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내 성희롱·괴롭힘 피해자 불리한 처우금지 작동하려면

이종희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2020-12-23     이종희
▲ 이종희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한 여성노동자가 직장내 성희롱 문제를 제기한 이후 연이은 불이익 조치를 겪게 됐다. 성희롱 가해자는 별일 없다는 듯이 다른 작업장으로 전보를 갔지만 피해 노동자는 기존과 하던 작업과 다른 작업에 집중적으로 배치됐고, 저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늘 하던 시간외근로에서도 배제됐다. 직장에서 고립돼 가던 피해 노동자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보복적 조치에 대해서 결국 고소를 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원칙대로’ 작업배치를 한 것이며, 별개 사유에 기해 조치가 취해진 것이라는 사용자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불기소처분을 했다. 항고가 인용됐지만, 검찰은 다시 증거불충분의 혐의 없음 처분을 했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고용노동청과 검찰은 무엇을 했을까. 민사소송이 아닌데, 가만히 앉아서 양쪽의 주장을 청취했을 뿐이다. 누가 더 자신의 주장에 부합하는 증거를 내는지 추상적 판단자의 위치에서만 저울질했다. 그 결과 사측에서 제시하는 불리한 처우의 사유들을 그대로 수긍했다. 사업장 내 위법행위와 관련한 자료와 사람이 모두 사용자의 지휘·관리 아래에 있다는 것, 즉 증거 편재의 불균형을 감안한 적극적인 수사와 판단은 없었다.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금지는 2007년 그 위반에 대해 처벌조항도 마련됐지만, 오랫동안 선언적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성희롱 피해자가 불리한 조치를 당했음을 이유로 기소된 사례도 매우 드물다. 사용자가 직장내 성희롱 발생 이후 아무런 명목적 사유도 없이 피해자에게 불이익 조치를 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피해자에게 문제가 있다며 사용자가 드는 갖가지 사유와 그에 부합하게끔 만들어 놓은 자료와 진술은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를 정당화해 주는 논리, 또 불기소처분의 사유로 작동하고 있다.

이는 2019년 7월 시행된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에서도 마찬가지다. 근로기준법은 사내의 자율적 해결절차를 통해 직장내 괴롭힘 문제를 다루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위반시 형사처벌이 가능한 의무조항이 딱 하나 있다. 직장내 괴롭힘 신고자 및 피해 근로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 금지다. 근로기준법의 직장내 괴롭힘 규율 체계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의 직장내 성희롱 규율 체계를 많이 참조하고 있는데, 불리한 처우 금지 의무도 직장내 성희롱에 관해 규정됐던 부분을 그대로 참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가 선언적 수준에서 그다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직장내 괴롭힘 피해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도 실질적 규범력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직장내 괴롭힘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로 입건돼도 겉으로 보기에 연관성이 분명한 극히 일부만 기소되듯이, 직장내 괴롭힘 피해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도 법 시행 후 1년반이 지났지만 극히 일부만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대법원은 2017년 12월22일 판결(2016다202947)로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불리한 조치의 판단기준을 처음 제시했다. 대법원은 여러 가지 판단요소를 설시했지만 불리한 조치가 직장내 성희롱에 대한 문제 제기 등과 근접한 시기에 있었는지, 불리한 조치가 종전 관행이나 동종 사안과 비교해 이례적이거나 차별적인 취급인지 여부 등을 살피라는 판시를 했다. 성희롱·괴롭힘 발생 이후 갑작스레 종전에도 존재했던 사유를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한다면,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다’는 식의 태도로 유독 피해자를 집중감시·조사해 불리한 조치의 사유를 만들어 낸 것이라면 사용자가 내세우는 사유가 실제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괴롭힘 피해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청과 검찰의 수사·판단은 사용자의 먼지털이식 피해자 감시를 용인하고 있다. 직장내 성희롱·괴롭힘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자를 조직문화를 해치는 이기주의자로 여겨 유무형의 불이익을 가하는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각자 자료를 가지고 와서 설득해 보라는 식의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노동법에 규정돼 있는 불리한 처우 금지 규정은 규범력을 획득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