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설계사의 천막농성 100일] 교섭 못 하고 고용불안한 1년짜리 ‘특고’
한화생명, ESG 경영·업계 1위 자화자찬하며 단체교섭은 거부 … 11일 첫 4자 면담, 교섭 일정 마련할까
한화생명보험 보험설계사가 서울 영등포구 63스퀘어 앞에 천막을 친 것은 올해 3월3일이다. 10일로 꼬박 100일이 지났다.
자회사 설립·소속 변경 일방통행
지회 단체교섭 요구는 묵묵부답
이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한화생명은 3월15일 이사회를 열고 지속가능경영위원회를 만들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강화하는 취지다.
4월1일 전속판매채널을 분리해 한화생명금융서비스를 설립했다. 한화생명의 생명보험뿐 아니라 다른 회사의 생명보험상품과 손해보험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법인판매대리점(GA)형 자회사다.
이 과정에서 동의서 갈등이 있었다. 한화생명은 한화생명금융서비스 설립 이후 수수료 변경 동의서를 보험설계사에게 들이밀었다. 수수료를 올려 줄 테니 자회사로 가라는 얘기다. 일부는 응했고 일부는 반발했다. 노사는 자주 충돌했다. 동의서 서명을 거부한 보험설계사들은 한화생명이 지점장 같은 관리자를 동원해 서명을 강요한다고 주장했다.
단체교섭은 없었다. 1월6일 설립한 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 한화생명지회(지회장 김준희)는 이후 줄기차게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한화생명금융서비스 설립 이후 회사가 강제로 보험설계사 소속을 자회사로 넘기자 같은달 4월3일 한화생명금융서비스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다. 그렇지만 교섭은 성사되지 않았다.
“이제는 권리 찾겠다”는 지회
“교섭 상대 맞느냐”며 100일 버틴 회사
보험설계사는 보험상품 판매 수수료를 월급으로 받는다. 한화생명이나 한화생명금융서비스나 주요 수입원은 결국 보험상품 판매다. 그러나 정작 보험설계사는 1년짜리 위촉계약을 맺고 어떻게 바뀌는지도 모르는 수수료에 서명하는 일을 반복했다.
잘려도 사용자쪽은 “계약 만료”라고 한다. 보험설계사지부와 회사의 거의 모든 노사갈등은 일방적인 해고통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김준희 지회장은 “그렇게 모르고 당하다 노조가 설립된 뒤 조금씩 우리 권리를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회를 만든 배경이다. 지회는 단체교섭을 통해 고용보장과 임금과 직결되는 수수료율을 논의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특수고용직도 노조를 만들었으니 노동자로 대해 달라는 요구인 셈이다.
면담은 두어 차례 있었다. 교섭은 아니었다. 한사코 교섭이 아님을 회사쪽은 강조했다. 사무금융노조 한화생명지부와 단협을 지난해 맺었는데 똑같이 노조 산하 지회가 교섭을 요구하니 응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그렇게 100일을 맞았다.
지회는 이날 오후 63스퀘어 천막농성장 앞에서 100일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재진 노조 위원장은 “회사는 100일 동안 단 한 번의 교섭도 하지 않고 시간만 끌면서 지회 조합원 2천500명이 분열하고 갈등해 무너지길 기다렸다”며 “설령 100년이 가더라도 흐트러지지 않는 대오를 형성해 버틸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지난 100일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회사는 보험설계사 소속을 자회사로 강제로 전환하면서도 동의서 서명 여부에 따라 임금에 막대한 차이를 뒀다. 4월과 5월 두 차례 지급된 임금은 격차가 심했다. 조합원은 동요했다. 지회는 그래서 격론 끝에 입장을 바꿨다. 김준희 지회장은 “동의서 서명을 하지 않고 버티던 조합원을 설득해 서명하기로 했다”며 “회사쪽에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고 단일한 단체교섭 요구를 하기 위해 절치부심 끝에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쪽이 먼저 11일 4자 면담 첫 요구
지회 “단체교섭 방식 논의하길 기대”
11일 지회는 회사와 다시 만난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이뤄졌던 앞선 면담과 달리 이번 면담은 회사와 노조, 지회, 그리고 한화생명지부가 함께한다. 4개 단위가 모두 만나는 건 처음이다. 회사가 먼저 제안했다. 지회는 이날 회사쪽과 단체교섭 방식을 논의하고 결정하길 기대하고 있다.
지회가 한화생명금융서비스와 단체협약을 체결하면, 보험설계사가 개별 기업과 체결하는 첫 단협이 된다. 최근 특수고용직 노조 설립이 줄을 이으면서도 여전히 제대로 된 단체협약을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기념비적인 사례다.
그래서 더욱 단체협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지현 사무금융우분투재단 사무처장은 “한화생명금융서비스는 출범 이후 규모면에서 업계 1위라고 홍보하고 있다”며 “함께 일한 노동자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진정한 업계 1위 기업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