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ILO 1호 협약은 ‘하루 8시간 노동’이었고, EU는 1993년 건강 및 안전조치 일환으로 ‘주 35시간제’를 채택했다. 이제는 일의 ‘필요 영역’과 ‘자유 영역’을 구분하고, 새로운 노동체제를 논의할 시점이다. 주4일제 네트워크 소속 전문가들이 사회적으로 달성해야 할 노동시간 변화의 필요성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노동시간 단축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글은 그 질문에 ‘사회적 대화 주체’라고 답한다. 그 이유를 세 단계로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제도적 개혁이 필수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법정 노동시간은 주당 35~40시간으로 한국과 큰 차이가 없지만,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특히 유럽 국가에 비해 한국이 훨씬 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연간 유급휴가(연차) 일수가 적다. 한국은 15일부터 시작해 최대 25일까지 늘어나지만, 모든 EU 국가는 최소 20일에서 최대 30일을 보장한다(비EU 국가인 영국·노르웨이·아이슬란드 포함). 업종별 단체교섭이 활발한 EU 국가의 경우 대부분 기업이 최소 25일의 휴가를 제공한다. 법적 규정과 업종별 단체협약은 5명 미만 영세사업장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EU 노동시간 지침(EU Working Time Directive·2003/88/EC)은 유급휴가의 금전적 보상을 제한한다. 일부 나라에서는 시간제 노동이 광범위하게 확산돼 있다(독일·네덜란드·덴마크 등).
한국은 유럽과 구조적으로 다른 환경에 놓여 있지만 연평균 노동시간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주 52시간 상한제의 단계적 도입 효과다. 이 제도는 2018년 7월 도입돼 2021년 7월부터 5명 이상 사업장까지 적용됐다. 둘째, 연차휴가 소진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셋째, 시간제 노동 종사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제도 개혁의 효과가 일정 부분 소진됐음을 의미한다. 이제는 노동자의 자발적 또는 비자발적 선택에 따라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둘째, 제도 변화는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공법은 이해당사자 간 대화, 즉 사회적 대화다. 물론 정책결정권자의 의지에 따른 개혁이 더 빠르고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정치권력의 변화에 따라 제도의 불안정성을 초래할 수 있다. 현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불안정한 지배구조와 최근 출범한 국회 내 사회적 대화 기구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 사회는 아직 사회적 대화 제도에 익숙하지 않다. 이는 우리 사회의 체질 때문이 아니라 경험 부족, 상호 불신, 제도의 미성숙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대화 기구의 개혁이 절실하다.
셋째, 이를 위해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사회적 대화 주체가 대의민주주의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한국의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 조직률은 유럽 국가에 비해 매우 낮다. 이를 보완하는 한 가지 방법은 모든 사용자(1명 이상 직원을 고용한 고용주 또는 경영자)와 임금노동자에게 직접 투표권을 부여하고, 정기적인 선거를 통해 사회적 대화의 주체인 사용자단체와 노동단체를 선출하는 것이다. 대화 주체에 더욱 강한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경사노위에서 의결된 사안에 법적 효력, 즉 강제력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사회적 대화 기구의 제도적 위상을 높여야 한다.
경사노위의 지배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정치권력의 변화와 무관하게 노동 관련 사안을 지속 논의할 수 있도록, 사용자단체와 노동단체가 교대로 위원장직을 수행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많은 시간과 사회적 비용을 요구한다. 어찌 보면 비효율적이다. 우리는 2024년 12월부터 2025년 5월까지 당시 유일한 선출 권력이었던 입법부가 국정을 주도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주권자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 한정된 기간 내 법률이 정한 권한을 행사하는 대의민주주의. 사회적 대화에도 이런 원리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사회적 대화 기구는 그 정도의 위상을 갖춰야 한다.
장시간 노동을 해결하자는 목표에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주 4.5일 근무제와 같은 구체적 방식에는 찬반이 갈린다. 어쩌면 노동시간 단축은 사회적 대화 기구의 위상을 시험하고 동시에 개혁할 수 있는 기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