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직 신분, 인정받기 그렇게 어려운가?
전경진 공인노무사(전남노동권익센터)
재작년 초, 아침 일찍 시작된 근무를 마치고 사무실로 찾아온 분들이 있었다. 귀화한 여성 두 분, 내국인 여성 한 분이었다. 전라남도의 한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는 노조 지회장님의 소개로 발걸음했다. “우린 지자체 재활용센터에서, 서너 해를 바라보면서 일하고 있는데 공무직이라는 신분을 인정받지 못한 채 연도마다 기간제 채용에 응시하거나 일시사역(일용직) 채용에 응시해야만 해요. 같은 비정규직인데 기간제와 일시사역 간에는 월급 차이가 있고요. 기간제로 처음 고용됐다가 다음해 기간제 채용에서 탈락하면 일시사역으로 임금이 깎인 채 일해야만 해요.”
재활용센터 2층에서 선별 분리작업을 해 온 이분들은 같은 라인에서 작업을 하는 공무직과 출퇴근 시간이나 업무 내용에 차이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단체협약을 통해 체결한 호봉제의 적용을 받는 공무직과 기본급에서부터 차이가 났고, 17만원이 넘는 직무수당과 13만원의 식대조차 받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지방노동위원회에 차별시정 신청을 했다. 지노위는 노동자 두 분에 대해 무기계약직으로 간주했다. 입사일로부터 2년이 지났고, 수행하는 업무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의한 사용기간 제한의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별적 처우를 받은 날부터 6개월이 지났기 때문에 차별시정 신청 당사자 적격이 없다고 결정했다.
차별시정 신청시점으로부터 역산한 6개월 내에 계속근로기간이 2년을 도과하지 않은 2개월이 걸쳐 있는 한 분에 대해서만 차별한 금액을 지급하라고 사용자측에 주문했다. 업무의 범위 또는 책임과 권한 등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주된 업무의 내용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기 때문에 비교대상 노동자를 1호봉인 공무직 노동자로 보고 2개월분의 기본급, 초과수당, 월차수당, 정액급식비, 가족수당, 맞춤형 복지점수의 차별금액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해당 지자체는 지노위 결정에 재심을 신청하지 않았지만 세 분에 대해 1년2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공무직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남성 재활용품 선별원들을 신규 채용해 세 분을 흔들리게 만들다가 올해 1월1일에 이르러서야 기간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또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면 지난해가 끝자락에 이르렀을 때 새롭게 이사한 사무실에 노동자 한 분이 찾아왔다. 참 맑고 밝은 목소리를 가진 분이었는데 “이젠 마음먹고 가기로 결정했어요”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전라남도 내 다른 기초지자체에서 직접 운영하는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근무한 분이었다. 2019년 6월에 기간제 채용공고를 접한 뒤에 응시해 채용된 후 연말에 계약이 2020년 1년 단위로 갱신됐다. 2020년 연말에 인사부서에서 자신의 자리에 대해 채용공고를 냈다고 한다. 다시 응시해 봤자 계속근로기간이 2년을 도과하기 때문에 공무직 채용 의지가 없는 해당 지자체에서는 자신을 채용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고 판단, 업무 인수인계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한 해가 넘도록 지자체의 사회적경제기업들을 관리하고 지원하는 데 온 힘을 쏟아부은 이분을 그대로 떠나보낼 순 없다며, 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은 해당 지방자치단체장과 면담을 요청했다. 단체장은 인사부서에 연내에 방안을 찾아보라고 지시했고, 해당 노동자분은 채용공고에 응시해 다시 기간제 신분으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근무했다.
그로부터 불과 한 해가 흘렀는데 지난해 연말에 해당 지자체에서는 이분의 자리에 대해 채용공고를 내면서 “계약기간이 만료됐기 때문에 퇴직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때의 분통 터지는 기분을 누가 설명할 수 있을까.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지노위에 제기했을 때, 지자체측에서는 “2021년에 신규 공개채용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계속근로기간은 새롭게 산정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근로기간은 2년 미만이고 근로계약기간 종료에 따른 당연퇴직”이라고 답해 왔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업무를 동일하게 수행해 왔으며 자격요건을 있어서 지원자도 없다가 재공고를 통해서야 당사자분이 다시 채용됐는데, 사용기간 제한을 회피하기 위한 형식적인 면접이 아니라면 어떻게 달리 설명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가 기조로 내세웠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에 이와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이건 상시·지속적인 업무에 대해 계속근로기간이 2년 미만인지 여부를 불문하고 공무직으로 전환한다는 정부 방침과도 상관없이 기간제법 4조2항에 근거한 것인데도 법을 위반하거나 면탈하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2007년에 해당 조항 적용을 회피하기 위해 11개월을 근무하도록 하고 1개월의 공백 기간을 둔 후에 다시 같은 자리에 신규채용 절차를 반복했던 일부 공공기관의 행위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답습되고 있다. 더 이상 이런 상태가 계속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공무직 조합원들의 근로조건 개선과 단체협약 요구안 반영에 집중해야 할 때 조합원의 신분조차 인정받지 못한 세 분을 전폭적으로 지원한 노조의 전 지회장님과, 조직된 노조 울타리 밖에 있는 노동자분께 먼저 손을 내미셨던 시의원님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