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입니다

김성진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2021-03-03     김성진
▲ 김성진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대기업 하청업체 노동자는 여러 노력 끝에 노동조합 분회를 설립하고 분회장직을 맡았다. 하청업체는 노동조합을 와해시키기 위해 분회장과 직원들을 회유하고 협박했다. 회유와 협박이 통하지 않자 하청업체는 분회장이 퇴근 후 회사 밖에서 동료 직원과 다툰 것을 명분으로 해고했다.

하청업체 대표는 해고 이후 분회장에게 노동조합을 포기하면 복직시키고 더 좋은 직책을 부여하겠다고 회유했다. 분회장은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하청업체 대표의 제안을 거절하고 법적 다툼을 했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하청업체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하청업체는 분회장과 다툼했던 동료 직원에게 왜곡된 사실확인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하청업체측 변호사가 왜곡해 작성한 사실확인서에 서명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하청업체는 직원들에게 분회장이 같이 근무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취지의 탄원서를 받아 제출했는데, 서명한 직원 중에 분회장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분회장과 다퉜던 동료 직원은 하청업체의 회유로 다투는 과정과 화해 과정에 대해 허위 사실을 증언했다.

그런데도 하청업체가 노동조합 설립 과정에 개입한 정황, 다툼 직후와 화해하는 상황에 대한 녹취, 하청업체 대표의 회유 내용 등이 입증되는 상황이므로 해고가 위법하는 판단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1심은 하청업체가 제출한 증거를 바탕으로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단하고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을 취소했다. 당연히 승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건의 패소였다. 암담했다. 무엇보다도 분회장과 그 가족의 생계 문제, 그리고 분회장이 복귀하지 못해 노동조합이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에 암담했다.

항소심에서는 하청업체의 주장과 증거들의 문제점을 일일이 반박하며 하청업체 주장의 모순점을 주장했다. 선고기일 직전까지 참고서면을 몇 차례 제출하며 최대한 이를 주장했다.

대법원 사이트의 사건 검색을 통해 항소심 선고 결과를 확인했다. 항소 기각이었다. 암담했다. 분회장과 통화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었다. 분회장은 애써 담담한 척하며 상고심에서 다퉈 보자는 짧은 이야기만 했다. 전화를 끊고 한참 낙담해 있었다.

그런데 분회장이 30분 후 전화를 했다. 우리가 승소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바로 대법원 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선고 내용이 기재된 ‘종국 결과’ 란에 ‘항소 기각’ 기재가 사라지고 공란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실례를 무릅쓰고 상대방 변호사 사무실에 확인했고, ‘항소 기각’이 아니라 ‘원고 패’, 분회장이 승소한 것을 확인했다. 실무관이 착오로 선고 결과를 잘못 올렸던 것이다.

그 순간에 드는 느낌은 ‘다행이다’였다. 기쁜 마음은 들 틈이 없고, 그저 다행이라는 마음만 들었다. 승소 가능성이 낮은 사건을 승소하면 기쁘다. 그런데 승소 가능성이 큰 사건을 승소하거나 꼭 승소해야 할 사건을 승소하면 그저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 뿐이다.

분회장의 복귀도 다행이고, 분회장 가족이 생계 곤란에서 벗어날 수 있어 다행이고, 분회가 유지될 수 있어 다행이다.

노동사건은 다행이라는 마음이 드는 사건들이 많다. 사건의 당사자와 그 가족의 생계가 사건 결과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건 결과에 따라 노동조합이 유지될지 무너질지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이겨야 할 사정이 있는 사건들이 많다.

그래서 노동사건은 이겨도 기쁘다는 생각보다는 다행이다는 마음이 많이 든다.

한편 이런 느낌이 드는 제도적 이유도 있다. 노동 사건의 입증 문제다. 노동소송은 일반 민사소송에 비해 당사자의 소송상 지위의 차이가 현격해 사측 인증의 사용종속관계, 증거의 일방 편중성 등의 특수성이 있다. 이런 특수성으로 인해 입증 방법에 대한 실질적 불평등이 초래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노동자가 사측의 위법행위 등에 대해 입증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이처럼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사실을 사실대로 입증하는 것 자체가 곤란하다. 노동자가 승소한 것은 당연한 사실을 사실대로 판단받은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으므로 다행이다는 마음이 드는 측면도 있다. 이 사건도 하청업체가 소속 직원들을 동원해 여러 사실관계를 왜곡했는데, 1심에서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 패소 원인이었다. 항소심에서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받은 것이니 다행이다는 마음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