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 지키라’며 파업·단식하는 코레일네트웍스 노동자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2021-01-14     김혜진
▲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서울역에서 만난 나이 지긋한 코레일네트웍스 노동자는 “2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 생활임금 쟁취하자”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코레일네트웍스는 철도공사의 자회사이며 공공기관이다. 노동자들은 매표·고객센터·특송·주차같이 철도운영에 필요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13일 현재 그 노동자들이 65일째 파업을 하고 있다. 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 지부장과 고객센터 지부장, 철도노조 위원장, 서울본부장이 6일째 단식하고 있다.

철도공사는 2018년 노사합의를 통해 자회사 노동자들의 임금을 철도공사 노동자 임금의 80%로 단계적으로 개선하겠다고 했다. 2019년에는 철도 노·사·전문가협의체에서 ‘위탁비에 2019년 상반기 시중노임단가 100%를 반영’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런데 그 합의는 지켜지지 않았다.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을 추진하며,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 소속 정규직화를 밀어붙였다. 그런데 자회사의 노동조건은 용역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계속 시달렸다. 자회사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자, 정부는 2020년 3월 ‘공공기관 자회사 운영 개선대책’을 내놓고, 자회사 노동자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노임단가 산정시 정당한 사유 없이 시중노임단가보다 낮게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 권장”한다고 밝혔다. 코레일네트웍스에 대한 위 노·사·전문가 협의체 합의를 모범사례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그 모범사례는 허구였다. 이 약속은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았으며, 책임지는 기관이나 정부 부처는 하나도 없었다.

실질적인 사용자인 철도공사는 자회사인 코레일네트웍스에 책임을 떠넘긴다. 코레일네트웍스는 자신들은 공공기관이라서 기획재정부의 예산지침을 따라야 하므로, 공공기관 저임금 노동자 임금인상률 4.3%를 넘어설 수 없다고 말한다. 예산지침 때문에 시중노임단가 100%에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기재부 탓을 하는 것이다. 기재부는 기타공공기관에 한해서 소관부처인 국토교통부가 결정하면 기재부의 예산지침을 준용하지 않아도 되므로, 국토부가 결정할 일이라면서 책임을 회피한다. 국토부는 2019년 합의에 대해 자신들은 알지 못했고, 정부의 예산지침이 변경돼야만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버틴다. 이들이 떠넘기기하는 동안 노동자들의 파업은 기약 없이 길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해고자도 생겨난다. 코레일네트웍스는 7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던 기간제 노동자들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키고 정년이 됐다는 이유로 해고했다. 2019년 합의서에는 “무기계약직의 정년은 2019년부터 만 61세로 하되 역무직 및 주차직의 정년은 만 62세로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런데 코레일네트웍스 이사회는 이 내용을 담은 인사규정을 부결시켰고 회사는 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부지청이 회사에 ‘현안합의를 이행하라’는 행정지도도 했지만 회사는 거부했다. 결국 정년이 도래하면서 이미 16명의 노동자가 해고됐고, 지난 1일 206명이 추가로 해고됐다. 그리고 계약직 3명이 부당하게 해고돼 총 225명이 거리로 내몰렸다.

기재부의 예산지침이 노사합의에 우선할 수 없으며, 지침은 정부가 의지를 갖고 바꾸면 된다. 정년연장도 소관 부처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정부와 철도공사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것은 현행 제도 때문이 아니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존중을 이야기하며 정책을 쏟아내고 그것을 문재인 정부의 치적으로 선전한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권리가 훼손되고 비정규 노동자들은 더 고통스러운 처지에 놓이고 있다. 최저임금을 인상한다면서 산입범위를 확대해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억제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한다면서 탄력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확대하고,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공언하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개악하는 정부다. ‘말로만 노동존중’은 문재인 정부의 본질에 가깝다.

‘합의를 지키라’고 요구하는 파업이지만 그런 합의가 없었더라도 코레일네트웍스 노동자들의 질문은 너무나 정당하다. 공공기관인 철도공사에서 필요한 일을 하는 노동자의 기본급이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것은 정당한가?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지 않아서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는 현실은 정당한가? 정규직 전환 치적을 쌓겠다고 고령노동자들을 무기계약으로 전환해놓고 정년이라면서 해고하는 것은 타당한가? 철도공사의 업무를 하는데도 철도공사가 직접고용하지 않고 아무런 권한이 없는 자회사를 내세우는 것은 용인될 수 있는가?

문재인 정부가 이에 대해 쉽게 답하려 하지 않는 이 때, 더 많은 노동자와 시민들이 함께 외쳐 주면 좋겠다. “코레일네트웍스의 파업은 정당하며 정부가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