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무슨 일이야. 기사들이 엄청 많네요. (나에게도) 콜을 주소서. 으샤으샤.” 밤거리가 작업장인 여성 대리기사 이야기가 영화로 나왔다. 카부기공제회(카드라이브 부·울·경 대리기사 공제회)가 제작하고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이 후원한 다큐멘터리 <밤의 유령>은 실제 대리기사의 노동을 1인칭 시점으로 보여주며 삶의 현장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영화는 지난달 25일 26회 부산독립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다.
노회찬재단이 지난해 여성의날을 맞아 카부기공제회에 선물한 보디캠이 기획의 출발점이 됐다. 영화는 대리기사들이 일감을 찾아 거리를 헤매고, 손님과 대화하며 일하는 보디캠 영상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이창우(63·사진 오른쪽) 감독은 “다른 사람들 출근할 때 사라지는 대리기사는 유령 같다”며 “그들이 자신의 일상을 지키려고 분투하는 모습을 영화로 담아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부산 무사이독립극장 상영부터 부산독립영화제 수상까지 “예상치 못한” 흥행 실적을 내고 있는 이 감독과 지난달 30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밤의 유령>은 이 감독의 데뷔작으로, 그는 부산이동노동자지원센터에서 퇴직한 뒤 영화를 제작했다. 영화는 부산플랫폼노동뉴스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다.
- <밤의 유령>은 어떤 영화인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만 존재를 잘 느끼지 못하고, 노동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대리기사들이 자신의 일상을 어떻게 지키고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다. 흔히 사회생활이라고 하면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해서 가족과 밥을 먹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런 일상을 보낼 수 없기 때문에 대리기사들의 삶이 힘들고 어렵다고 폭로한다기보다 자신의 일상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평범한 모습을 담고 싶었다.”
- 영화를 본 대리기사들 반응은 어땠나.
“마지막 씬이 좋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리기사가 일과를 마치고 새벽에 집에 돌아간다. 그러면서 같이 대리운전 일을 하고 집 계단을 올라가는 배우자의 등을 쓰다듬는 장면이 나온다. 촬영 중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집에서 딸이 불을 켜고 맞이해 준다. 사는 게 어떻게 쉽겠나. 고단한 일상을 보내고 서로를 격려하는 가족의 모습이 잘 담긴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첫 씬이다. 대리기사가 아주 친절한 고객을 만난다. 고객의 차에서 내린 대리기사가 또 걸어다니며 다음 콜을 잡아야 하니까 ‘저쪽으로 가야 큰길로 나갈 수 있다’고 알려 주고, 잔돈 3천원을 팁으로 준다. 평범하지만 따뜻한 장면이다. 나중에 진상짓을 하는 빌런도 만나지만 사실은 우리 사회에는 친절한 사람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 꼭 넣고 싶었던 장면이 있었다면.
“우리 사회에서 투명인간으로 취급받던 대리기사들이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카부기공제회에는 여성 대리기사 모임인 ‘여자만세’가 있다. 순천에 소풍을 가서 직접 담근 장아찌와 노동의 경험을 나누고, ‘이제는 가족보다 더 가족 같다’고 말한다. 여자만세는 ‘한밤의 해우소’라는 심야 개방화장실 정보 공유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기도 했다. 뿔뿔이 흩어져 일하던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드러내고 스스로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 보디캠 영상을 들여다보는 작업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대리기사 네 명에게 보디캠 영상을 공유해 달라고 했는데 한 명만 꾸준히 올려 줬다. 다행인 일이었다. 사실은 두 달 가까이 보디캠 영상만 쳐다보고 있었다. 할 게 못 된다. 이동노동자들의 보디캠 다큐멘터리 2탄은 다시 만들고 싶다. 배달라이더들과 해 보고자 한다.
<밤의 유령>에서 어떤 고객이 대리기사에게 욕을 하면서 ‘대리하는 것들은 평생 대리만 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콜이 2만1천원인지, 1만9천원짜리인지 기억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렇게 말했다. 이동노동자들의 노동을 함부로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함께 눈살을 찌푸려 주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좋겠다. 그래서 이동노동자들을 주제로 또 영화를 만들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