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GV80 모델의 차량 성능을 실험하던 현대차 소속 연구원 2명과 협력업체 소속 연구원 1명이 숨지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의는 이들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을 수 있다는 1차 소견을 내놓은 상태다. 실험실 내 배기장치 고장이 주요 사고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무사안일> 스물두 번째 사연은 가장 치명적인 산업재해 유형으로 분류되는 ‘밀폐공간 질식재해’에 대한 기록이다.
질식사고 재해자 10명 중 4명 사망
안전보건공단 집계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2014~2023년) 총 174건의 밀폐공간 질식재해가 발생했다. 136명이 사망하고 202명이 다쳤다. 매년 14명의 노동자가 질식재해로 목숨을 잃었다는 뜻이다. 밀폐공간 질식재해가 치명적이라는 사실은 사망률 수치로도 증명된다. 최근 10년간 일반 사고성 재해자 중 사망자 비율은 0.98%, 그런데 밀폐공간 질식사고 재해자 중 사망자 비율은 40.2%에 달한다. 다른 유형의 산업재해에 비해 질식재해의 사망확률이 41배나 높다는 뜻이다<그림 참조>.
밀폐공간 질식재해가 치명적인 이유를 살펴보기 앞서 어떤 공간이 밀폐공간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밀폐(密閉)의 사전적 의미는 “샐 틈이 없이 꼭 막거나 닫음”이다. TV 홈쇼핑의 밀폐용기 판매방송에서도 반찬냄새나 김칫국물이 절대로 새지 않는 강력한 밀폐력을 강조한다. 쇼핑호스트가 반찬통 안에 드라이아이스를 넣은 다음 그 기체가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는 모습을 시연하던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밀폐공간과 밀폐용기는 다르다. 단언컨대 완전히 다르다고 이해하는 편이 낫다. 밀폐공간을 밀폐용기처럼 사방이 꽉 막힌 공간으로 잘못 이해할 경우 “우리 사업장엔 밀폐공간이 없다”고 오인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재해의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공간이 밀폐공간일까. 공간의 형태보다는 질식사고가 발생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폐수처리장 집수조나 처리조의 경우 개방된 공간에서 작업이 이뤄지지만, 슬러지를 제거하거나 약품을 투입할 때 유해가스가 발생해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별표 18)은 밀폐공간의 18가지 유형을 규정하고 있다. 중요한 건 규칙에 예시로 열거된 맨홀‧저장창고‧탱크‧정화조‧터널 같은 장소의 종류가 아니다. 산소 결핍이나 유해가스 발생으로 질식사고 가능성이 높은 모든 공간에 대해 예방책을 마련해야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수 있다.
지금까지 나온 언론보도를 종합해 보건대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발생한 질식사고 역시 밀폐공간에 대한 오인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다. 차량 성능 실험공간인 체임버를 밀폐공간으로 인식조차 하지 못했을 가능성 말이다. 에이 설마, 완성차 글로벌 톱3 현대차그룹이 그런 기본적인 사항도 확인하지 않고 전문 인력을 투입했다고?
하지만 우리는 설마가 사람 잡는 광경을 왕왕 목격한다. 사고 발생 장소에는 그 흔한 산소농도 측정기나 경보장치 하나 없었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최소한의 보호구도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죽음에 맞이했다. 늘상 무방비 상태로 인력 투입이 이뤄졌다는 노동조합 관계자들의 증언도 들려온다. 밀폐공간에 대한 안전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정황증거다.
무색·무취 일터의 살인가스, 일산화탄소
질식은 우리 몸에 산소가 정상적으로 공급되지 않는 상태다. 이때 산소 이동을 방해하는 물질을 ‘질식제’라고 한다. 질식제는 ‘단순 질식제’와 ‘화학적 질식제’로 구분된다.
단순 질식제는 아르곤‧수소‧질소‧헬륨‧메탄 등이 있다. 그 자체는 유해성이 없지만 밀폐되거나 제한된 공간에 누출되면 산소농도를 떨어뜨린다. 대기 중 산소농도가 18% 밑으로 떨어지면 산소결핍에 따른 건강장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산소농도가 매우 낮은 상황에서는 단 한 번의 호흡도 치명적이다. 산소 분압이 순간적으로 떨어지면서 신체 각 조직의 산소가 부족해지고 뇌의 활동이 중단된다. 이 같은 의식불명 상태에서 호흡 정지시간이 6분을 경과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화학적 질식제는 인체 내 산소 운반능력을 감소시키거나 호흡기관을 손상시켜 호흡을 방해한다. 현대차 질식사고에서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이는 배기가스 속 일산화탄소는 대표적인 화학적 질식제다.
일산화탄소는 혈액 속 산소 운반을 담당하는 헤모글로빈과 강하게 결합한다. 일산화탄소와 헤모글로빈의 결합력은 산소와 헤모글로빈의 결합력보다 250배 이상 크다. 따라서 체내에 산소와 일산화탄소가 함께 존재하는 상황이 되면 헤모글로빈은 산소가 아닌 일산화탄소와 결합하고, 우리 몸은 산소 부족에 의한 위급상황에 빠져든다. 공기 중 일산화탄소 농도가 1.28% 수준이면 1~3분 안에도 사망이 이를 수 있다.
과거 연탄가스 중독사건의 주범이었던 일산화탄소는 오늘날에도 산업현장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업종별 질식재해 발생현황을 보면 건설업에서의 사고 건수가 69건(39.7%)으로 가장 많다. 특히 동절기인 1월에 건설업 질식재해가 집중됐다. 건설현장에서 콘크리트를 타설한 뒤 빨리 굳히기 위해 갈탄 등을 태워 내부 온도를 높이는데, 이러한 양생과정에서 일산화탄소가 다량으로 발생해 질식사고를 유발한 것이다. 갈탄처럼 탄소 함유량이 적고 수분함유량이 큰 연료는 불완전 연소하기 쉽다. 이 때 더 많은 일산화탄소가 뿜어져 나온다. 정부는 위험한 갈탄 대신 전기 열풍기를 사용하라고 권고해 왔지만, 말뿐인 권고에 알아서 움직일 기업이 과연 있을까.
위험성평가를 위한 위험성평가가 필요하다
밀폐공간 작업관리는 우리 사업장 어디에 밀폐공간이 있는지, 어떤 유해요인이 발생하는지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천장이 뚫린 개방된 장소라도 질식사고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질식사고를 예방하려면 먼저 사고위험성을 노동자들에게 알려야 한다. 작업 전과 중간에 산소‧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하고, 환기팬을 이용해 작업공간을 충분히 환기해야 한다. 작업자는 공기호흡기‧송기마스크 같은 호흡용 보호구를 착용하고,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무전기와 휴대용 랜턴을 소지해야 한다. 작업상황을 모니터할 감시인을 외부에 상주시키고, 감시인은 사고발생시 곧바로 119에 신고해야 한다. 감시인이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보호장비 없이 밀폐장소에 들어갈 경우 제2, 제3의 재해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절대로 사고장소에 접근해선 안 된다.
이러한 예방대책을 한 마디로 요약한 것이 바로 ‘위험성평가’다. 위험성평가는 사업장 내 유해‧위험요인을 찾아내고, 개선하고, 평가함으로써 재해를 예방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현대차 질식사고는 평상시 위험성평가만 제대로 했어도 충분히 잡아낼 수 있는 리스크였다. 그런 점에서 지난 5월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공정에서 발생한 방사선 피폭사고와 함께 우리나라 대기업의 위험관리 수준을 제대로 보여준 양대 사건이라 하겠다.
질식사고 발생 이틀 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회사를 상대로 안전대책 마련과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위험성평가 실시를 요구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노동조합 중 한 곳인 현대차지부조차 위험성평가 과정에 배제돼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배제까지는 아니라도 노동자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는 구조가 아니라는 사실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게 사실이라면 일터안전의 미래는 너무나 어둡다. 노동조합조차 없는 대다수 사업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위험성평가의 실체가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인증을 받기 위한 서류작업이거나, 언제 닥칠지 모르는 중대재해에 대비한 보험용 요식행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아리셀 화재참사를 통해 형식뿐인 위험성평가가 재해 위험의 경고음을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정부가 강조해온 자율규율(Self-Regulation) 예방체계의 핵심을 이루는 위험성평가는 도대체 어떤 모양새로 굴러가고 있는 것일까. 이대로 가도 괜찮은 것일까. 위험성평가를 위한 위험성평가가 필요해 보인다.
일환경건강센터 PL (tokki79@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