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단위 계약 맺는 정규직?] 원청 공공기관 ‘기침’에 자회사 노동자 고용 ‘휘청’
코레일네트웍스 창구 축소·산업은행 지점 폐쇄 논란 … “용역업체 다름 없는 자회사 현실화” 우려
KDB산업은행은 2019년 자회사 케이디비(KDB)비즈㈜를 설립해 미화·시설·경비 노동자 50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그런데 최근 은행 지점을 폐쇄하면서 일부 자회사 직원이 일터를 잃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 고용안정이라는 정규직 전환 취지가 무색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6일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에 따르면 산업은행이 경영효율화 정책으로 올해 1분기 지점 8개 폐쇄 정책을 추진하면서 일반경비 인력 5명이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광주·부산에서 일하던 이들이 서울·경기도로 발령을 받아 도저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어서다.
지난해 12월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자회사인 코레일네트웍스에 공문을 보내 코로나19로 일평균 발매량이 크게 감소했다며 발매 업무를 수행하는 역별 창구를 축소 위탁하겠다고 밝혔다. 코레일과 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지부장 정명재)에 따르면 발매업무를 맡고 있는 자회사 노동자는 167명 중 120명만 남게 된다. 이런 내용이 담긴 1년 단위 위탁계약은 5월 중 체결될 예정이다.
공공기관 자회사 노동자는 고용이 원청의 의사결정에 따라 좌우되고 있지만 원·하청 이중 사용자 구조 속에서 정작 원청과는 대화조차 하지 못한다.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전환이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노동계 지적이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10년 일해도 연봉 3천만원인데
부산 떠나 서울 가라니”
지난 2월 케이디비비즈는 산업은행의 인천 부평, 경기도 반월·산본·화성, 남울산, 광주 금남로, 대전 대덕, 부산 해운대 지점 폐쇄 결정에 따라 직원 18명을 다른 지점으로 인사발령했다. 원거리 출퇴근을 해야 하는 노동자도 다수다. 광주 금남로 지점 노동자가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으로 발령받거나 해운대에서 하남으로, 남울산에서 하남으로 일터를 옮겨야 한다. 노동자들은 인근 지점에 추가 정원으로 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윤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조직부장은 “광주나 부산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서울이나 하남에 있는 지점으로 옮기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그만두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점 정원(TO)은 자회사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데다 주거지 이전비용이나 거주비 등을 노동자에게 지원하려면 원청과 자회사 사이 계약에 반영돼 있어야 한다”며 “원청에 요구했지만, 원청 부서들은 서로 책임회피를 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인근 지점에 배치 받지 못한 노동자 중 5명은 퇴사를 선택했다. 케이디비비즈 노동자 ㄱ씨는 “10년을 일해도 연봉이 3천만원이 되지 않는데 지방에서 어떻게 서울·경기도로 일을 다니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코레일네트웍스 노동자로 발매업무를 하는 김서형(가명)씨는 “최근 뒤숭숭한 분위기”라며 “창구를 줄이면서 발매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코레일이 코레일네트웍스에 “영업환경 변화를 반영해 승차권 발매업무 역별 창구를 축소 위탁할 계획”을 통보한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코레일은 이전까지 서울 등 주요 11개 역의 승차권 발매업무 48개 창구(예비 제외)를 자회사에 위탁·운영해 왔는데, 창구수를 축소해 발매 인력을 167명에서 120명으로 줄일 예정이다. 당장 해고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동 발매 안내 업무 등 수행해야 할 업무가 바뀌는 변화를 맞고 있다.
정명재 지부장은 “창구 숫자를 줄이고, 남은 인원까지 줄이면 여론의 질타를 받을까 봐 자동 발매기 안내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여객 매표업무는 이전에 200여명이 했는데 매년 감소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정 지부장은 “(원청의 역별 창구 위탁 축소에 대해) (자)회사에 방책을 물으니 노조랑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일을 주는 원청과 일을 받는 하청의 문제라고 했다”며 “원청은 코로나 재난상황의 위험을 자회사에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공기관 자회사, 외주화 용이한 구조”
원청의 결정으로 노동환경 악화, 장기적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곳도 있다. 한국공항공사㈜가 만든 세 개 자회사 KAC공항서비스·남부공항서비스·항공보안파트너스가 대표적이다. 한국공항공사는 ‘자회사 인력의 탄력적 운영을 위한 정원관리제도’를 일방적으로 시행했다. 코로나19로 항공업계 사정이 좋지 않아 직군별·공항별 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로 인해 주차업무를 수행하던 인력이 미화업무에 배정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KAC공항서비스 소속으로 통신서비스 업무를 수행하는 박문종 공공연대노조 서울본부 강서지부장은 “직종 간 벽을 허물어 노동자의 업무 반경과 강도가 높아지는데, 인원 충원을 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며 “정원관리제는 코로나19 같은 상황으로 항공기 수요가 급감할 때 시행하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정원관리 제도는 과거 12개월 항공운항편수 변동률 30% 초과 등 일부 요건을 충족하면 특별 심의를 거쳐 총 정원 축소를 가능하게 한다.
이정범 공공연대노조 조직실장은 “모회사가 출자해 자회사를 만들었지만 모·자회사 관계는 여전히 용역관계”라며 “언제든 원청이 (경쟁)입찰을 통한 계약을 하면 용역회사에서 발생했던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자회사 운영과 관련한 평가를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반영하고 있지만, 배점이 크지 않아 원청에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추가 정부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화가 고용불안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다”며 “(원청의) 책임소재가 모호해 훨씬 더 쉽게 외주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코레일쪽은 “창구 조정은 발매량 감소 등 영업환경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라며 “조정 인력은 기존 위탁업무 과업에 포함된 승차권 자동발매기 안내 등에 배치하고 코레일네트웍스가 직원 신청을 받아 단계적으로 전환배치할 예정으로 고용은 보장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