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석면에 노출된 채 작업을 하다가 약 30년 만에 흉막종양인 ‘악성중피종’으로 목숨을 잃은 육군 장교의 유족이 법원에서 공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법원은 소량의 석면에도 악성중피종이 발생할 수 있는 데다 잠복기가 30~35년에 이를 만큼 길다는 점을 근거로 업무상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했다.

26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전지법 행정1단독(이태영 판사)은 사망한 군부대 장교 A(사망 당시 56세)씨의 아내가 충남동부보훈지청을 상대로 낸 보훈보상대상자 비대상 결정처분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보훈지청이 항소하지 안항 지난 6일 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석면 슬레이트 지붕’ 수리·교체
최초 노출 31년 지나 발병해 사망

1987년 육군 장교로 임관한 A씨는 1989년 10월께 보급정비과장으로 근무하며 석면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동료 군인들이 작성한 사실확인서 등에 따르면 당시 군부대 건물의 대다수는 ‘석면 슬레이트 지붕’으로 만들어졌다.

A씨는 1991년 3월까지 지붕 수리와 교체작업을 담당하며 관리·감독했다. 1995년 2월부터 1997년 2월까지 2년간 다른 부대의 중대장으로 근무하면서도 슬레이트 지붕 수리업무를 맡았다.

이후 A씨는 여러 부대에서 복무하던 중 23년이 지난 2020년 3월 신체의 이상을 감지했다. 흉통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았다가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악성흉막중피종’을 진단받았다. ‘악성중피종’은 석면에 지속해서 노출돼 발병하는 질병으로 알려졌다. 특히 석면에 노출되고 나서 약 30~35년의 잠복기간을 거쳐 질병이 확인된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돼 있다.

A씨는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그해 6월 3개월 만에 목숨을 잃었다. 그러자 A씨 아내는 “41개월간의 직업성 노출로 인해 질병이 발생했다”며 보훈지청에 재해사망군경 등록을 신청했다. 그러나 보훈지청은 “석면 노출로 인한 중피종 발병의 구체적인 자료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승인했다. 유족은 지난해 5월 소송을 냈다.

법원 “석면 노출이 악성중피종 기여”
“잠복기 볼 때 군대 환자 발생 가능성 커”

법원은 A씨의 직무수행과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먼저 직무수행 전의 건강상태와 직무의 성질, 근무환경 등 간접사실에 따라 상당인과관계가 추정될 정도로 입증되면 충분하다고 봤다.

그러면서 A씨의 악성중피종은 석면 노출이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악성중피종의 기여위험도는 80~90%에 이를 정도로 높다”며 “석면 이외의 물질이나 물리적 인자에 의해 발생할 가능성은 작다”고 설명했다.

2019년 해당 부대의 전수조사 결과 대부분 건물에서 석면배출 허용기준을 훨씬 웃도는 석면이 검출된 사실도 제시했다. 재판부는 “악성중피종은 적은 양이나 짧은 기간의 석면 노출 후에도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석면 물질이 많다는 조사 결과가 있는 이상 그에 대한 노출로 악성중피종이 발병한 것이 아니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최초 석면에 노출된 뒤 31년이 지나 악성중피종이 발병한 부분도 잠복기를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망인은 악성중피종을 진단받은 때부터 30~35년 전에도 군복무를 수행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망할 때까지 군복무를 했다”며 “다른 직업적·환경적 요인이 개입할 가능성이 적다”고 판시했다.

A씨가 치료받았던 병원의 업무관련성 평가와 법원 감정의 소견도 영향을 미쳤다. 감정의는 군부대 건축물을 철거하는 작업에 관리·감독을 하면서 상당량의 석면에 노출돼 A씨의 악성중피종과 석면 노출은 연관성이 높을 것이라는 소견을 냈다.

유족을 대리한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법원이 보훈보상 대상자로 인정한 점은 큰 의미가 있다”며 “과거 군부대 곳곳에서 석면을 사용했고, 악성중피종의 잠복기가 최장 40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악성중피종과 석면폐암 환자가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다. 신속하고 선제적인 보상과 예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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