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물류센터, 혁신이라는 이름의 낡은 현장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2021-02-25     김혜진
▲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쿠팡 물류센터에서 지난 1년 동안 벌어진 일이다. 지난해 5월, 쿠팡 부천물류센터에서 노동자 84명을 포함해 152명이 코로나19에 집단감염됐다. 5월27일에는 새벽 2시40분경 인천물류센터 화장실에서 40대 노동자가 사망했다. 6월1일, 천안물류센터 조리실에서 30대 외주업체 여성노동자가 숨졌다. 10월12일, 칠곡물류센터에서 새벽에 일을 마치고 돌아온 27세 노동자가 사망했다. 한 달 뒤인 11월10일 마장물류센터에서 자동화설비 검수와 시운전을 담당하던 하청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2021년 1월11일 새벽 5시께, 동탄물류센터에서 야간 작업을 끝낸 50대 여성노동자가 화장실에서 쓰러진 뒤 숨졌다.

쿠팡은 노동자들의 노동강도가 높지 않았으며, 이들의 죽음은 업무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칠곡물류센터에서 사망한 27세 청년은 숨지기 1주일 전 주 62시간 일을 했고 근세포가 파괴되는 정도의 노동강도로 일했음이 밝혀졌다. 동탄물류센터에서 노동자는 영하 10도의 추위인데도 난방장치 없는 센터에서 심야노동을 했음이 드러났다. 그 와중에 쿠팡은 그날 핫팩 한 개가 아니라 두개 이상 나눠 줬다고 보도자료를 내서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관리자들이 ‘빨리 빨리’를 외치는 공간에서,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휴게시간도 없이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간 채 일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만 한 해 200건이 넘는 산재가 발생했다. 지게차 신호수가 배치되지 않아 산재를 당한 노동자도 있다. 저온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방한복을 돌려 입어야 했고, 동상의 위험에 노출됐다. 물류센터는 먼지가 많고, 소음이 심하며, 부딪침과 깨짐 같은 위험요소가 많다. 그런데도 안전조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 피해는 노동자들에게 전가됐다. 코로나19에 집단감염된 노동자들은 아직도 쿠팡의 사과를 받지 못했고 일용직 확진자는 현장 복귀가 막히기도 했다. 산재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재계약을 못하기 때문에 산재 신청을 꺼리게 된다는 증언도 있었다.

‘AI 기술을 활용한 혁신 기업’ 이미지와 ‘재래식 산재가 난무하는 20세기 현장’이라는 모순적인 조합이 쿠팡 급성장의 비밀을 보여준다. 쿠팡은 첨단기술로, 물건을 빠르게 포장하는 물류센터를 설계했다. 하지만 노동자의 휴식과 안전에는 그 기술을 적용하지 않았다. 물론 첨단기술이 사용될 때도 있다. 쿠팡은 소비자가 빠르고 편하게 상품을 배송받도록 하는 AI기술을 활용해 채용플랫폼을 만들어서 사내 인력시장 구조를 도입했다. 수만 명의 노동자를 각기 다른 기간으로, 매일 골라서 채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쿠팡의 기술혁신은 노동자 개인의 생산량을 측정해 경쟁시키고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데 활용된다.

관리자들은 영어 닉네임을 쓰지만, 현장 노동자와 구분짓기를 강화할 뿐 평등한 관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소통방을 만들지만, 쌍방향 소통이 아니라 회사의 일방적 지시가 전달되는 공간이다. 열심히 일하면 무기계약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3개월·9개월·12개월짜리 쪼개기 계약으로 말 잘 듣는 노동자를 일방적으로 선택하는 구조일 뿐이다. 나스닥 상장을 하면서 노동자들에게 주식을 나눠 준다고 언론에 알렸지만 정작 해당하는 노동자는 20%도 되지 않는다. 쿠팡은 기업의 이미지만 관리하면서 쿠팡 노동 문제를 보도한 기자들에게는 손배소를 청구한다.

쿠팡 물류센터가 이런 상황까지 온 데에는 고용노동부의 책임이 크다. 현장의 위험요소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은 것도 문제이지만, 위법이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고용구조와 노동통제 구조를 방치하는 것도 문제이다. 쪼개기 계약이 위법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당화돼야 하는가. 계약직 일부만 재계약하면서도 그 기준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타당한가. 노동강도를 기업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며 계속 상향해도 되는가. 냉난방설비 없는 심야노동을 용납해야 하는가. 노동부는 위법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이런 노동조건을 그대로 둬도 되는지 질문해야 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의 죽음을 막기 위해 노동부가 나서야 한다. 과로사 기준에 노동시간만이 아니라 노동강도를 포함시켜야 하고 물류센터의 적정 노동강도가 확보되도록 조사와 연구, 노동자와의 협의가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심야노동에서 충분한 유급휴게시간이 확보되도록 하고, 재계약과 일용직 채용 기준을 공개하도록 하며, 상시업무 쪼개기계약을 규제해야 한다. ‘혁신기업’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이미지만 관리하면서, 법의 빈틈을 이용해 ‘노동자 쥐어짜기’라는 낡은 노동통제를 하고 있는 쿠팡을 제대로 규제해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들이 더 죽지 않는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