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고용노동부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피고인 A·B·C 등 상황실 구성원들은 2011년 6월께 에버랜드 상황실 구성 후 동향 파악 등을 통해 에버랜드 문제인력이 노조를 설립할 것이 확실히 예상되자 위 ‘그룹노사전략’에 따라 2011년 7월1일 이전에 대항노조를 설립하고 대항노조와 단체교섭을 체결한 후 계속적으로 대항노조에 교섭대표노조로서의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에버랜드 문제인력이 만들 노조의 교섭요구권을 봉쇄해 노조를 와해할 것을 계획했다. 그리고 피고인 A는 그 무렵 피고인 C로부터 피고인 D를 대항노조 위원장으로 하고, 2011년 6월20일 대항노조 설립신고를 해 2011년 6월30일까지 단체협약을 마무리함으로써 복수노조 관련 법률이 시행되는 2011년 7월1일 이전에 친사노조를 설립해 향후 설립될 에비랜드 문제인력의 진성노조가 2년간 아예 단체교섭을 요구하거나 교섭대표노조 선정 절차에도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대항노조 설립 방안에 대해 직접 보고받고 이를 승인했다.”
2019년 12월13일 서울중앙지법이 삼성그룹 차원에서 진행된 삼성노조(현 금속노조 삼성지회) 파괴 공작을 인정한 판결문에 적시된 범죄사실이다. 에버랜드에서 노조가 결성될 움직임을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어용노조(이른바 ‘대항노조’)를 설립해 교섭대표노조가 되도록 해 민주노조를 고사시키려 한 범죄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관련해 삼성 미래전략실, 에버랜드 노무관리자, 어용노조 임원 등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지난 4일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같은 시간 금속노조는 안 후보자 임명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안 후보자는 2011년 당시 중부지방고용노동청장으로서 국정감사 때 에버랜드에 설립된 어용노조가 “노조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는 답변서를 제출했다. 이후 10년간 노동부의 묵인하에 어용노조가 교섭대표노조로서 삼성지회의 노동 3권 행사를 방해했다.
반세기 이상 계속된 삼성그룹의 무노조 전략은 공권력의 비호 아래 가능했다는 것이 여러 번 폭로됐다. 2012년 작성된 ‘S그룹 노사전략 문건’에도 민주노조가 부당노동행위 등을 고소고발하면 “노동부, 검·경 등 유관기관 협조”로 대응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런 노조파괴 전략이 에버랜드·삼성전자서비스 등에서 실행됐단 사실이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와 법원 등에서 확인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부당노동행위를 묵인했던 노동부의 전·현직 관료 중 제대로 처벌받은 사례는 없다.
이른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유행하면서 노동부 출신 고위관료들이 취업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이기권 전 장관은 삼성중공업 사외이사로, 정병석 전 차관은 삼성물산 ESG위원장이 됐다고 알려졌다. 한편 쿠팡·카카오 등 신흥재벌들은 판·검사 출신들을 대대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쿠팡은 법관 출신이자 김앤장 소속이었던 강한승 변호사를 경영관리 총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쿠팡은 노동자들의 과로사·산재 등 열악한 노동실태를 폭로하는 기자들을 상대로 공세적 소송을 제기하는 봉쇄전략도 구사하고 있다.
행정·사법·입법부 관료들과 언론인들이 퇴임 후 재벌 대기업으로 옮겨 가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 한 기업의 부당노동행위를 공권력이 공정하게 처리하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반세기 넘게 무노조 전략이란 이름의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고, 불법·편법으로 이재용에게 경영권을 승계한 삼성그룹을 제대로 제재하지 않으면서 대통령이 아무리 ESG경영을 강조한들 영이 설 리가 없다. 무엇보다 부당노동행위를 위한 도구로 전락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그대로 두고서 헌법이 천명한 노동기본권이 보장되고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없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