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이 법을 의심하도록

임상옥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2021-12-01     임상옥
▲ 임상옥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이 사건의 경위’. 법률원 변호사로서 노동 사건을 수행하며 법원에 글(서면)을 제출할 때 가장 공들여 쓰는 항목이다. 일반적으로 노동 사건에서 다뤄지는 법과 그에 대한 법원의 해석은 노동자에게 유리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지난해 9월3일 선고된 대법원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취소 판결 내용 중 김재형 대법관의 별개 의견은 인상 깊었다. 김재형 대법관은 별개 의견에서 법률 규정을 그 문언에 따라 해석할 때 상식에 반하는 결과가 야기되는 경우 본질적으로 문제가 되므로, 이러한 상황에서 법원은 법의 문언을 넘어서는 해석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어떠한 연유에서 법관이 기존 법과 법 해석을 의심하게 됐을까? 비단 위 법외노조 통보 취소 판결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4월16일부터 이듬해 4월30일까지 약 1년 동안 이어진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과정에서 나온 법원의 이례적 판단도 마찬가지다. 청소노동자의 투쟁은 ‘이 사건의 경위’가 돼 법관이 기존 법과 법 해석을 의심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LG트윈타워를 청소하는 노동자들은 지난해 4월16일부터 LG트윈타워 빌딩 1층 로비에서 노동조합 활동 보장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시작했다. 그러자 주식회사 LG측은 집회를 하는 청소노동자들이 LG트윈타워 빌딩에서 일하는 것은 맞지만 법적으로 LG가 아닌 청소용역업체 소속이기 때문에, LG측을 상대로 LG 소유 빌딩에서 집회를 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며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관련 법과 법에 대한 기존 법원 해석만을 따랐다면 법원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용역업체와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노사관계는 주식회사 LG에도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어, 주식회사 LG로서도 청소노동자들의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해 어느 정도 수인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었다.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되자 주식회사 LG측은 지난해 12월 청소노동자들이 소속된 용역업체와의 용역계약을 해지하고, 다시 가처분 신청을 했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지위는 이제 트윈타워 빌딩 밖 외부인의 지위와도 다르지 않으니 쟁의행위를 금지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기존 법과 법 해석에 너무나 부합하는 가처분 신청이었다. 그런데 법원의 판단은 또 달랐다. 구체적으로 법원은 ① 한국수자원공사 사건에서 수급인 소속 근로자들이 근로를 제공하는 도급인 사업장에서 쟁의행위를 하더라도 이를 항상 위법하다고 볼 것은 아니라고 한 판결이 LG측이 용역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행하는 쟁의행위의 금지를 구하는 경우에도 판단 기준으로 적용될 수 있다고 봤으며 ② 나아가 청소노동자들이 LG의 급작스러운 용역계약 해지가 부당해고 내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이 사건 쟁의행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용역계약이 형식상 종료됐다는 이유를 들어 LG가 청소노동자들의 쟁의행위에 관해 수인의무를 부담하는 지위에 있지 않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무엇이 법원으로 하여금 기존 법과 법 해석을 넘어서면서까지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적 상황을 고려해 구체적 타당성에 입각한 결론을 내리도록 만들었을까? 바로 ‘이 사건의 경위’에 압축적으로 묘사된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이라 생각한다. 만약 지난해 12월 용역계약 종료와 동시에 청소노동자들이 투쟁을 중단했다면, 법원 역시 용역계약 종료의 형식성을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1년에 이르는 투쟁기간 동안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저녁으로 선전전을 했다. 한겨울 야외취침도 마다하지 않았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상근자들은 매일같이 조별 간담회를 진행하며 고령인 청소노동자들의 상태를 확인하느라 바빴다. 바로 그러한 투쟁이 ‘이 사건의 경위’가 돼 법관이 법을 의심하도록 만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