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사제 4일부터 130개 기관 시행, 기대·우려 교차

전문가·노동계 “노조탈퇴 강요, 임원추천위 배제한 기재부 지침 수정해야”

2022-08-04     정소희 기자
▲ 공공운수노조와 정의당 장혜영·강은미·이은주 의원실 주최로 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거수기 노동이사, 누더기 노동이사제 이대로 좋은가’토론회. <정기훈 기자>

지난 1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공포 6개월 뒤인 이달 4일부터 130개 공기업·준정부기관에 노동이사제가 도입된다.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위해 도입한 제도이지만, 노동계 일각에서는 기획재정부 지침 때문에 노동이사가 ‘거수기’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공운수노조는 3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사측 거수기 노동이사, 누더기 노동이사제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는 강은미·이은주·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함께 주최했다.

“노조탈퇴 지침, 기본권 제한”

지난 6월 기재부가 ‘공기업·준정부기관의 경영에 관한 지침’을 개정하면서 노동이사제를 둘러싼 우려가 높아졌다. 기재부가 지침에서 노동이사로 임명되는 사람은 노조 조합원이나 근로자위원·고충처리위원에서 탈퇴하도록 정했을 뿐 아니라, 임원추천위원회 위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노동이사의 권한을 지나치게 축소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석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기재부의) 지침은 법령보다 현저히 낮은 위상을 갖고 있고 원칙적으로도 강제력이 없지만 기관으로서는 따를 수밖에 없다”며 “강제력이 없어서 규범 통제에서도 벗어나 있고, 헌법소원 대상도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법령 이상의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할 노동이사가 노조를 탈퇴하도록 강제하는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이사는 그 자체로 사용자이거나 이익을 대표해 행동하는 자가 아니라 법인을 대표해 행동하는 자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노조가입 여부는 기본권에 관한 사항으로 노동이사로 활동한다는 것이 기본권을 제약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이기 때문에 노조에 가입할 수 없다’는 기재부의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이 변호사는 “노동이사가 노조를 탈퇴하도록 하는 것은 노조로부터 독립성을 갖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노동이사가 노동자 또는 노조와 결합이 느슨해지거나 단절될 경우 이사회에서 노동이사가 고립되면서 사측에게 포섭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며 “대부분 국가에서 노동이사는 조합원 신분을 유지하며 노조와 밀접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태진 부산교통공사 노동이사는 “노동이사들은 상법과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의거해 상임이사들의 경영을 감시하고 경영투명성 강화를 주 임무로 삼은 자들”이라며 “상임이사들인 사용자 또한 노동이사들을 사용자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들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재부, 노동이사 이중적 지위 악용”

‘직원과 임원의 지위를 동시에 가진 노동이사의 성격을 고려할 때 임원추천위원회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기재부 논리를 맞받는 주장도 이어졌다.

이석 변호사는 “노동이사제는 균형 있는 감시와 견제 역할을 수행하고자 도입된 제도로 임원추천위원회의 위원으로 참여해 의사를 피력하는 것이 적절한 조치”라며 “공공기관운영법에서도 ‘비상임이사는 위원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노동이사가 비상임이사에 해당하는 이상 임원추천위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직원과 임원의 이중적 지위를 통해 유효한 견제와 감시 기능을 행사해야 할 노동이사가 오히려 모두 권한을 제한당해 사실상 노동이사제가 무력화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기재부는 노동이사가 가진 이중적 지위를 편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