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봉제 유산과 직무급제 논란

2022-10-13     한지원
▲ 한지원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저자

“호봉제 쟁취!”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상징하는 구호 중 하나다. 1980년대 중반까지도 대기업 생산직의 임금은 공장 앞 식당 아르바이트 직원의 시급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낮았다. 거리로 뛰쳐나온 노동자들은 고민할 것도 없이 임금인상을 외쳤다. 요구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20~30%의 인상률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무직과의 차별 해소였다. 후자가 특히 절박했다. 생산직에는 사무직의 상여금과 호봉제가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임금격차와 박탈감이 상당했다. 노동가요 ‘철의 노동자’에는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는 가사가 나온다. 이때 인간다움 기준이 바로 ‘사무직’이었고, 그 사무직을 상징한 것이 호봉제였다.

이런 인식은 21세기에 이르러 비정규직 쟁점 때문에 변화했다. ‘비정규직’이란 규정 자체가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어 기존 호봉테이블을 적용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수많은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의 목표는 기업 내에서 같은 호봉테이블을 적용받는 것이었다. 예로 최근 공공부문과 민간 대기업 일부에서 ‘정규직화’ 방법으로 사내하청을 자회사로 직접 고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노동계 일각에서는 이를 꼼수로 폄하한다. 고용안정을 쟁취하더라도 원청 호봉제를 그대로 적용받지 않으면 “제대로 된 정규직화”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육청에 무기계약직으로 고용된 교육공무직도 자신을 ‘학교비정규직’으로 규정하는데, 교육공무원의 호봉테이블을 적용받지 않고 있다는 게 근거다.

호봉제는 1987년 이후 현재까지 민주노조운동과 궤를 같이했다. 그래서 호봉제를 개혁하자는 주장은 근거가 무엇이든간에 노동운동에서 좀처럼 수용되지 못한다. 경제적 이해관계도 있지만, 역사적 관성도 큰 역할을 한다.

호봉제가 크게 꺾였던 시기도 있었다. 김대중 정부 때였다. 구제금융 대가로 노동시장 유연화를 요구한 국제통화기금(IMF)은 정부와 노동계를 동시에 몰아붙였다. 범정부 차원에서 성과급제(연봉제) 도입에 사력을 다했고, 수십만 명을 정리해고한 대기업들은 기세를 몰아 단기간에 성과급제를 대거 도입했다. 다만, 이 와중에도 호봉제를 지켜 낸 곳도 있었다. 노동조합 단체협약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공공부문과 대기업 노동자 일부였다. 노무현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지난 20년간 모든 정부는 호봉제 개혁을 위해 여러 정책을 폈다. 그러나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적은 없었다. 박근혜 정부는 위법성 여지가 있는 행정지침을 통해 공공부문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대통령 탄핵으로 가는 불씨 중 하나가 됐을 뿐이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개혁을 정부 기조 맨 앞줄에 세워 놓았다. 그리고 핵심 의제로 호봉제 개혁을 제시했다. 고령화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하려면 임금체계 개혁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현 호봉제에서는 근속 30년이 지나면 1년 차보다 3~4배 많은 임금을 받는다. 고령화 시대에 필요한 정년연장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 호봉제는 노동시장을 내부와 외부로 나누는 기준선이기도 하다. 임금 총액이 빠르게 증가하는 호봉제는 좋은 일자리로 표현되는 내부 노동시장을 축소한다.

정부와 노동시장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대안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구현하는 공정한 임금체계다. 직무급이 많이 거론된다. 반론도 만만치는 않다. 동일노동에 관해 이해가 다르다 보니 직무급을 두고도 갑론을박이 반복된다. 크게 보면 다섯 가지 의견이 있는 것 같다.

첫째, “호봉제 사수”의 입장은 동일노동이란 “동일사업장”이란 것이다. 사업장 내 모든 노동자를 같은 호봉테이블로 묶는 게 이들의 목표다. 비정규직도, 사내하청도 같은 사업장에 있다면 같은 호봉을 받아야 한다. 다만 이는 현실적으로 지불능력이 충분한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에서만 가능하다. 기준이 대기업·공공부문의 임금수준이다 보니 다른 임금체계는 ‘개악’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둘째, “전 국민 호봉제”의 입장도 있다. 이때 동일노동은 “동일계급”이다. 동일노동이란 노동자가 계급적으로 동일하다는 원칙 정도로 이해된다. 직무급은 노동자를 분열시키고 경쟁시킨다. 대안은 차라리 전 국민에게 같은 호봉테이블을 쥐어 주는 것이다. 물론 이는 현실에서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입장은 실제 논쟁에서는 “호봉제 사수”와 비슷해지는 경향이 있다.

셋째, “기업측 직무급” 입장은 동일노동을 “동일생산성”으로 해석한다. 경제학원론의 “노동의 한계생산이 임금”이란 정의와 같은 이야기다. 동일노동을 구현하는 직무급은 생산성 측정이 개별 기업 내에서만 가능한 이상, 기업 내에서 실시돼야 한다. 직무급은 개별 기업의 이윤 최대화에 복무하며 동시에 공정성을 확보한다.

넷째, “노동측 직무급” 입장은 서유럽 노동운동의 전통적 논리를 따른다. 동일노동이란 “노조의 기준”을 의미한다. 산업적 수준에서 임금을 정할 때 사용하는 기준은 노동자 자신이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더 힘든 노동, 더 숙련이 필요한 노동에 조금 더 가치를 부여하는 직무·직능급적 성격을 가진다. 동일노동이란 결국 노동자들이 같다고 합의한 노동이다. 이 입장은 독일이나 스웨덴 같은 서유럽 노조 강국을 벤치마킹한다.

다섯째, “임금체계 기만론” 입장이 있다. 정통 사회주의 논리를 따르는 것으로 동일노동은 “동일착취”일 뿐이다. 노동을 착취해 이윤으로 삼는 자본주의에서 임금 기준은 기만에 가깝다. 임금 최대화, 이윤 최소화가 노동운동의 목표여야 한다. 직무급 같은 논의는 계급적 모순을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호봉제라는 유산은 뿌리가 깊다. 새로운 임금체계를 두고는 기본이 되는 관점에서도 논의가 갈린다. 노동운동의 지배적 입장은 현행 유지다. 하지만 이는 누구나 인정하듯 지속가능하지는 않다. 노동운동이 개혁에 관한 태도를 정하려면, ‘동일노동’이 무엇인지부터 토론해 볼 필요가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관해서는 부정하는 사람이 없다. 이제 레토릭이 아니라 실제 쟁점이 되는 것들을 따져 볼 때다.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저자 (jwhan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