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동자 분류작업 족쇄 벗는다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택배 노사 극적 합의 … 장시간 노동·심야배송 금지 담아

2021-01-22     정소희 기자
▲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2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비스연맹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택배기사 과로사 대책 사회적 합의기구 합의문’과 관련해 입장을 발표했다. <정소희 기자>

앞으로 택배 분류작업은 택배업계 사용자가 부담한다. 장시간 노동을 금지하고 분류작업 책임 소재를 명시한 표준계약서를 올해 상반기에 마련해 9월에는 실제 계약을 체결한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가 21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회의실에서 이런 내용의 ‘택배기사 과로사 대책 사회적 합의기구 합의문’에 서명했다. 사회적 합의기구에는 택배업계 노사와 정부·시민단체가 참여했다. 지난달부터 합의기구를 꾸려 노동시간을 포함한 택배기사 작업조건과 택배요금 거래구조 개선방안을 논의했다. 노사정은 합의문에 분류작업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는 내용과 적정 작업조건 개선안을 담았다. 백마진 관행을 없애는 거래구조 개선안은 실태조사와 의견수렴을 거쳐 올해 상반기에 발표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노사정은 이번 합의를 ‘과로사 대책 1차 합의문’으로 불렀다. 다음달 2차 사회적 합의기구 논의를 시작한다.

택배노동자에 분류작업 비용 전가 금지
주 최대 작업시간 60시간·하루 최대 12시간 목표

합의기구는 합의문에 택배노동자 작업범위를 “집화·배송”으로 명시했다. 장시간 노동의 핵심 원인이던 분류작업을 택배노동자 업무범위에서 제외한 것이다. 다만 택배기사별로 분류된 택배를 본인 택배차량에 상차하는 작업과 집화나 배송에 수반되는 전산입력 같은 부수 업무는 택배노동자가 처리한다. 현재 택배사별로 터미널 자동화 설비가 갖춰진 정도가 달라 부득이하게 택배노동자가 분류작업을 할 경우에는 택배노동자에게 분류인력 투입비용보다 높은 수준의 수수료를 지급하도록 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택배사에 자동화 설비를 빠른 시일 내에 갖추도록 강제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분류작업 비용을 택배기사에 전가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대책위는 그간 택배사(원청)-대리점(하청)-택배기사로 이어지는 위수탁계약 구조에서 분류작업 투입비용이 택배기사에 전가된다고 지적했다.

하루 최대 노동시간도 제한했다. “택배기사의 주 최대 작업시간은 60시간, 일 최대 작업시간은 12시간”이라고 정했다. 밤 9시 이후 심야배송 금지를 원칙으로 하고 배송물량이 증가하면 최대 밤 10시까지만 배송한다. 노동시간을 지키기 위해 택배노동자에게 배송 예정일부터 최대 2일 뒤까지 지연배송 책임을 묻지 않는다.

다만 노동시간을 제한하면 택배노동자 1명당 배송 물량이 줄어들 수 있는 만큼 택배노동자 수입을 보전하기 위해 합의기구에서 택배요금과 택배업계 거래구조를 연구해 관련 내용을 함께 논의한다.

이번 합의 내용은 올해 상반기까지 마련할 표준계약서에 반영한다. 올해 9월까지 노동자와 대리점은 이 표준계약서로 운송위탁계약을 체결한다.

정부, 운송사업자 심사 기준에 표준계약서 이행 반영

과로문제 해결의 관건은 택배사가 얼마나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사회적 합의 내용이 법적 강제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택배 운송사업자 심사를 통해 택배사의 이행 여부를 감시하도록 했다. 국토부는 매년 택배 운송사업자가 요건을 충족했는지를 심사한다.

국토부 고시(택배용 화물자동차 운송사업 허가 요령)에 따라 택배사들이 운송사업에 필요한 설비와 시설을 갖췄는지 평가한다. 운송사업자 심사 기준에 표준계약서 이행 정도를 반영해 사회적 합의를 지키지 않는 택배사는 사업자 지위를 상실할 가능성도 있다.

전국택배노조는 27일 파업을 철회했다. 이날 새벽 사회적 합의기구가 극적으로 분류작업 책임 문제에 합의하면서 파업을 예고한 우체국 위탁택배 노동자들도 오전에 사측과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노조 우체국본부와 우체국물류지원단이 맺은 단체협약에는 “사회적 합의기구 내용을 준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