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세나르 협약의 배경과 과정

2022-12-23     이정호
▲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노조 망신 주기로 노동개혁 되겠나.”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를 가장 압축해 비판한 한국일보 11월21일자 사설 제목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선 당시 캠프에서 활동한 2030 청년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열면서 노동·연금·교육개혁 중 노동개혁을 가장 먼저 추진하겠다고 발언했다. 다음날 한국일보는 이 사설을 썼다.

한국일보는 사설 첫머리를 “정부 여당 인사들이 느닷없이 노조 재정 투명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18일 “노조 재정 운용의 투명성 등 국민이 알아야 할 부분에 대해 정부도 과단성 있게 요구하겠다”고 발언한 데 이어 하태경 의원은 300명 이상 노조 회계자료를 해마다 행정관청에 의무 제출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 때도 문제 해결보다는 노조의 불법성만 강조했다.

한국일보는 “현재 특별히 노조의 회계부정이나 국고보조금 유용 사건이 없는데도 정부 여당이 잇따라 노조 회계투명성을 강조하는 행보는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고 했다. 실제 하태경 의원은 자기가 입법발의한 노조법이 통과되지 않아도 “(법 개정을) 거부하는 노조만 나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는 하 의원의 이 발언을 ‘노동개혁에 발목 잡는 노조’라는 낙인찍기 의도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노조를 흠집 내고 망신 주는 방식으로 일부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해 당사자인 노조를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 설득하지 않으면 노동개혁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음을 서구의 여러 사회적 대타협 사례가 방증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흔히들 네덜란드 병을 치유해 네덜란드의 기적을 이뤘다고 평가받는 1982년 ‘바세나르 협약’을 봐도 한국일보의 결론은 적절하다. 우리는 바세나르 협약의 결과만 섬길 뿐 그 배경과 과정은 생각조차 않는다. 심지어 지금도 계속 중인 이 협약의 부정적 측면은 아예 보지 않는다.

바세나르 협약은 70년대 후반부터 네덜란드가 겪었던 저성장과 고실업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었다. 협약 전후로 50%이던 고용률이 75%로 뛰었다.

하지만 네덜란드 노동자들이 스스로 임금인상 요구를 억제하고 협의 테이블로 나온 이유가 뭔지는 살펴봐야 한다. 기업이 충분한 임금을 주지 못하거나 노동자를 해고해도 사회와 국가가 탄탄한 사회보장 정책을 통해 보상해 준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여기에 네덜란드 특유의 노동존중 정신인 ‘칼비니즘’ 또한 한몫 했다.

바세나르 협약은 박근혜 정부 때도 화두에 오른 적이 있다. 당시 65%였던 고용률을 70%로 끌어올리겠다는 게 박근혜 정부의 대선공약이었다. 이를 위해 여성 고용 확대가 절실했다. 박근혜 정부는 단시간 고용을 중심으로 한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92만여개가량 늘리려고 했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정서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선험적으로 세워진 정부계획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당시 정부는 정규직 일자리가 없으니 우선 시간선택제 일자리라도 붙잡으려는 노동자들의 절박함을 잘못 이해했다.

윤석열 정부가 벌이는 노동개혁은 박근혜 정부보다 더 대책 없다. 1982년 바세나르 협약을 체결한 정부의 카운터파트너였던 빔 콕 네덜란드노총 위원장은 12년 뒤 1994년 네덜란드 총리가 돼 2002년까지 무려 8년간 집권했다. 이렇게 노조를 조롱하고 무시하면서도 3대 개혁 중 노동개혁을 가장 먼저 추진하겠다는 대통령은 어느 별에서 왔는가.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