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향유한, 기타공장 해고노동자의 싸움

2022-05-30     황진미
▲ 황진미 영화평론가

<재춘언니>는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의 13년간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회 특별상, 부산국제영화제 비프 메세나 상을 받았다. <깔깔깔 희망버스>(2012)와 <나쁜 나라>(2015)를 만들었던 이수정 감독의 작품이다.

2007년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무더기 정리해고되고, 공장이 폐쇄됐다. 경영위기를 이유로 인도네시아와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려는 것이었다. 당시 회사는 세계 기타시장 점유율이 30%에 달하는 1등 기업이었다. 노동자들은 법원에 해고무효 소송을 내고 투쟁에 돌입했다. 이들의 투쟁에 콜트·콜텍 기타를 연주하던 인디밴드들을 비롯해 문화예술가들이 합류했다. 노동자들은 해외 원정 투쟁을 벌이며 전 세계 뮤지션과 악기상들에게 기타 제조노동자들의 억울한 사연을 알렸다.

2009년에 기쁜 소식이 찾아왔다. 고등법원에서 열린 정리해고 무효소송 항소심에서 콜트·콜텍 두 노동자들이 나란히 승소한 것이다. 이제 대법원 판결만 남겨 놓은 상황. 2011년에 대전의 콜텍공장에서 투쟁하던 노동자들이 인천 부평의 콜트공장에 합류했다. 두 노조는 매각된 부평의 콜트공장 부지를 점거하고 농성을 했다. 그런데 2012년 대법원에서 괴상한 판결이 나왔다. 오전에 열린 재판에선 콜트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이 오후에 열린 재판에서 콜텍노동자들에게 패소를 안긴 것이다. “미래에 다가올 경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정리해고는 유효하다”는 판결문과 함께,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보냈다.

1. 왜 재춘 ‘언니’일까

이수정 감독이 <재춘언니>를 찍기 시작한 것이 이 즈음이다. 감독은 해고노동자 임재춘씨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임재춘씨는 50대 남성이다. 그런데 왜 재춘 ‘언니’일까. 영화 포스터에도 화관을 쓴 임재춘씨의 얼굴이 클로즈업돼 있다.

영화는 “나는 낯을 가리고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재춘씨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그리곤 연극 <햄릿>에서 오필리어 역을 맡아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는 임재춘씨를 보여준다. 포스터 속 화관을 쓴 얼굴은 오필리어로 분장한 모습이었다. 재춘씨는 대전의 콜텍공장에서 30년간 근무를 한 기능공이다. 해고 전 재춘씨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해고 후 그는 누구보다 활발히 문화예술가들과 연대하고 난생처음 접하는 문학·연극·음악 활동을 열정적으로 해 나간다. 부평에서 점거농성을 할 때 농성장의 주방을 담당하면서 동료들의 밥을 챙기고, 채소를 키우고 장을 담갔다. 연대 나온 활동가들과는 스스럼없이 수다를 떨었다. 활동가들은 그의 여성적 능력을 높이 평가하며 재춘 ‘언니’라고 부르며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영화에는 카메라를 든 이수정 감독과 재춘씨가 격의 없이 툭툭 말을 주고받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재춘씨는 대전에 두고 온 중학생 두 딸의 밥을 걱정한다. 가부장적인 중년 아버지라면 청소년 딸이 차려 온 밥상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는 농성장에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동료에 대해 섭섭해 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그건 뭐, 이심전심 아니여?”라는 그의 한마디가 살갑고 질박하다. 영화는 임재춘씨가 대법원 판결에 대해 공책에 적어나간 “장미 넝쿨로 둘러싸인 점집이 하나 있네, 14명의 검은 망토를 입은 점쟁이가 요상하게 점을 치네. 미래의 경영까지 점을 치는 신 내린 무당인가”라는 시를 보여준다. 이 시는 그대로 <서초동 점집>이라는 노래가 됐다.

2. 스스로 밴드를 만들어 무대에 서다

2013년 2월에 행정대집행으로 부평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던 노동자들이 쫓겨났다. 그러나 그 후로도 노동자들은 여의도로 광화문으로 천막을 옮겨 가며 싸움을 이어갔다. 2014년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노조 패소 판결을 내렸지만, 노동자들은 굴하지 않았다. 투쟁이 장기화할수록 버틸 수 있는 뒷심이 돼주는 것은 신기하게도 문화예술가들과의 연대였다.

평생 기타를 만들기만 해 봤지 연주할 줄은 몰랐던 노동자들이 비로소 기타를 배워 ‘콜밴’이라는 밴드를 만들었다. 재춘씨는 콜밴에서 젬배를 두드린다. 처음엔 실력이 형편없었지만, 투쟁이 길어지면서 실력이 늘었다. 콜밴은 전국의 투쟁 현장을 돌아다니며 공연했다. 팽목항으로, 강정마을로, 밀양 송전탑 투쟁현장으로, 창원으로, 울산으로 가서 연대공연을 펼쳤다. 인디밴드 뮤지션들과 함께 홍대 클럽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이러한 연대의 힘이 모여 촛불광장이 열렸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촛불로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사태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다. 콜트·콜텍 투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은 2018년 ‘사법농단’ 사건이 밝혀지면서부터다. 2012년 콜텍에 대한 대법원의 괴상한 판결이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근혜 정부 사이의 재판거래 사건 중 하나였음이 드러났다.

피켓시위, 단식, 고공농성, 삼보일배, 오체투지. 삭발, 분신 시도, 점거 등 4천4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죽는 것 빼고는 다 해 본” 노동자들은 마지막 싸움에 돌입했다. 임재춘씨가 단식에 들어간 지 42일 만인 2019년 4월, 드디어 콜텍 본사에서 노사가 합의했다. 합의서에는 정리해고에 대한 유감 표명, 끝까지 남은 콜텍 조합원인 임재춘·이인근·김경봉 3인의 명예복직 및 해고 기간을 보상하는 합의금 지급이 담겼다. 그러나 함께 싸워 온 방종운씨는 콜트노동자라는 이유로 제외됐다.

3. 노동자의 투쟁과 예술가의 활동이 만나는 지점

영화는 공공연극 프로젝트를 하는 활동가들과 함께 카프카의 <법 앞에서>를 공연하는 노동자들을 비춘다. 2009년 항소심 승리부터 2012년 파기환송을 거쳐 2014년 패소에 이르기까지, 부조리하고 권위적인 ‘법 앞에서’ 꼼짝없이 붙들려 있는 노동자들의 낭패를 그대로 그린 듯한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소설 속 “지금은 들어갈 수 없소”라고 단호하게 되뇌는 문지기 앞에서 시골사람은 문지기의 사소한 것들까지 탐구하기 시작한다. 현실의 노동자들도 ‘법 앞에서’ 존재와 인식이 차츰 변화한다. 소심하고 평범한 노동자였던 임재춘씨는 법에 가로막혀 싸우는 13년 동안 전혀 다른 존재가 됐다. 예술을 열정적으로 향유하는 전인적인 활동가이자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또렷하게 말할 수 있는 오롯한 주체가 된 것이다.

전통적인 노동운동의 남성적인 조직문화가 예술 분야의 여성적인 혹은 퀴어적인 힘과 결합하면서 운동이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존재가 달라지고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텍스트들이 있다. <빌리 엘리어트> <런던 프라이드> 등이 그 예인데, 이제 <재춘언니> 역시 이와 같은 반열에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영화평론가 (chingme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