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김훈녕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이 법은 노동관계에 관한 판정 및 조정(調整) 업무를 신속·공정하게 수행하기 위해 노동위원회를 설치하고….” 노동위원회법 1조 내용이다.
신속과 공정이라는 가치가 어딘들 필요 없겠냐마는 노동자의 생계와 직결된 해고나 노동조합의 존립과 관련된 부당노동행위 사건 등에서는 그 중요성이 더욱 높아진다. 해고로 인한 생계곤란 앞에 버틸 장사는 없다. 부당노동행위로 인해 조합원 간 신뢰나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깨졌다면 ‘노조탄압을 중단하라’는 구제명령이 백번 내려진들 돌이킬 도리 또한 없다. 노동위원회법 1조에 명시된 신속과 공정이라는 말은 이러한 사정을 고려한 입법자들이 노동위원회에 남기는 일종의 당부였을 것이다.
하지만 입법자들의 당부에도 적지 않은 노동자들이 노동위원회에서 실망스러운 경험을 한다. 지난해 10월 대규모 정리해고를 당한 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한 이스타항공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노동위원회의 일처리가 신속과 공정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등 구제신청을 하게 되면 접수일부터 60일 이내에 심문회의가 소집돼야 한다. 심문회의가 열리기 전까지 노동자와 사용자는 각각의 주장을 담은 서면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자료를 제출할 수 있는데, 만약 심문회의 때까지 증거자료 등을 충분히 제출하지 못할 경우 당연하게도 노동위원회는 이미 제출된 자료만을 토대로 판정을 한다. 즉 노동자든 사용자든 자료를 제출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불이익은 본인이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이스타항공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의 경우 접수 시점(지난해 12월14일)부터 네 달이 된 13일 현재까지도 심문회의 일정이 감감무소식이다. 지난 2월15일로 예정됐던 심문회의가 양 당사자 간 합의로 1차례 연기됐다고는 하지만 본래 기준의 2배 기간이 소요되도록 심문회의가 소집되지 않는 점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더욱 큰 문제는 심문회의가 늦어지는 ‘이유’다. 지금까지 이스타항공은 재정적인 문제로 회사의 행정 프로그램이 운영되지 않아 자료 확보에 어려움이 있고 따라서 충분한 증거자료를 제출하기가 어렵다며 서면 제출을 차일피일 미뤄 왔다.
그런데 앞서 설명한 원칙에 따르면 자료를 제출하지 못해 발생하는 불이익은 당사자가 감수하는 것이 맞다. 백번 양보해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노동위원회가 사용자에게 지속적으로 증거자료 제출을 요구하거나 자체적으로 조사에 나서는 것이 맞다. 그럴 권한쯤은 노동위원회가 충분히 갖고 있다.
하지만 노동위원회는 원칙대로 심문회의를 소집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직권조사를 실시하지도 않았다. 그저 ‘서면 내세요’라는 안내를 몇 차례 발송한 것이 전부였다. 노동위원회가 태평하게 사용자의 서면을 기다려 준 만큼 해고된 노동자들이 천막농성장에 앉아 생계곤란과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기간도 늘어났다. 노사 의견을 공정하게 듣겠다는 노동위원회의 얄팍한 판단이 노동자들에게는 고통의 기간을 연장시키는 불공정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참다못한 노동조합의 항의에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뒤늦게 신속한 사건 처리를 약속했다. 그 약속이 부디 지켜지길 바란다. 이스타항공 해고노동자들은 이미 정부·여당의 지리멸렬한 대처에 충분히 시달려 왔다. 신속하고 공정한 해결이야 어렵다고 하더라도 노동자들의 권리를 구제하기 위해 만든 기구가 벼랑 끝 노동자들을 ‘희망고문’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