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장덕준씨 과로사 11개월, 쿠팡은 재발방지 대책 논의 중단

과로사대책위 “유족 기만하는 행위” … 사측 “대책위가 무리한 요구”

2021-09-08     어고은 기자
▲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와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과로로 사망한 고 장덕준씨의 유족이 7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쿠팡 과로사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청와대 국민청원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했다. 고 장덕준씨의 유족이 쿠팡 물류센터 근로여건 관련 합의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정기훈 기자>

지난해 과로로 숨진 고 장덕준씨 사건 이후 쿠팡이 과로사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논의하다 일방적으로 중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유족을 기만하는 행위”라며 반발했다.

과로사 대책위원회와 고 장덕준씨 유가족은 7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 장덕준씨가 숨진 지 1년이 다 돼 가지만 쿠팡측은 제대로 된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대책위에 따르면 지난 2월9일 장씨의 죽음이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되고 나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대책위와 쿠팡측 간담회가 진행됐다. 이후 쿠팡측이 연락을 중단해 면담은 진행되지 않다가 유가족의 전국 순회투쟁 이후 5월21일 다시 면담이 이뤄졌다. 세 차례 협의를 진행하고 나서 7월14일 쿠팡측이 최종 합의문을 제시했다. 그런데 대책위에서 같은달 15일 문구를 일부 수정한 안을 보낸 뒤 쿠팡측 연락이 끊겼다. 대책위가 공개한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보면 7월15일 “내부 회의를 통해서 빠르게 검토하고 연락드리겠다”는 말이 마지막 답변이었다.

최종 합의문에는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실태를 조사하기 위한 조사연구를 실시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밖에는 연장근로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고 법정 휴게시간을 보장하고, 특수건강진단을 내실화하는 등 원론적인 내용도 포함돼 있다. 쿠팡이 제시한 안에는 “조사연구기관은 쿠팡에서 추천한 복수의 기관 중 대책위가 지정한 기관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대책위는 ‘공신력 있는 연구기관’임을 명시하고 일부 문구를 수정하는 정도 수준의 수정안을 다음날(7월15일) 보냈다. 이후 연락이 두절된 것이다. 이희종 서비스연맹 정책실장은 “미흡하지만 실태조사라도 진행하기 위해 대책위원회에서 쿠팡측 안을 수용한 것”이라며 “왜 합의문을 제안한 것인지, 이조차도 이행하기 어렵다는 것인지 쿠팡에 묻고 싶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유족과 함께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지난 3일 시작했다. 고 장씨의 어머니는 “국민청원 글을 올리기 전에 ‘언제까지 하실 거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며 “딸을 생각하면 여기서 멈추는 게 맞는지 (고민했지만) 죽은 아들을 생각하면 계속 이 길을 가야 하는 게 맞는지 (생각했다). 천천히 답을 찾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청원 글에서 유족은 “정부가 나서서 쿠팡의 야간노동과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법·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쿠팡 관계자는 “유족과 직접적인 협의를 요구해 왔지만 대책위가 협상자로 나서서 여러 요구사항에 대한 수용을 우선적으로 요구하면서 유족과 직접적인 협의를 하지 못해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대책위는 일용직 근로자까지 근무 중 수면시간을 보장하라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해 왔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