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일터 쿠팡’ 만들려면 ①] 여름엔 찜통, 겨울엔 냉골 … 누군가 죽어야 움직일 건가

오선희 쿠팡 양산물류센터 계약직 노동자

2021-08-10     오선희

지난 6월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를 계기로 쿠팡의 기업 운영방식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해 코로나19 집단감염과 노동자들의 과로 논란 때부터 쿠팡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낮은 안전인식은 문제로 지적돼 왔다. 쿠팡 노동자들이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물류센터 노동환경 개선 방안을 6회에 걸쳐 제시한다.<편집자>
 

▲ 오선희 쿠팡 양산물류센터 계약직 노동자

저는 작년 8월부터 쿠팡 물류센터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상품들이 가득한 물류창고에서 하루 종일 걷고, 무거운 물건들을 나르고, 선반에 진열하는 일을 합니다. 쿠팡에서 처음 일하기 시작했을 때 받은 인상은 ‘내가 사람이 아니라 게임 속 캐릭터 취급받는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관리자들은 노동자들의 UPH(시간당 물량 처리 개수) 수치를 높이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고, 노동자들의 건강이나 안전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고 장덕준씨의 과로사 뉴스를 보게 되었고, 노동조합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일터가 바뀌지 않으면 비극적인 죽음이 계속 되풀이되고, 다음 차례는 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고민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노동조합으로 모여서, 너무 당연하지만 그동안 무시돼 왔던 것들을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사람이다.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니다. 죽지 않고 일하고 싶다.”

반갑게도 노동조합이 생기면서 조금씩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습니다. 쿠팡은 명목상으로나마 UPH를 폐지했다고 밝혔고, 관리자들이 작업 속도를 높이라고 독촉하는 것이 전보다 줄었습니다. 물류창고에는 냉난방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서 여름에는 찜통 같고, 겨울에는 냉골 그 자체인데요. 작년 여름에는 선풍기도 별로 없었고, 작업 속도를 높이라는 관리자들의 잔소리가 너무 심해서 제대로 숨 돌릴 새도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해야 했습니다. 올해 여름 즈음에는 선풍기가 늘어났고, 층마다 냉동고가 생겼고, 얼음물이 지급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 기록적인 무더위 속에서 일하기에 적합한 환경이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한 동료는 찜질방 속에 있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는데요. 노동조합에서 조사한 결과 낮에도 밤에도 현장 온도는 30도를 훌쩍 넘습니다. 선풍기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여전히 숨이 턱턱 막히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흘러서 저는 얼음물을 옆구리에 낀 채 일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너무 더워서 제가 일하던 구역과 약간 떨어진 선풍기 앞에서 중간중간 바람을 쐬면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관리자가 헐레벌떡 달려와 저를 찾길래 무슨 일이라도 난 줄 알았습니다. 관리자는 프로그램 속에서 제 이름 옆에 ‘help’라는 문구가 떠서 와 봤다며, 동선을 줄여서 더 빨리 일하라고 저를 선풍기에서 멀찍이 떨어트려 놓았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help’를 외치며 ‘에어컨 좀 설치해 달라’고 생각했지만, 사측은 여전히 제가 더울 땐 더위를 느끼는 사람이라는 사실보다 프로그램 속 생산량 수치만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겨울에는 벽이 뻥 뚫려 있는 1층 공간에서 핫팩에 의존해 덜덜 떨며 일했습니다. 그즈음 동탄 센터에서 야간에 일하던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앞서 언급한 장덕준씨도, 이 분도 우리 노동자들이 물건 혹은 기계나 가상 캐릭터와 다름없이 취급받았기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생각합니다. 이 분의 사망 소식 이후, 뚫려 있던 벽에 방풍막이 설치됐습니다. 방법이 없거나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는데, 누군가 죽어야만 움직이는 사측의 행태에 화가 났습니다. 사측은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으로 대충 해결하려는 것을 멈추고,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제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고객에게 “쿠팡 없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말을 듣는 것이 회사의 목표라고 하던데요. 회사는 노동자 없이 굴러갈 수 없습니다. ‘죽음의 일터’라는 꼬리표를 떼려면 노동자들의 요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