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 전대’ 덧씌워 해고, 부동산 사학의 ‘민낯’
건국대, 임대사업본부장 해고에 형사 고소 … 해고자, 4년간 홀로 법정 싸움 끝 승소
우리나라 최대의 ‘부동산 부자’ 사학으로 알려진 건국대가 수익사업체를 무단으로 재임대했다는 이유로 책임자를 해고했다가 항소심에서 무효 판결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해고된 책임자는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도 재판에 넘겨졌다가 2년 전 무죄가 확정됐다. 그가 4년 넘는 기간 학교를 상대로 법정 싸움을 이어 온 이유는 무엇일까.
사장 결재 없이 전대 이유로 해고
2번 형사 고소, 기소돼 ‘무죄’ 확정
3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15부(재판장 윤강열 부장판사)는 지난달 25일 건국대 전 직원 A씨가 학교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 항소심에서 건국대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2006년 건국대 산하 수익사업체인 ‘건국AMC’에 입사해 복합쇼핑몰인 ‘스타시티’의 임대사업을 담당했다. 쇼핑몰 임대계약을 관리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이후 2010년께 건국대의 실버타운인 ‘더클래식500’으로 전보돼 5년 만에 임대사업본부장으로 승진했고, 2017년부터는 경영기획실장에 올랐다.
그런데 2016년 건국대가 더클래식500에 부과된 교통유발부담금을 제때 내지 않은 사건이 발생하며 불똥이 튀었다. A씨가 부담금의 가산세를 임의로 처리해 허위로 보고했다며 학교측이 2017년 7월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린 것이다.
급기야 학교측은 A씨가 정직기간이 끝나고 복귀한 날 해고를 통보했다. A씨가 스타시티 재임대를 허용해 준 뒤 임차인에게 뒷돈을 받았다는 소문이 발단이었다. 학교측은 자체 조사를 실시해 165개 상가 중 36개 매장이 무단 재임대됐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건국대는 법인이 포괄적 재임대에 동의하지 않았다며 A씨를 해고 처분했다. 징계사유 목록에는 △전대동의서 무단 발급 △전대계약시 내부 사전승인 누락 △임대관리 소홀 △전대계약으로 인한 기대수익 손실 △전결규정을 위배한 전결권 행사 등이 담겼다.
해고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A씨는 복귀 당일 인사위원회 출석을 통보받았지만, 소명을 포기하자 인사위는 2017년 11월1일자로 해고를 의결했다. 인사팀장은 즉시 SNS 메시지로 징계통보서를 보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건국대는 이듬해 1월 전대동의 약정서와 임대차변경계약서를 위조했다며 A씨를 고소했다. A씨는 사문서위조 행사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정경제범죄법)상 배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년간의 법정 다툼 끝에 2020년 5월 혐의를 벗었다. 법원은 A씨가 더클래식500 사장의 명시적·묵시적 승낙을 얻어 전대계약을 진행했다고 봤다.
법원 “묵시적 승낙, 해고사유 안 돼”
“무고에 가까운 고소로 억울하게 매도”
무죄가 확정되자 A씨는 학교를 상대로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포괄적 위임에 따라 임대차 업무가 이뤄졌다”며 A씨 손을 들어줬다. 더클래식500 사장이 임대 업무의 상당 부분을 A씨에게 의존했을 뿐만 아니라 쇼핑몰이 전대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문제 삼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서류로 보고를 하지 않았더라도) A씨는 더클래식500 사장에게 전대 허락 및 임대기간 재연장 문제에 관해 꾸준히 보고하고 명시적·묵시적인 승인을 받아 업무를 처리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건국대가 더클래식500에 재임대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도 개선되지 않은 점도 근거가 됐다. A씨는 이후에도 관행대로 전대계약 업무를 수행해 왔다. 재판부는 “쇼핑몰 임대 권한이 A씨에게 상당 부분 위임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쇼핑몰의 공실 최소화를 위한 목적으로 전대나 임대기간 연장이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쇼핑몰은 개장 초기부터 공실 발생 우려가 있어 건국대 이사장과 더클래식500 사장은 공실 최소화와 상권 활성화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며 “A씨는 임차인들에 대한 전대동의 등의 방법으로 공실을 최소화해 상권을 활성화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항소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해고는 건국대가 선택할 수 있는 징계의 종류 중 근로자 지위 자체를 박탈하는 가장 가혹한 처분”이라며 “학교측이 주장하는 징계사유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해고 가능성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학교측은 2심에서 A씨가 화장품 업체를 운영해 겸직금지 규정을 위반했다고 새로운 주장을 펼쳤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씨를 대리한 임정근 변호사(법무법인 담박)는 “A씨는 해고와 동시에 무고에 가까운 2차례 고소를 당했고 2년 넘은 기간 동안 수사와 형사재판을 통해 억울하게 매도당했다”며 “힘없는 노동자의 명예와 삶이 다소나마 치유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