성하는 힘겨운 투쟁을 이어 가야 하는 현실에 참담함을 느꼈다. 그렇게 지회는 8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 22일간 진행된 지회장님의 단식농성을 통해 ‘약속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 후로 시간이 흘러 여름 무더위가 오히려 그리워지는 추운 겨울이 찾아왔다. 역대급 추위라는 이 겨울에 6명의 노동자들이 국회 앞에서 27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중 3명이 지회 소속 조합원이다. 이들이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다시 국회 앞으로 모인 이유는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이 지회가 진행한 파업으로 영업손실이 발생했다며 약 47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지회의 사례처럼 원청을 상대로 노동조합 활동을 펼치는 과정에서 가압류, 손해배상 청구, 형사고소 등 각종 법적 쟁송에 휘말려 위협받고 있는 노동자들이 모여 이러한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해결책으로서 노조법 2·3조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고용형태가 다양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노동법이 상정하고 있는 전통적인 근로계약 관계에서 벗어난 특수·간접고용 노동자들은 단체교섭권·쟁의권 등 노조할 권리를 완전하게 보장받지 못하는 문제에 놓여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의 모습을 쫓아가지 못한 노동법의 빈틈을 포착한 사용자들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노동조합 활동을 억누른다. 모든 노동자들이 노동 3권을 온전하게 보장받을 수 있도록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는 근로자·사용자의 정의를 개정하고 협소한 노동쟁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노조법 3조는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해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에서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 수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에 계류돼 있다.
특히 이번에 제출된 개정안은 노조법 2조와 3조를 함께 개정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운동본부는 “노조법 2조 개정 없는 3조 개정은 그 의미가 매우 축소될 수밖에 없고, 현실적으로도 최근의 가압류·손해배상 청구가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근로자성, 원청의 사용자성과 결부돼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노조법 3조와 더불어 반드시 2조도 개정될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해 왔다. 더 많은 노동자들과 노조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2조 정의 조항에서 노동법의 테두리를 확장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로 대표되는 노동자들의 요구와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들의 염원대로 이번 기회에 꼭 노조법 2·3조가 개정돼 다음번에 이들을 만나게 되는 곳은 국회 앞이 아니기를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