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일터살인법’ 공소시효 없고 최대 25년형

2020-12-31     윤효원
▲ 올해 10월 발행된 호주 빅토리아주 일터안전청 사업보고서. 사업장 방문 4만7천831건, 코로나19 관련 방문 3천103건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호주 빅토리아주는 지난 7월부터 ‘일터 살인(workplace manslaughter)’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을 직업보건안전법에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처벌은 직업보건안전법에서 규정한 ‘태만 행위(negligent conduct)’를 저질러 타인의 사망을 초래한 사용자나 의무 보유자에게 적용된다. 새로운 법을 만든 게 아니라 기존 직업보건안전법의 처벌 조항을 대폭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일터의 죽음을 예방하고 의무 보유자가 자신의 보건안전 의무를 준수하도록 강한 압력을 가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법의 적용을 통해 사람들의 목숨이 위험에 처해지는 상황을 결코 묵과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겠다는 게 입법 의도다.

일터 살인 범죄 적용 대상은 법인(기업)과 개인이다. 법에 따라 법인과 개인을 처벌하려면, 이들이 희생자에 대한 직업보건안전법상 의무를 지고 있어야 하며, 태만 행위로 인한 이들의 의무 불이행이 피해자 사망을 초래해야 한다. 자연인의 경우 의식적이고 자발적으로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처벌된다.

기관과 관리자 모두 기소 대상이 된다. 기관으로는 기업·법인·정부 기관 등이 포함된다. 관리자에는 기업의 이사, 사업의 전체 혹은 일부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에 참여한 자, 관련 기관의 재정 상황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자, 동업 관계에 있는 자, 비법인 단체의 간부 등이 들어간다. 종업원은 기소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해당 종업원이 타인을 위한 보건과 안전의 책임을 지고 있거나 사용자의 직업보건안전법 준수 행위와 관련해 협력 관계에 있는 경우에는 기소도 가능하다.

법이 규정하고 있는 기업과 개인의 보건안전 의무는 다음과 같다. △종업원이 안전과 건강에 대한 위험 없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유지할 사용자의 의무 △종업원의 건강과 근무조건을 감시할 사용자의 의무 △사업으로 인해 종업원은 물론 방문자와 일반인 그리고 다른 업체 직원을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할 사용자의 의무 △자신의 사업장 내에서 사람들이 직업보건안전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할 자영업자의 의무 △사업장에 대한 관리와 통제권을 가진 자가 사업장 및 그 출입 수단을 안전하게 유지할 의무 △각종 물질을 안전하게 생산하고 사용해야 하는 제조업체와 공급업체의 의무 △사업장에서 일하는 타인을 심각한 재해 위험에 빠트리지 않도록 해야 할 개인의 의무다.

법에서 말하는 ‘태만’이란 사리가 있고 상식을 가진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특정 상황에서 취했을 기준에 크게 못 미치는 행위로, 사망이나 심각한 재해 혹은 중증 질환을 초래할 위험이 높은 경우를 말한다. 또한 종업원에 대한 관리·통제·감독이 적절하게 이뤄지지 못한 경우도 태만으로 간주된다. 나아가 위험한 상태를 바로잡는데 필요한 행위를 하지 않아서 사망이나 심각한 재해 혹은 중증 질환 위험성을 높이는 것도 태만 행위에 포함된다. 일터 살인 혐의로 유죄가 확정되면 개인은 최대 25년 징역형에 처해지며, 기업은 최대 1천650만 호주 달러(약 137억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직업보건안전법에서 규정한 일터 살인 범죄에 대한 수사는 경찰이 아니라 주 정부의 일터안전청(WorkSafe)이 주도한다. 물론 증거 보전과 안전 보건에 필요한 조치를 위해 일터안전청과 경찰이 공조를 벌이기도 하지만, 피고가 재판정에 설 때까지 일터안전청이 일터 살인 문제를 전담한다. 재판을 시작하면 검찰이 소송을 책임진다. 수사 개시와 공소 제기와 관련해 특징적인 것은 일터 살인 범죄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점이다.

모든 일터를 건강하고 안전하게 유지하며, 일터의 보건·안전상 위험을 제거하거나 줄이며, 일반인의 건강과 안전을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한다는 직업보건안전법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일터안전청은 사망, 중대 재해, 건강과 안전에 위험을 가하는 요인들에 대해 수사할 수 있다. 수사를 위해 일터안전청은 △사용자·종업원·증인·전문가 등을 심문하고 △증거를 수집하며 △고용·훈련·인사·의료 관련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일터안전청이 기소를 하게 되면, 기소장 사본이 피고에게 송달된다.

일터안전청은 수사국과 더불어 법률국도 조직 편재에 두고 있다. 수사국의 수사가 끝나면 법률국은 ‘일반 기소 지침’에 따라 모든 증거를 검토한 후 법집행 여부를 결정한다. 증거가 충분하고 사건이 공익에 부합할 경우, 일터안전청은 피고를 고소함으로써 기소 과정을 시작한다. 증거가 충분하지 않고 공익과 별다른 상관이 없는 경우, 공식 경고장을 발부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한다. 이 경우 일터안전청 법률국은 검찰청과 협력해 결정을 내린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