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로 끌어낸 경찰 대항 ‘폭행’ 법원 “정당방위”
“경찰 강제조치는 위법하므로 공무집행방해죄 무죄”
보라매병원 비정규 노동자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집회에서 경찰관에게 상해를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노조간부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경찰의 강제조치가 위법하므로 이에 대항한 행위는 정당방위라고 판단했다.
2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8단독(최창훈 판사)은 지난달 26일 공무집행방해·상해 혐의로 기소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소속 서울대병원분회 간부 김아무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보라매병원 정규직 전환 요구 집회
경찰 ‘이격조치’ 반발해 경찰 상해
사건은 2020년 6월18일 발생했다. 의료연대본부는 이날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 본관 앞 인도에서 정규직 전환 노사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당시 서울대병원 간호운영 기능직 노동자인 김씨도 집회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이 일어났다. 당시는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기라 병원 출입이 통제됐다. 하지만 집회 참가자들은 병원 본관 정문으로 진입을 시도했고, 기동대 경찰은 참가자들을 병원 바깥으로 끌어냈다.
경찰 주장에 따르면 김씨는 끌려 나오던 중 기동대 소속 순경의 신체를 꼬집고 두 차례 뺨을 때렸다. 이에 경찰은 14일간의 치료가 필요한 찰과상과 염좌 등 상처를 입었다며 그를 입건했다. 검찰은 경찰의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하고 상해를 가했다며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재판에서 양측은 적법한 공무집행 여부를 두고 다퉜다. 검찰은 병원 진입 시도가 신고된 범위를 벗어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보라매병원이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지정돼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라 ‘이격조치’를 할 수 있다고 봤다. 반면 김씨측은 집회가 끝난 뒤 홍보물을 붙이기 위해 들어가려고 했는데도 경찰이 이를 제지했다고 맞섰다.
법원은 경찰의 조치가 위법한 공무집행이라고 판단했다. 최창훈 판사는 “이격조치는 경찰관 직무집행법의 규정에 따른 구체적 직무집행에 관한 법률상 요건과 방식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적법성이 결여된 직무행위”라며 “이 과정에서 피고인이 경찰관에게 대항해 폭행을 가했더라도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법원 “위법한 공무집행 대항한 것”
공무집행방해 혐의 1심 무죄 이례적
최 판사는 집회 참가자를 끌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봤다. 사람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긴급한 경우에는 그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고 정한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아울러 집회가 종료되지 않았다거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따라 경찰서장이 이격조치 이전에 해산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박 판사는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이 실랑이하는 과정에서 상해를 입은 것”이라며 “적극적인 공격행위로 발생한 결과라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김씨의 행위가 정당방위라고 못 박았다.
공무집행방해 혐의에서 무죄가 선고된 것은 이례적이다. 대법원이 2019년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3~2018년 ‘공무방해에 관한 죄’에 관한 1심 선고에서 무죄 비율은 0.6%(5만3천명 중 326명)에 그쳤다. 일반 범죄의 무죄 선고 비율(5.8%)보다 훨씬 낮다.
김씨를 변호한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법원은 경찰의 이격조치가 적법한 공무집행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이에 저항한 것은 정당방위라고 판단했다”며 “이 과정에서 김씨가 소극적으로 저항했으므로 상해죄도 성립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1심에 불복해 지난달 31일 항소했다. 한편 보라매병원은 콜센터와 장례식장 노동자 등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1년 넘게 갈등을 겪다가 2020년 9월 비정규직의 직접고용에 합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