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사 부인한 로젠택배 주장은 사실일까

“로젠, 1차 사회적 합의안 조인 거부” … 고인 업무시간·가중요인 고려할 때 과로 확률 높아

2021-03-23     정소희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지난 15일 경북 김천에서 로젠택배 노동자 고 김종규(51)씨가 과로사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았다. 로젠택배는 다음날 “고인의 배송물량·업무시간을 고려할 때 과로 확률은 희박하다”는 내용의 입장을 발표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 사회적 합의기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부터 택배노동자 과로사가 잇따르는 가운데 과로 가능성을 부정하는 로젠택배 주장은 사실일까. 22일 <매일노동뉴스>가 고인의 동료 증언과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 설명을 종합해 확인해 봤다. 로젠택배는 사고 직후 과로를 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이메일을 한 번 발송했을 뿐 사실관계 확인 요청에 답하지 않고 있다.

“로젠택배 1차 사회적 합의안 조인 거부”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지난 16일 고 김종규씨 사망사건과 관련해 열린 기자회견에서 “로젠택배 과로사 사망의 근본 원인은 사회적 대화를 거부한 사측에 있다”고 밝혔다. 분류 인력투입·분류작업 설비 자동화·택배노동자 적정 작업시간 준수를 포함해 택배노동자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체결된 ‘택배기사 과로사 대책 사회적 합의기구 합의문’에서도 로젠택배만 지목해 마지막 조항을 명시한 점이 눈에 띈다. 합의문 8조(기타사항)에는 ‘로젠은 경영구조 특수성을 고려하여 금년 상반기까지 본 합의안이 적용되도록 별도 방안을 마련한다’고 돼 있다.

강민욱 전국택배노조 교육선전국장은 “로젠이 사회적 합의를 이행할 수 없다고 밝혀 최소한의 장치로 이 조항을 넣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 재개된 2차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로젠의 대책 이행을 논의할 수 있도록 근거 조항을 마련했다는 의미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로젠택배는 사회적 합의문 작성 당시 합의에 동참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 맞다”며 “로젠도 과로사 대책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1차 합의문에 단서조항을 포함한 것”이라고 대책위 주장을 뒷받침했다.

이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사회적 합의기구 논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로젠의 주장은 거짓이다. 로젠택배는 택배업체를 대표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는 통합물류협회 회원사지만, 1차 사회적 합의에 반발했다.

“성수기 70시간 일한다”

로젠택배는 뇌출혈로 사망한 고인의 과로사 가능성도 부정하고 있다. “고인이 최근 3개월 하루 평균 35개를 배송했고, 주 평균 55~56시간을 근무해 과로 확률이 희박하다”는 주장이다. “최근 1년간 고인의 월 평균 소득이 오지배송 지원금 70만원을 포함해 250만원 정도”라고도 덧붙였다.

로젠택배 김천지점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 A·B씨와 김천지점장에 따르면 로젠택배는 출퇴근 시간을 기록하는 시스템이 없다. 배송물량에 따라 업무시간이 불규칙하지만, A·B씨는 “주 평균 최소 55시간에서 (9~12월 성수기에는) 최대 70시간까지 일한다”고 공통적으로 증언했다.

A씨는 “택배일은 월급(수수료) 명세서에 드러난 금액과 실제 가져가는 금액의 격차가 크다”며 “고인의 경우 배송·집하 물량을 고려해 하루 7만2천원 정도를 벌었다면 유류비로 지출하는 금액이 2만원을 훌쩍 넘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월 소득이 200만원이 채 안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B씨는 “고인은 배송구역이 넓어 일하는 시간 대비 소득이 적은 것도 큰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이라며 “택배는 시간과의 싸움이라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많은데 고객들의 배송재촉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용노동부 고시인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에는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업무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면 업무와 질병의 관련성이 증가한다고 본다.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있으면 업무와 질병 관련성은 강해진다.

권동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 사람)는 “택배노동자는 정시배송에 대한 스트레스로 정신적 긴장이 크고 중량물을 취급한다는 점에서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라 가중요인이 인정된다”며 “고시 요건을 고려해도 과로 확률은 강하다고 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