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우영 작가 유튜브채널 갈무리

시청자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에 접속해 <극장판 검정고무신: 즐거운 나의 집>과 <추억의 검정고무신>을 언제든 볼 수 있다. 하지만 검정고무신의 캐릭터들을 탄생시킨 그림작가 이우영 작가의 이름을 엔딩크레딧에서 찾아볼 수 없다. 2019년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검정고무신 주요 등장인물 기영이와 기철이를 피규어로 제작, 판매했지만 이우영 작가는 지인을 통해 그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2015년 ‘검정고무신 4기 애니메이션’이 출시됐는지도 페이스북을 통해 알았다.

반복되는 권리 침해가 모자랐는지 대행사는 2019년 이우영 작가가 자신의 다른 작품에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등장시키자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저작권 분쟁에 지친 이 작가는 결국 지난 11일 세상을 등졌다.

1992년부터 2006년까지 소년챔프에 연재된 검정고무신은 196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한다. 초등학생 기영이와 중학생 기철이의 가족 이야기를 담은 코믹 만화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영일 작가가 쓰고, 이우영·이우진 작가 형제가 그렸다.

“저작자인데 저작권 위반으로 피의자 신분”
이 작가 생전 언론인터뷰서 토로

저작권 분쟁 사태는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캐릭터 대행사 ㅎ사는 이우영 작가가 다른 작품에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그렸다는 이유로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했다. 기영이와 기철이를 포함해 검정고무신에 등장하는 9개 캐릭터 저작권 지분 53%를 ㅎ사 대표가 가지고 있는데 저작권자 동의 없이 캐릭터를 사용했다는 이유에서다. ㅎ사 대표는 2008년 검정고무신 사업화를 이유로 글·그림 작가에게서 캐릭터 저작권 지분 36%를 확보했고, 이후 글 작가에게 추가 지분(17%)을 양도받아 과반의 지분을 확보했다.

과반 지분을 확보한 ㅎ사는 글 작가의 동의만 받고 그림 작가인 고인에게 알리지 않은 채 사업을 진행해 왔다. 그림 작가에게 지급하던 수익도 크게 줄었다. 당초 글·그림 작가 35%·65% 비율로 수익을 나눴는데 지분율을 조정하면서 그림작가 이우영·이우진 형제의 지분은 37%로 낮아졌다.

ㅎ사 대표는 2차 저작물 사업을 진행하면서 작가에게 주게 돼 있는 수익의 3% 중 30%를 수수료로 떼고 지분비율대로 글·그림 작가에게 지급했다.

고인은 생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저작자인데 저작권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피의자가 돼 있는 상태”라고 억울해 했다.

“포괄적 2차 사업권, 대행사에 맡겨”

문제의 근원에는 목적과 사업권을 특정하지 않고 범위를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정한 불공정 계약이 있다. ㅎ사 대표는 검정고무신 작가와 맺은 사업권 설정 계약에서 “모든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및 그에 파생된 모든 이차적 사업권을 포괄한다”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손해배상청구권 및 일체 작품활동과 사업에 대한 모든 계약에 대한 권리를 양도하고 위반 시 3배의 위약금을 낸다”는 취지의 양도계약서도 체결됐다고 한다.

유영소 어린이청소년작가연대 저작권위원회 위원은 “계약은 사적 자치의 원칙에 따라 이미 성립됐다면 불공정한 내용이라도 계약대로 이행해야 한다”며 “아직 창작되지 않은 미래 창작물, 2차 저작물, 캐릭터 저작권 등을 포괄적으로 양도하게 하거나 불합리한 비율로 수익을 배분하게 해도 저작권자들에게 마땅한 보호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현행 저작권법은 저작권 계약을 전적으로 사적자치의 원칙에 맡겨 사후적으로 문제가 생겨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저작권에 관한 인식이 과거보다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창작자와 출판사·제작사 간 계약 당시 힘의 불균형에서 오는 불공정 계약은 현존한다. 유 작가는 “최근 몇몇 그림책 작가의 계약서를 살펴봤는데, 특정기간 동안 너의 그림책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을 다 해 볼테니 다 맡겨라는 식의 불공정한 조항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우영 작가 유튜브채널 갈무리
▲ 이우영 작가 유튜브채널 갈무리

“저작권법 개정안 통과됐더라면 …”

범유경 민변 노동위원회 변호사는 “캐릭터 지분 50%를 넘게 보유한다는 것만으로 작가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며 “저작권자의 저작인격권은 양도되지 않는 권리로,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공표권·성명표시권·동일성유지권으로 구성된다. 그런 권리들이 보장됐는지 의문이다”고 비판했다.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내용을 담은 저작권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범 변호사는 “노웅래 의원의 저작권법 개정안이 통과됐다면 저작권의 포괄양도가 금지되고 (저작권을 포괄양도하는) 약정은 무효가 됐을 것”이라며 “(창작자에 대한) 대가가 있었더라도 너무 소액이니 보상청구권이 인정이 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2020년 11월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저작권법 개정안은 불공정 저작권 계약을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장래 창작물의 저작재산권 포괄 양도나 이용허락 계약을 무효로 하고, 수익에 비해 창작자 대가가 공정하지 못할 경우 작가가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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