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대표의무 제도 제대로 기능하고 있나

주민영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2021-02-24     주민영
▲ 주민영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A지회 조합원은 약 600명이고, 동일한 회사 내에 설립된 기업별 노동조합인 B노조 조합원은 약 3천600명이다. 600명에 달하는 조합원이 있음에도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하에서 A지회는 늘 소수노조일 수밖에 없고, 전체 조합원 과반수로 조직된 B노조가 교섭대표노조로서 사용자와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를 전담한다.

사용자와 2020년 임금교섭을 하던 B노조는 지난해 7월21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2020년 임금교섭 사측 위임’을 의결한 뒤 이틀 뒤인 23일 사용자와 ‘2020년 임금교섭 위임식’을 진행했다. 노동조합이 사용자와 교섭 없이 사용자의 교섭 요구안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교섭 사측 위임’은 극히 이례적인 것인데, B노조는 A지회를 철저히 배제한 채 독단적으로 2020년 임금교섭에서 사용자 요구안을 그대로 수용하는 이른 바 백지위임을 강행했고, 이후 2020년 임금교섭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과거 B노조는 2016년 단체교섭 과정에서 A지회를 배제해 절차상 공정대표의무 위반으로 노동위원회에서 시정명령을 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또다시 이를 위반해 하루아침에 2020년 임금교섭을 사용자에게 위임해 버렸고, A지회는 2020년 임금교섭에 참여할 수 있는 단체교섭권을 박탈당했다. A지회는 반복되는 B노조의 절차상 공정대표의무 위반을 지적하고 그 재발을 막기 위해 노동위원회에 시정신청을 했다.

그런데 초심 지방노동위원회는 B노조가 ‘2020년 임금교섭 사측 위임’을 결정하기 전 A지회와 사전에 협의하지 않은 것은 절차상 공정대표의무 위반이라고 인정하면서도 ‘2020년 임금교섭 사측 위임’에 따른 임금교섭 결과에 A지회와 B노조의 조합원 간 차별을 확인할 수 없어 공정대표의무 위반에 대한 시정신청의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했다. 이에 따르면 교섭대표노조는 체결된 단체협약에 차별적인 내용이 없다는 이유로 교섭 과정에서 소수노조를 손쉽게 배제할 수 있게 된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에 따라 소수노조는 교섭대표노조를 통해서만 단체교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이 제한되는 문제점이 존재한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소수노조에 동등한 수준의 절차 참여권을 보장하기 위해 교섭대표노조에 공정대표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는 헌법이 부여하는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이 침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기능하고, 교섭대표노조가 사용자와 체결한 단체협약의 효력이 소수노조에도 미치도록 하는 정당성의 기초를 제공하며, 교섭대표노조에 배타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위헌성을 제한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헌법재판소도 공정대표의무를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일률적으로 강제할 경우 발생하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라고 하면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위헌성을 부정했다.(헌법재판소 2012. 4. 24. 2011헌마338 판결).

그러나 현실적으로 소수노조는 교섭대표노조의 명백한 절차상 공정대표의무 위반에 대해 재교섭 명령이 아닌 향후 유사한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부작위명령을 받는 것조차도 난관의 연속이다.

중앙노동위원회 재심 최후변론 당시 A 지회는 스스럼없이 공정대표의무 위반을 자행하는 B노조가 경각심을 갖고 향후에 절차상 공정대표의무 위반을 반복하지 않도록 부작위명령을 내려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배제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명백한 절차상 공정대표의무 위반에도 소수노조가 절박한 호소를 해야만 하는 현실에서 과연 공정대표의무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처럼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단체교섭권 침해를 최소화해 제도의 위헌성을 부정할 만큼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