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김진숙 복직은 ⑤] 소금꽃 피운 노동자와 걷는 창조 길
권수정 정의당 서울시의원
한진중공업 해고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복직은 개인 문제, 개별 노사관계를 넘어서고 있다. 부산에서 청와대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억울하게 일터에서 쫓겨난 모든 해고 노동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있다. 김진숙의 복직을 염원하는 노동자·학자·정치인·청년의 글을 연재한다.<편집자>
저는 항공노동자입니다. 서울시의원 임기 동안 잠시 떠나 있으나 공항과 비행기는 저의 노동 현장입니다. 많은 이들이 각기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새로운 세상과 사람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에 오릅니다. 그 설렘을 이루기 위해 항공산업 노동자는 정비를 하고, 안전을 점검하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조종을 합니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비행기는, 항공업계는 꿈으로 가득해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일하는 현장은 그 어느 노동현장과 마찬가지로 피곤합니다. 회사는 활동성을 고려하지 않은 몸에 달라붙는 유니폼과 거추장스러운 스카프를 감고 비행기에 오르게 합니다. 승객들이 탑승하기 전에는 시간을 다투며 서비스 준비와 규정된 안전점검을 모두 마쳐야 합니다. 무거운 트레이 카트를 옮기고 승객의 짐을 선반에 올렸다 내렸다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겨드랑이에 땀이 차고 스카프도 땀으로 젖습니다. 열 몇 시간의 비행 동안 말랐다 젖었다를 반복하는 유니폼은 숙소에 도착해서 보면 노동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어느 날 밤샘 비행으로 몸은 지쳤지만 항공객실승무 노동자에게는 전투복이자 작업복인 유니폼을 빨다가 노동조합이 권한 김진숙 동지의 책을 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 유니폼에 남은 흔적의 이름을 알았습니다. “소금꽃나무.”
김진숙의 눈에 비친 것은 조선소의 건장한 사내들의 등에 핀 소금꽃이었습니다. 그러나 서 있는 곳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르더라도 결국 노동은 그 자체로 하나로 만난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김진숙의 눈으로 배우고, 제 유니폼의 땀자국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김진숙은 이야기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삶, 노동의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 현장, 권리마저 짓밟힌 곳에서 목소리를 내기까지의 어렵고도 긴 역사, 머리로 안 것을 가슴으로 함께 울고, 이를 끝내 발로 움직여 실천하는 김진숙 동지를 보며 우리의 노동이 얼마나 소중한지, 역사의 작은 순간도 그 누군가의 노동이 없이 발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사회 안에서 각자 자신의 노동으로 꽃을 만들며 열심히 사는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도 그때 했습니다. 그렇게 김진숙이 쏘아 올린 가슴속 조그마한 떨림을 손과 발로 옮겨 단위 사업장 노조에서, 산별로, 민주노총으로, 다시 진보정당으로, 서울시의회로 옮겨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소외당하고 무시당하는 삶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습니다. 청와대 앞에도 있고, LG트윈타워 안에도 있고, 국회 담장 너머에도 있고,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계단 앞에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보이지 않는 숨겨진 곳에서 또 수많은 삶과 노동이 법의 보호조차 사치로 여기며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제가 몸담은 항공산업도 아픔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시아나케이오지부와 이스타항공 조합원 동지들이 해고에 맞서 싸우고 있고, 이보다 더 많은 항공산업 노동자가 고용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연대하고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막막한 시절입니다.
일상의 삶을 회복하고 내일의 희망을 다시 그리고 싶은 민중을 위해 김진숙 동지가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자기 몸도 챙겨야 할 처지에 대우버스와 한국게이츠 해고자의 고민과 투기자본에 매각될 위기의 한진중공업 동료들 걱정까지 짊어지고 서울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희한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자신의 일상도 소중하고 어쩌면 힘이 들지도 모르는데 올라오는 길, 만나는 노동자마다 격려하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힘차게 걷고 있습니다. 그렇게 김진숙은 오늘도 각자 자기의 꽃을 피우고 있는 노동자와 함께 세상 중심을 다시 세우는 창조의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2011년 더운 여름 크레인에 올라간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희망버스에 몸을 싣고 영도다리를 건넜습니다. 그 길에 소금꽃나무 같은 노동자와 시민들이 함께했습니다. 10년이 지나, 이번에는 희망버스가 내려간 길의 반대 방향으로 김진숙 동지가 희망을 품고 키우며 올라옵니다. 그 길에는 얼음꽃나무를 품은 노동자들이 함께 걷고 있습니다. 저도 서울에 들어오는 김진숙 동지를 맞으며 당당하게 외치겠습니다. 김진숙을 조선소로, 해고 노동자를 공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