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보고서에서 과제로 남길 것은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일곱 권짜리 조사보고서와 한 권의 백서가 도착했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종합보고서였다. 그동안 밝혀진 내용도 있고 이번 특조위에서 특별하게 더 조사해 알려진 내용도 있다. 많은 사회적 참사가 그 진상을 밝히지 못한 채 종합보고서를 내지 못하고 묻힌 것에 비하면, 비록 ‘세월호 침몰’의 원인은 확정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여야 합의로 만든 조사위원회의 공식 보고서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문호승 조사위원장은 발간사에서 “이 보고서를 참사 희생자와 그 가족, 우리 국민과 미래세대에게 바칩니다”고 했다. ‘미래세대에게 바친다’는 것은 우리가 이 보고서를 읽고, 무엇이 과제인지 인식할 때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4·16 세월호참사 종합보고서’는 세월호 침몰 원인을 “알 수 없다”고 밝힌다. 특조위는 선체조사위원회에서 제시한 두 가지 원인, 즉 복원성이 취약한 세월호에서 솔레노이드 밸브가 고착된 것이 원인인지, 미상의 수중체 추돌이 원인인지를 조사·검증했다고 한다. 검증하는 과정에서 여러 조사 결과가 서로 모순하고 불일치하며, 여러 추정이 개입해서 얻은 결과이기에 확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참사가 그러하듯, 정보가 유실되거나 은폐되고 전문가의 견해가 엇갈리기에 특조위는 원인을 확정하지 못했다. 새로운 증거나 증인이 나타나기 전까지 우리는 세월호 침몰 원인을 ‘모른다’로 둔 채 긴 시간을 견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침몰 원인이 확정되지 않았을 뿐, 이 보고서에는 의미 있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세월호 참사는 2014년 4월16일에 발생한 참사가 아니라, 그날로부터 8년간 계속 진행 중인 참사다. 특조위의 조사는 세월호의 침몰만이 아니라 승객들에 대한 구조 방기, 이후 피해자들에 대한 인권침해 등 복합적인 재난으로 발전한 세월호 참사의 여러 문제들을 밝히는 것을 자기 과제로 하고 있었다. 이 보고서는 큰 사건이 발생한 이후, 정부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어떻게 여론을 조작하고 증거를 은폐했으며, 피해자를 탄압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왜 해경이 승객들을 구조하지 않았는지 일관성 있게 맥락을 구성하지 못했지만, 한 사건이 어떻게 사회적 참사가 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보고서는 해경이 침몰한 세월호의 승객들을 “구하지 않았다”고 결론 내린다. 해경은 구조계획을 세우는 대신 보고만 종용했고, 현장에 출동한 해경은 선장과 선원, 눈에 보이는 승객들만 구조했다. 구조한 이들에 대해서도 섣부르게 응급조치를 중단하거나 이송을 지연했다. 법에 따라 재난을 관리해야 하는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중앙사고수습본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모두 손을 놓았다. ‘지상 최대의 구조작전’이라는 거짓말로 실종자 가족들을 우롱했다. 사회적 분노가 커지자 청와대는 책임을 유병언에게로 돌리고, 정권의 안위를 위해 기록을 조작하고, 보수단체를 동원해 피해자에 대한 혐오를 확산했으며,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를 통해 특조위 조사 방해를 기획하고 실행한 것도 드러났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조사기구의 공식보고서다. 정부는 이 보고서에 근거해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이 명확해졌으므로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사과해야 한다. 도의적 사과가 아니라 구체적인 책임에 근거한 사과여야 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배상과 후속조치가 이행돼야 한다. 해경의 지휘부도 무죄판결이 나오고 있고 증거를 은폐하고 조작하는 데 가담한 이들도 무죄가 나오고 있다. 특조위의 조사보고서가 수사와 재판에 영향을 미치도록 해야 하고, 이미 재판이 마무리됐다 하더라도 그들이 책임을 질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 보고서를 읽고 무엇을 과제로 남길 것인가. 보고서에 많은 권고안이 담겨 있지만 몇 가지는 지엽적인 부분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시민의 생명보다 정권의 안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정부가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알았다. 정부에 책임이 있는 재난 참사에 대한 조사가 정부에게만 맡겨질 경우 어떻게 증거가 은폐되고 왜곡될 수 있는지도 봤다. 피해자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을 때 어떻게 공동체가 파괴되는지도 알았다. 재난 참사가 일상이 될지도 모를 시대, 우리는 기업의 이윤이나 정권의 안위보다 생명이 중요하다는 원칙을 세워야 하고 재난 참사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피해자의 권리를 법으로 구체화해야 하고, 안전에 관한 시민들의 알 권리와 참여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이런 내용을 담은 ‘생명안전기본법’을 만드는 것도 그 과제를 풀어 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