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대화 순서 바뀌었다" 전문가들 한목소리 비판] "노동시장 구조개혁 논의 사회적 공론화부터 해야"
노사정위 집담회서 우려 쇄도 … "정부, 노동계 껍데기까지 벗기려 한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시장 구조개혁 논의가 한창이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시장의 전면적인 구조개혁을 주제로 한 사회적 대화 경험은 사실 많지 않다. 물론 98년 노동시장의 전면적인 변화를 일으킬 노사정 논의가 진행됐지만 당시에는 외환위기라는 극단적인 경제상황이 있었다. 강요된 사회적 대화였던 것이다. 최근 경제가 장기적인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98년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어쩌면 생소한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한 사회적 대화가 성공할 가능성은 얼마나 크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지금 방식으로는 근본적 합의 어려워”
노사정위가 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2015년 노사관계와 사회적 대화 전망과 과제’ 집담회에 참가한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지적한 것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었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필요성이나 큰 방향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를 만든 뒤에 사회적 대화를 진행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 순서가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발제를 통해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해서는 이해 당사자들의 광범위한 사회적 동의를 얻는 것이 필요한데, 주로 전문가와 노사정 상층부 위주로 논의가 전개돼 왔다”고 지적했다. 배 본부장은 “이런 방식으로는 부분적인 합의는 가능하겠으나 보다 근본적인 합의는 어렵다”며 “여야·노사정·노년·청년·여성·실업자·비정규직 대표들이 참여하는 국민대토론회를 포함해 사회적 공론화 작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우리나라 사회적 대화 참가자들의 상호신뢰·대표성·진영논리·사회적 공감대 정도를 분석하고, 사회적 합의 여건이 충분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어느 나라건 사회적 합의가 추진되는 시기는 자본과 노동이 모두 벼랑 끝에 놓여 있을 때였다”며 “사회적 양극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대기업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어서 타협이 선뜻 이뤄지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노사 간 주고받기식 사회적 대화를 지양하자고 강조했다. 이 사무처장은 “사회적 대타협은 주고받는 거래방식이 아니라 공론화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며 “지금 노사정위가 취해야 할 자세”라고 말했다.
“정부 주도 노사정 대화 위험해”
노동시장 구조개선 작업이 정부 주도로 진행되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사회학)는 “노사가 개혁에 미온적이거나 합의하지 못하면 정부가 나서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번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정부 주도로 성급하게 진행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노사가 주도적으로 참여해서 고용체제를 바꿔 나가는 것이 중요한데 정부가 주도하면 효과가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제시한 ‘과보호 해소’나 ‘이중구조 해소’ 등의 방향 자체가 모호하고 근거도 부족하다는 분석도 뒤따랐다. 정 교수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논의를 통해 개혁방향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높이고, 노사가 담당해야 할 과제와 역할이 더 진지하게 모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98년에는 정부가 정리해고제 도입을 노동계에 요구한 대신 교원노조와 공무원노조 합법화 등 노동계가 요구한 90여개 항목을 수용했다”며 “그런데 지금 정부는 내놓을 것은 없으면서 노동계의 껍데기까지 벗기려 한다”고 비판했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주도하는 정부가 98년과는 달리 노동계에 줄 카드는 내놓지 않고 양보만 요구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