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소송 제기 안 하면 배임? “단 한 번도 그런 적 없다”

노동자 벼랑으로 모는 손배·가압류 … “대우조선, 노동자에 책임전가”

2022-07-22     강예슬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2014년 11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시도했다. 당시는 법원이 그를 포함한 노동자 122명이 2010년 7월 현대차 울산공장 점거농성한 것과 관련해 현대차에 17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직후였다. 현대차는 신규채용에 응한 이들에게는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했지만, 이를 거부한 이들에게는 손해배상 소송을 유지했다. 노동자를 상대로 한 기업의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어떻게 악용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평생 벌어도 갚을 수 없는 배상액에 노동자는 움츠러들고, 손발이 묶인다. 노조활동도 포기한다. 기업이 바라는 시나리오다.

이 일이 있은 뒤 8년이 지났지만 노동자를 옥죄는 기업의 손해배상·가압류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하청노동자가 파업을 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에서 하사내협력사협의회 대표단은 배임죄 성립 가능성을 언급하며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가 제안한 ‘민·형사상 책임 면책’을 거부했다. 면책 합의를 하면 배임죄로 처벌받는다는 주장인데 과연 그럴까.

“민·형사상 면책 합의
‘못’ 아닌 ‘안’ 하는 것”

김유정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장)는 “농성을 정리하거나 (노사가) 합의하는 과정에서 면책 합의가 수없이 많이 이뤄졌다”며 “이런 면책 합의를 가지고 업무상 배임죄로 기소는커녕 수사가 된 사례는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광주형 일자리 선도기업이라 불리는 자동차 부품업체 ㈜호원이 그 사례 중 하나다. 금속노조 호원지회는 지난해 3월 노조탄압 중단을 요구하며 공장 점거농성을 했는데, 농성 닷새 만에 노사는 해고된 노조간부의 복직, 노조 관계자에 대한 모든 징계 취소 등을 포함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합의했다.

사용자쪽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현대차와 금속노조 현대차지부·현대차 전주비정규직지회·현대차 아산사내하청지회는 2014년 8월18일 사내하청 노동자가 근로자지위확인·체불임금 청구소송 취하서를 법원에 제출한 자에 한해 회사가 민·형사 소송을 즉시 취하한다고 합의했다. 당시는 불법파견 혐의를 받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공장 점거농성을 벌여 회사쪽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시달리던 때였다.

현대차 사례로 봤을 때 민·형사상 책임 면책 합의는 회사가 하지 못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안’ 하는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대법원에는 현대차가 취하하지 않은 손배 소송이 4년째 계류 중이다. 이 사건을 대리하는 정기호 변호사(금속노조 울산법률원)는 “현대차가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점거농성에 막대한 금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투쟁을 위축시켰듯이 (대우조선해양쪽이) 손해배상 소송 청구를 비정규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왜 하청노동자가 파업을 했는지 초점 맞춰야”

노조활동을 한 노동자들에게 기업이 손배·가압류 소송을 하면서 내세우는 근거는 1994년 대법원 판결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3조는 단체교섭이나 쟁의행위로 손해를 입은 사용자가 노조나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을 금지한다. 하지만 1994년 대법원은 “민사상 배상책임이 면제되는 손해는 ‘정당한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에 국한된다”고 해석했다. 정당한 쟁의행위 요건을 충족하려면 쟁위행위 절차상 제한규정은 물론 쟁의행위 목적의 정당성, 쟁의수단의 정당성까지 충족해야 한다.

힘이 약해 벼랑 끝에 내몰리는 노동자들이 손해배상 위험을 감수하고 투쟁을 하거나, 권리 찾기를 위한 노조활동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배경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3월 노동쟁의 정의 규정을 확대하고 노조행위 등으로 손해배상 청구 제한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논의 진전 없이 국회 계류 중이다.

김유정 변호사는 “면책합의를 하는 것은 투쟁을 마무리해 회사가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이라며 “그건 하나의 경영 판단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두고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은 전혀 법리에도 맞지 않은 주장”이라고 말했다. 윤지선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 활동가는 “노사갈등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으려는 책임은 회사에 있는데, 소가 제기되기도 전에 노동자에게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며 “왜 하청노동자가 파업을 했는지, 상황이 악화되지 않기 위해 대우조선해양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