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삼성전자서비스 위장도급 면죄부, 그 후…] 본사 직원이 책상 뒤지는 감사, 노동부만 몰라본 '위장도급 징후'
업무감사 앞두고 노조탈퇴 종용하기도 … 대규모 해고사태 우려
“자기들이 분명히 다른 회사라고 했는데…. 원청회사가 도급회사에 들어와서 책상을 뒤지는 게 말이 되나요?”
지방에 있는 삼성전자서비스 지역센터에서 일하는 ㅅ(32)씨. 그는 30일부터 본사 직원들이 회사 업무감사를 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업무감사는 그들에게 굴욕적일 수밖에 없다. 이달 16일 고용노동부가 삼성전자서비스의 AS업무에 대해 “파견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밝힌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느끼는 비애는 더욱 크다.
죄인처럼 추궁당하고 확인서에 서명까지
지난 25일부터 시작된 삼성전자서비스의 업무감사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냉장고·선풍기·에어컨 등에 대한 고객들의 AS 요청이 쇄도하는 여름 성수기가 시작되기 직전, 그리고 성수기가 끝난 직후에는 반드시 감사가 진행됐다.
본사는 전산관리시스템을 통해 사전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협력업체 직원들을 고른다. 그리고 각 지역센터에 직원들을 파견해 감사에 나선다. 점령군이라도 되는 양 회사의 VIP룸·교육장·탈의실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첫 타깃은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를 수리하는 내근직들이다. 자재를 숨기거나 착복한 것은 없는지 조사한다. 다음은 외근을 하는 AS 기사들 차례다. 고객의 수리요청에 대해 서비스를 제대로 했는지, 유상과 무상 서비스를 잘 구분했는지, 서비스비용을 부풀려 착복하지는 않았는지를 파악한다.
내근직들을 조사할 때는 직원들의 책상을 함부로 여닫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사적공간을 침해당하는 것은 외근직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동인천센터에서 근무하는 라두식(41)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수석부지회장은 “언젠가 재고조사를 나온 본사 직원이 개인차량을 조사하려고 해서 한바탕 싸운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감사 과정에서 의심받는 협력업체 직원들은 본사 직원들이 일하는 임시 사무실에 불려 간다. 그러면 검찰이나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것처럼 추궁을 당한다. 본사 직원들이 작성한 감사내용에 확인도장을 찍는 것도 경찰 조사와 유사하다.
감사 결과 부정행위가 적발된 직원 명단과 내용은 협력업체 사장인 센터장에게 통보된다. 센터장은 해당 기사의 ‘코드’를 정지시킨다. AS업무를 나갈 수 없다는 뜻이다. 건당 수수료로 연명하는 기사들에게 코드 중지는 돈벌이 중단과 같은 의미다. ㅅ씨는 “기사코드를 중지당한 동료 대부분은 회사에서 사라졌다”고 말했다.
“불법파견 아니면 불공정거래” vs “협력업체 경영진단”
협력업체에 대한 삼성전자서비스의 업무감사 양상을 보면 누가 봐도 원청과 도급업체의 관계로 보이지 않는다. 정부조직에서 벌어지는 감사나 기업이 특정부서와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감사와 다른 게 하나도 없다.
삼성전자서비스 공대위의 류하경 변호사는 “협력업체가 자기회사 부서라면 몰라도 스스로 ‘남의 회사’라고 부르는 곳에 가서, 그것도 남의 직원들의 업무기록과 책상을 뒤지고 있다”며 “불법파견이라는 것 외에는 딱히 다른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삼성전자서비스의 업무감사는 고용노동부가 6~8월 실시한 수시근로감독에서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위장도급 여부를 판가름하는 주요 요소 중 하나인데도 말이다. 노동부가 몰랐거나 모른 체했을 가능성이 높다.
노동부 경기지청 관계자는 “근로감독 과정에서 정기적으로 재고검사를 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업무감사까지 한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기자의 질문을 받은 뒤 노동부는 부랴부랴 삼성전자서비스에 해명을 요청했다. 경기지청이 전해 준 삼성전자서비스의 해명은 “협력업체에 대한 경영진단”이었다. 성수기에 들어온 고객의 서비스요청을 제대로 처리했는지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반기에 AS체계를 제대로 갖추기 위해 업무감사를 실시한다는 얘기다. 경기지청 관계자는 “협력업체에 대한 경영진단일 뿐인데 밖에서는 감사로 오해한다는 것이 삼성전자서비스의 설명”이라고 말했다.
25일부터 본사의 업무감사가 시작된 삼성전자서비스 동인천센터의 사장은 업무감사에 반발하는 직원들에게 “본사와 체결한 도급계약서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삼성전자서비스 공대위가 입수한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업체 간 계약서에는 업무감사 관련 내용이 없다. 다만 필요할 경우 경영컨설팅·경영설명회 같은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 공대위의 설명이다. “협력업체의 경영진단을 위한 것”이라는 삼성전자서비스의 해명과 연결되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해도 협력업체에 대한 원청의 업무감사가 정당성을 갖기는 힘들다. 류하경 변호사는 “일반적인 경영간섭권이라 하더라도 위장도급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도급계약서에서 업무감사를 약속했다면 명백한 불공정거래”라고 비판했다.
조합원 표적감사로 이어지나
삼성전자서비스의 업무감사가 지회 조합원들에 대한 표적감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25일부터 업무감사가 시작된 삼성전자서비스 서수원센터의 정일구(41) 분회장은 센터 사장으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사장이 불렀어요. 녹취가 염려됐던지 스마트폰을 놔두고 오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사장이 ‘본사 업무감사가 곧 시작된다. 내가 아는 (조합원) 명단을 본사에 미리 말해 놓을 것이다. 노조를 탈퇴하라’고 하더라고요.”
정 분회장은 “70명의 외근직 중에 노조에 가입한 사람은 10명밖에 안 된다”며 “가뜩이나 노조 조직률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업무감사가 진행돼 조합원들이 많이 위축돼 있다”고 우려했다.
매년 진행되는 업무감사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다르다. 현장에서는 긴장감마저 돈다. 지방의 한 지역센터에서 일하는 ㅇ씨는 “올해는 예년과 달리 조합원들이 몰린 외근직을 대상으로 집중 감사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며 “벌써 센터 직원 몇 명이 본사에 찍혔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귀띔했다.
최근 지회는 조합원들이 감사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매뉴얼을 지침으로 내렸다. 삼성전자서비스 공대위는 “업무감사가 지금처럼 진행될 경우 대량 해고가 걱정된다”며 “국정감사에서 삼성전자서비스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학태 기자
| 노동부 적법도급 판정, 도대체 뭘 근거로… 고용노동부가 이달 16일 삼성전자서비스의 AS업무에 대해 적법도급 판정을 내린 것과 관련해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 따르면 부산동래센터는 올해 6월과 8월 관리지역이 절반 이상 줄었다. 센터의 서비스지역이었던 연제구 사직동이 6월에, 명륜동과 안락동 일대는 8월에 각각 다른 지역센터와 본사직영센터로 넘어갔다. 지회 동래센터분회 관계자는 “보통 성수기에 다른 지역의 본사 직원들이 지원을 나와 서비스를 도맡다시피 하다가 비수기에 접어들면 다시 우리에게 업무를 넘겼는데 올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동래센터는 지회장과 사무장을 배출한 곳이다. 포항센터도 마찬가지다. 올해 4~7월 담당 서비스지역의 절반인 남구지역이 인근의 경주센터와 본사로 이관됐다. 노조가 설립된 뒤 주말근무가 줄어들면서 AS 처리건수가 줄어들었다는 이유였다. 문제는 두 센터 모두 기존 인력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비성수기를 맞았다는 점이다. 기본급 없이 AS 건당 수수료가 급여의 전부인 기사들에게 급여삭감이 불가피하게 됐다. 포항센터분회 관계자는 “9월 급여가 나오는 다음달 10일에는 기사들의 절반 이상이 100만원 정도의 급여만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래센터분회 관계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월급이 절반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동래·포항센터처럼 본사가 협력업체의 서비스구역을 일방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노동계가 위장도급의 유력한 증거로 봤던 대목이다. 삼성전자서비스 공대위는 고객들에게 AS 기사들을 평가하도록 하는 만족도 조사(CMI)도 위장도급의 증거로 제시했다. 서비스를 받은 고객들에게 본사의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어 설문조사를 하는 방식이다. 불친절하거나 AS가 지연되는 것에 더해 요금이 비싸다는 고객의 지적까지 모두 기사가 책임진다. 조사 결과 7점 이하 점수를 받은 기사는 그 즉시 업무를 중단하고 사무실로 소환된다. 기사는 반성문을 쓴 뒤 본사조직인 지점을 찾아가 본사 관계자들 앞에서 보고를 해야 한다. “지점에 찾아가서는 ‘정말 반성한다. 앞으로 잘하겠다’고 싹싹 빌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고 센터에 돌아오면 무능한 직원이 되는 겁니다. 심하게 말하면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1년 전쯤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낭패를 봤다는 충남 아산센터 장아무개(44)씨의 경험담이다. 노동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종합적으로 판단했다”는 모호한 설명으로 삼성전자서비스에 '적법도급'이라는 면죄부를 줬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김학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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