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을 눈앞에 두고

김경주 공인노무사(민주제약노조)

2021-04-06     김경주
▲ 김경주 공인노무사(민주제약노조)

거리에 벚꽃이 만발하면서 봄이 오고 있다고 알린다. 하지만 마음은 아직도 겨울이다.

회사는 코로나19를 내세워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보했다. 해고의 칼날이 눈앞에 오자 노동자들은 혼란과 공포 속에서 길을 잃고 있다. 동굴 속에서 원망과 미련과 탄식이 메아리쳐서 진공을 가득 메운다. 이런 혼돈의 시간을 지켜보고 있는 입장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 상황이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는 조합원들의 모습이다.

코로나19 이후 수많은 사업장에서 유례없는 대규모 구조조정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는 사회적 연대로 극복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인식되기보다는 예외적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결과로 용인되고 있다. 국가와 사회는 시장자본주의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노사가 상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하기보다는 손쉬운 해고를 선택하도록 법률과 제도를 만들었다. 언론은 강성노조 때문에 기업이 망하고 국가경제가 망한다고 선전하면서 노동자들이 연대하고 저항할 수 있는 기반을 서서히 해체시켰다.

그러다 보니 회사가 구조조정을 통보하면 경영 상태에 대한 경영진들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많지만 뼈아픈 자기검열의 목소리도 나온다. “우리 노조의 투쟁이 너무 과격하지 않았나” “우리의 요구안이 회사의 경영상태와 비교해 적절했나” 등과 같은 비판도 따른다. 가장 가슴 아픈 한탄은 “회사를 너무 오래 다니는 바람에 회사가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구조조정이 생긴 것 같다”는 자책이다.

다국적 제약사에서는 의약품을 매각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러면 예외 없이 구조조정이 발생한다. 해당 의약품을 담당하던 노동자들은 필요가 없으니 나가라는 식이다. 혹시라도 법률상 영업양도에 따른 고용승계 효력이 발생할까봐 영업조직을 해체시켜 버린다. 회사의 재정이 악화하고 있는데도 당기순손실을 감수하면서 해외 본사에 지급수수료나 배당금의 명목으로 매년 거액의 로열티를 보내고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해결할 법과 제도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의약품 매각에 따른 구조조정을 규제하는 근거 법률이 없다. 해외 본사로 보내는 지급수수료가 적정한지 묻고 싶어도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없다. 내부거래가 의심돼 국가기관을 찾아가서 호소해도 돌아오는 답변은 명확한 증거를 가져오라거나 다른 기관을 찾아가 보라는 것이다. 증거를 찾아보려고 해도 온통 기업의 영업비밀로 묶여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했음에도 회사는 형식적인 몇 차례의 교섭 끝에 정리해고를 강행하고 억울하면 소송을 제기하라는 식의 태도로 일관한다. 회사는 구조조정에 대한 노조와의 합의조항이 법원에서 얼마나 무기력한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현실이 이러하니 조합원들의 한탄 섞인 자조를 원망할 수 없다. 그래도 우리는 열심히 싸웠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자책해 봤자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큰 위기 앞에서 약자에게 더 큰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기업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에서, 회사가 어려우면 구조조정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노동자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책임을 전가해도 되는 사회에서, 자학적인 자기혐오의 목소리를 멈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가 없다.

해고는 단순히 경제적 기반을 잃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세계가 붕괴하는 경험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이미 많은 기업에서 구조조정을 강행하고 있고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사업장에서 일어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에 노동은 재편성될 것이고 이것은 개인이 해결할 수도 없고 노조가 해결하는 데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정부의 정책과 제도, 사회적 연대, 정치적 실천이 반드시 뒷받침해야 한다. 그래야 다 같이 살 수 있다. 다 같이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