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권리는 빼앗고 기업에는 면책 주는 ‘플랫폼 보호 대책’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2020-12-31     윤애림
▲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노동법 개정은 ‘노동존중’의 현수막을 내걸고 노동법 개악으로 귀결됐다.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앞세운 변형근로시간제 확대, 최저임금법 개악,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악이 그러했다. 지난 21일 정부가 발표한 ‘플랫폼 종사자 보호 대책’도 역시 플랫폼노동자 보호와는 거리가 멀다.

이번 ‘보호 대책’의 핵심은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 ‘플랫폼 종사자법’은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근로자로 보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 법에는 표준계약서 작성, 플랫폼 이용계약 기간·수수료 등에 관한 정보 제공, 플랫폼 종사자 단체설립·협의권 같은 ‘최소한’의 규율을 담을 것이라 한다.

법이 제공하겠다는 보호는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할 수 없는 수준이다. 현재도 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들을 위한 ‘표준계약서’가 다수 존재하고 정부 부처에서 그 활용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표준계약서는 최저 노동기준을 담고 있지도 않고 법적 강제력을 갖지도 않는다. 플랫폼 노동자의 단체설립은 현재도 자유다. 그러나 이런 단체는 노조가 아니기에 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가질 수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부가 플랫폼기업을 ‘직업소개소’로 인정하는 직업안정법 개정안을 내년 1분기에 발의하겠다고 밝힌 점이다. 플랫폼기업을 직업안정법상 직업소개소로 보게 되면, 플랫폼기업은 근로기준법·노조법, 사회보험에서 사용자로서 부담해야 할 책임을 완전히 면할 수 있게 된다.

법은 ‘플랫폼을 매개로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은 모두 적용대상으로 삼을 계획이다.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얻는다는 이유만으로 플랫폼 노동자는 근로자가 아니게 되는 셈이다. 더욱이 플랫폼기업은 일의 배정 등에 영향을 미치고도 사용자로서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합법적으로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정부가 내놓은 ‘보호 대책’은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국제적 흐름과 동떨어져 있다. 특히 지난 11월 ‘플랫폼 경제에서의 공정한 노동’이라는 대책을 내놓은 독일 정부와 극심한 대조를 보인다. 독일 연방노동사회부가 발표한 대책의 1번 제목은 ‘노무제공 플랫폼의 책임성 강화’다. 여기서는 플랫폼 노동자와 노무 이용자 사이를 매개하며, 노무제공 계약 내용과 이행에 영향을 미치는 플랫폼기업에게 보다 강한 책임을 부과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리고 플랫폼기업이 산재보험료 등을 부담하도록 할 계획이다.

독일 정부가 그 다음으로 강조하는 대책은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이다. 특히 플랫폼를 통해 일감을 얻는 노동자가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근로자’로서의 지위 인정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하겠다는 내용이 눈길을 끈다. 이를 위해 근로자 추정 제도를 도입해, 플랫폼 노동자가 고용관계가 존재한다는 지표들을 제시하면 이들이 근로자가 아니라는 반증은 플랫폼기업이 하도록 입증책임을 전환할 계획이다.

독일 정부는 대책 모두에서 “대책의 목표는 플랫폼경제에서 일하는 특수형태 노동자들이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의 기본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디지털경제는 보다 공정한 사회적 경제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도 지난해 ‘ILO 100주년 선언’에서,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단결권·단체교섭권 등 노동기본권 보장, 적정한 최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부터의 보호, 노동 안전과 보건에 관한 적절한 보호를 제공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근로계약 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타인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얻어 생활하는 모든 사람에게 노동조건의 최저 기준, 안전과 보건, 노동 3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적 기준으로 정립돼 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이번 대책은 지난 20년간의 경험으로 실패가 입증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 대책을 표지만 바꾼 것에 다름 아니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