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김어준씨(이하 존칭 생략)가 TBS를 나가 새로운 유튜브 채널을 만들자 첫 티저영상 이후 보름 만에 구독자 100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스스로 ‘진보’를 자처하는 그의 지지자들은 크게 고무된 표정이다. 사회적 현안마다 꽤 높은 발언력을 행사하는 김어준의 파워가 새삼 확인됐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유튜브 채널이 며칠 만에 구독자 100만명을 돌파하는 일이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연예인들에겐 비일비재한 일이다.

김어준에 대한 지식인들의 평가는 크게 둘로 갈린다. 일부는 그의 음모론적인 방송이 끼치는 해악에도, 철도나 에너지 사영화 같은 사안에 있어서는 비판적인 관점을 유지하기 때문에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게다가 적지 않은 이들이 그의 견해로부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일정하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꽤 일리 있는 말이다.

다른 한편, 김어준이 이끄는 강력한 팬덤이 에이미 추아가 규정한 ‘정치적 부족주의(Political Tribes)’에 불과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가 여러 사안에서 잘못된 견해를 유포했기 때문에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견해다. 가령 김어준은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음모론이나 미투운동 시기의 공작설을 유포하는 데 방조 또는 협력했고, 세월호 고의 침몰설을 적극적으로 유포하기도 했다. 사후적으로 이와 같은 음모론들은 논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나, 김어준은 공인으로서 제대로 사과하거나 반성한 바 없다. 그가 하는 방송의 영향력이 매우 큰 만큼 그러한 음모론이 끼치는 파급력과 악영향도 크고, 따라서 김어준이라는 마이크를 ‘경우에 따라 활용할 수 있다’는 식의 논리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을 ‘친국힘’과 ‘친민주당’ 둘로 단순하게 나눌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은 김어준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 “국힘 이중대” 따위의 딱지를 쉽게 붙일 것이다. 하지만 김어준식 음모론에 대한 진보적 비판은 다분히 사실과 상식에 기반하고 있다. 과학적 사실을 무시하고 사회 여론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인플루언서에게 상식에 근거해 비판하는 것마저 부족주의적인 구획으로 나누다 보면 우리의 공론장은 매우 궁핍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 조사 과정이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던 것에는 김어준발 ‘외력설’이 끼친 악영향이 크다. 선박 내부 결함이 문제였다는 것이 충분히 드러났는데도 세월호 참사 선체조사위원회의 일부 인사들은 ‘고의 침몰설’ 같은 ‘외력설’에 오랫동안 매달렸다. 이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원인 조사를 통한 제도개혁과 멀어지게 했고, 그만큼 우리 사회의 모순에 맞선 사회운동적 대응과도 멀어지게 했다. 사회운동에서 음모론은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지만, 궁극적으로 모순에 맞선 저항에서 음모론이 중심이 되면 사회운동을 좀먹게 할 뿐이기 때문이다.

적의 적은 동지인가? 지난 16일 MBC 라디오에서 새로 런칭한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은 김어준을 인터뷰 대상으로 소환하고, 모종의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뉴스인지, 또 하나의 음모론 유튜버인지 정체성이 모호해 보인다. TBS 예산삭감은 분명 정치세력의 언론에 대한 개입이지만, 이를 바탕으로 모종의 동지애를 구성하는 일이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다른 한편, 문재인 정권 시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내로남불’을 비판하고, 김어준의 음모론 방송에 조롱적인 비판을 가하며 유명세를 얻은 김경율 회계사는 갑자기 고용노동부 산하의 ‘노동관행 개선 자문단’의 단장으로 선출됐다. 아마도 이 자문단은 윤석열 정부가 밀어붙일 노동개악의 비판을 뭉개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면피성 조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단국대 의과대학 서민 교수는 이보다 더 노골적으로 윤석열 정부에 붙은 케이스다. 그는 한창 소위 ‘진보진영’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다가 진보의 내로남불을 경멸하는 걸 넘어서 아예 반대쪽으로 가더니, 입에 담기 어려운 말들을 내뱉으며 노골적인 부족 찬양에 나섰다. 지난 대선 시기에는 일부 좌파 활동가들조차 윤석열이 ‘자유주의자’라고 주장하면서 포퓰리즘 정치에 대응하기 위해 차라리 윤석열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첫 1년을 보고 ‘자유주의’를 운운하는 것만큼 이상한 소리는 없다.

김어준과 김경율, 서민은 이전보다 더 정확하게 반대편에 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정말 적대하는 양 세력의 반대편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사회운동과 진보정치의 상식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똑같이 정치적 부족주의를 상징하는 부족장들에 불과할 뿐이다.

부족장들이 사회 여론을 대변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여론 지형이 더더욱 부족주의적으로 변형된다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안 그래도 요즘 젊은 노동자들이 익명으로 즐겨 이용한다는 ‘블라인드’를 보면, 이용자들이 한창 현대차부족·삼전부족·LG부족·스타트업부족·중기부족으로 나뉘어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청소년들은 인터넷 커뮤니티별로 나뉘고, 뉴스 중독층은 김어준 같은 유튜버별로 나뉘어 부족 간 전쟁에 몰두한다. 이제 거의 원시부족들 간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시대에 돌입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조합’을 악마 삼아 때리기에 나서자, 젊은 층의 찬성 여론이 적지 않게 나타났다. 부족 전쟁에 몰두한 시선에서 보기에 민주노총은 자신들의 부족을 위협할 또 다른 부족들 중 하나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부족 전쟁에 몰두해 있는 사이, 평범한 사람들의 권리는 끊임없이 후퇴 중이다. 노동조합이 독립적으로 자기 조직을 운용할 권리를 침해받으면 국가권력에 쉽게 종속될 위험에 노출된다. 이는 노동자 권리 후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노동조합 할 권리가 줄어들면 억울하게 떼인 임금과 불합리한 노동조건, 직장내 괴롭힘은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부족장들은 이를 해결해 줄 수 없다.

혹자는 “꼬우면 더 잘 나가든가?”라며 냉소 어린 시선을 보낼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고 확장해 나가는 것은 부족화된 냉소가 아니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자기 노동권의 확장을 위해 회사와 지역, 세대의 경계를 넘어 어떻게 단결할 수 있느냐에 있다.

플랫폼C 활동가 (myungkyo.hong@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