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핑계가 될 수 없다
민현기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지난달 18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서 심문회의가 있었다. 평소와 같이 1시간 전에 미리 당사자를 만나 사건의 주요 쟁점과 심문회의 진행 방식 등에 대해 말씀 드리고 필요한 준비를 모두 마쳤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당일 심문회의는 열리지 못했다. 경기도 양주에서 경기지노위가 위치한 수원까지 꼬박 2시간 넘는 시간이 걸려 심문회의에 참석한 신청인은 별다른 소득도 없이 다시 2시간 넘는 귀갓길을 가야 했다.
노동위원회규칙 53조는 원칙적으로 심문회의 연기 신청은 개최일 3일 전까지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피신청인은 전날인 17일에서야 연기를 신청했다. 담당 조사관을 통해 들은 연기신청 사유는 코로나19였지만 노동위원회에서 연기를 승인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확진 판정을 받았거나, 밀접 접촉자로 분류돼 보건소에서 자가격리 통보를 받은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노동위원회가 연기를 승인하지 않았음에도 피신청인은 일방적으로 심문회의에 불참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신청인에게 돌아왔다.
코로나19의 심각성을 모르지 않으며, 방역의 중요성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사실과 다르게 의도적으로 코로나19 상황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코로나19가 심문회의 불참의 정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으며, 확진자나 자가격리자가 아니었다면 피신청인은 심문회의에 참석했어야 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피신청인은 심문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고, 코로나19는 그럴싸한 핑계로 활용됐다.
인천국제공항 카트 노동자들은 공항 이용객이 급감함에 따라 지난해 4월부터 순환휴직에 들어가게 됐다. 그런데 휴직 대상자는 항상 비조합원 내지는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이었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 조합원이 휴직을 신청하면 탈퇴서를 손에 쥐여 주곤 했다. 건강상 이유 등으로 휴직을 해야 했던 일부 조합원들은 회사 방침대로 민주노총을 탈퇴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75명이던 인천공항지역지부 카트분회 조합원은 37명으로 절반이 감소했다.
고용노동청에 진정이 제기된 상태로 부당노동행위 여부는 판단을 받아 봐야 하겠지만, 코로나19 상황을 사용자 입맛에 맞게 활용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적자 운영을 한다던 사용자는 개별교섭을 통해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에게만 10만원 높은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사용자의 노골적 차별이 코로나19 때문으로 정말 불가피했는지 되돌아볼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더 큰 문제점은 코로나19가 사용자 입맛에 맞게 활용되는 경우가 이 사례들뿐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수없이 많은 노동자가 이미 무급휴직을 경험했고, 일부는 권고사직 형태로 일자리를 잃었다. 휴업수당을 지급하도록 정한 근로기준법 46조는 코로나19 대유행 앞에서 힘을 쓰지 못했고, 정부의 고용유지 정책은 효과적이지 못했다.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더는 코로나가 불법의 방패막이 역할이 돼서는 곤란하다. 이제부터라도 코로나 시대의 K-노동을 제대로 정립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조속히 종식돼 아시아나 케이오 노동자, 이스타항공 노동자, 인천공항 카트 노동자, LG트윈타워 노동자 등을 비롯한 모든 노동자가 노동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